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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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의 결혼식 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제 나는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뿌듯해했다. -42쪽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 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140쪽

"하루 종일 입 한 번 떼지 않았는데도, 노가다라도 뛰고 온 양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넌 모르지?"
모른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들어왔기에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말고는. 어쩌면 어디서 어떻게 살더라도 서른두 살쯤 되면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도록 세팅된 것이 인간의 몸인지도 모른다.-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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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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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관촌수필을 포함해, 그 정도 시절 책을 읽다보면  지리멸렬하지만 어딘가 낭만적인 가난과 사색이 부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경제가 웬만큼 발전해서인지, 식모니 양반이니 상것이니 하는 것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거니와, 또 웬만한 도시에서 살아서인지 '완연한 가을에 모과와 땡감을 함께 씹으면 물대추 맛이 난다던지',  '어린아이가 안질에 걸리면 허투루 박았던 못을 빼내야 한다던지' 하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이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낭만이란 것은 고작해야 삐삐를 쳐서 "거기 6767번 호출하신 분이요"라고 외치고 가까스로 통화를 해 밀어(? ㅋㅋㅋ)를 나누는 고딩시절의 풋사랑일 뿐이니 할 말 다했다. 물론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삐삐를 본 적도 없을 테니 그들에겐 이게 옛날식 낭만일 수도....(???)

이문구의 어린시절을 함께한 아름다운 관촌 이야기. 이문구 스스로 "관촌수필만은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여 좀더 낫게 써보려고 나름으로는 무던히 애쓴 편"이라는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그를 엄격하게 훈육한 조부, 한마당에서 자라다시피 한 옹점이, 대복이, 복산이 등... 그들 모두 그 시절 아니면 다시 없을 인물일 테지만, 그들이 아니었던들 이문구가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은, 대단한 소설의 소재들이기도 하다. 그런 훌륭한 관촌의 사람들과 유년 시절을 함께 한 이문구가 새삼 존경스럽고 부럽다.

나처럼, 관촌수필이라는 제목만 수없이 들어보고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름다운 토속어들과 그 시절의 민간요법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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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품절


가을이 완연해졌다. 범바위 찔레덤불 틈에 옻나무 잎새가 불긋거렸고, 너럭바위에 올라앉아 모과와 땡감을 함께 씹으면 물대추 맛으로 감쳤다. 김장밭에 들어가 왜무를 뽑아 먹으면 배 맛이 나고, 논배미마다 메뚜기 잡던 아이들의 두렁콩 서리하는 연기가 뒷목 끝낸 모닥불 마당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160쪽

읽다가 접어놨던 기사는, 김모라는 16세 된 소년이, 서울과 성남시 사이에 있는 어느 길목에서 과도로 택시 운전사를 살해하고 피 묻은 돈 1천 8백 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붙잡혔다는 내용이었다. 형제 친척 고향 등을 모르며 일곱 살에 외톨이가 되어 10여 년을 서울의 처마 밑에서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는 그 소년은, 서울 인심이 너무 박정하여 살아갈 수가 없어 시골로 가려고 했으며, 시골로 가기 전에 먹고 싶던 것이나 한번 먹어보고 가려고, 그 돈 마련을 위해 그런 짓을 했다는 거였다. 소년은 이어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쌀밥과 콜라와 포도였다고 대답한 모양이었다.-184쪽

돌은 천년을 값없이 내버려져 있다가도 문득 필요한 자에게 쓸모가 보이면서 비로소 석재라는 허울을 얻으며 가치가 주어진다.-193쪽

내 안질이 사랑에 알려지면 할아버지는 곧 옹점이를 불러세우고 누가 언제 어디에다 무슨 못을 어떻게 박았는지 알아오도록 했다. 일진을 보아 살 없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때없이 함부로 벽이나 기둥에 못을 박으면 반드시 약한 아이의 눈에 삼이 선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주장이어서, 안에서는 사실 여부는 둘째치고 우선 옹점이 시켜 아무도 못박은 사실이 없다고 발명부터 했다. -286쪽

"역시 자네가 예서 사니까 든든허구먼."
"꾸부러진 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니 내가 바루 그 짝이지."-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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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5
황석영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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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전부터 해오던 버릇대로 숨었다. 숨어 있는 사이에 일은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종노>-103쪽

산머리로부터 만월이 떠올라 왔다. 달이 구름에 가려질 때마다 마을을 더욱 멀리 끌어갔다가는, 다시 환히 앞으로 끌어당겨 오는 듯했다. <밀살>-128쪽

눈이 찰지어서 걷기에는 그리 불편하지 않았고 눈보라도 포근한 듯이 느껴졌다. <삼포 가는 길>-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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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5
황석영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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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가난과 육체노동, 리얼한 전쟁터 얘긴데,                                                                                                            그게 너무 솔직해서 소설이라기보단 작가의 기행문 같은 느낌.

조금의 미화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다 까발려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녹록한 삶의 냄새가 책 읽는 내내 느껴져서 조금은 불편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는 커녕 평균치의 서민도 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인생을 황석영의 책이 아니면 어디에서 느낄 수가 있을까. 황석영만큼 그들의 인생에 동화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 책을 읽고 감정만이라도 공유해 볼 일이다.

아홉개의 단편 중 특히 <삼포 가는 길>, <몰개월의 새> 강추.

그리고. 

낯선 단어들이 참 많다. 예전엔 일상에서 쓰였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그 시절 책을 뒤적여야, 혹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들이다. 100여년 전 책도 아닌데, 불과 몇십년 전일 뿐인데. 밑줄 하나하나 그어놓는 것만으로 위안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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