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문학전집 장편소설 4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7월
절판


윤해원은 자기의 병을 약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작자였습니다. 그의 병력이 세상을 저주하고 증오하게 만들어갔고, 거기서 그는 오히려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고 있었단 말씀입니다.-210쪽

너의 얼굴에 분홍으로 고운 꽃얼룩은
아무도 꽃이라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젠 꽃이라 말할 수 없다.
너의 그 그리운 색깔을 위해
우리가 흘린 눈물이 낙화가 되었다면
누이여, 우리는 지금쯤 꽃길 위를 걷고 있으련만......-212쪽

울타리가 둘러쳐진 천국이 진짜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402쪽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4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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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시종일관 불쾌하고 불편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은 뗄 수 없다. 그저 "롤리타 되게 야해."라는 항간의 얘기만 들었었는데, 정작 읽고 나니 야하기 이전에 몽롱하고 아름답다. 물론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면 한없이 야하다.

아. 롤리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순진한 그 시대 사람들 의견 분분했겠지만, 그렇게 열에 들떠 롤리타 타도하자 어쩌자 한 것도 실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된 데 당황했기 때문일 것. 천인공노할 연쇄살인범인데 막상 잡아놓고 보니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꽃미남이어서 세상사람들 모두 당황하는 꼴이다. 이걸 절대 용서하면 안 되나, 아름다우니 봐줘도 되나? 물론 절대 용서못할 중범죄지만, 그래도 어쩌랴, 사람들은 이미 꽃미남 살인범에게 홀딱 반해버렸는걸.

나는 <롤리타>에 반했다. 윤리와 도덕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모닥불에 얼굴을 묻고서라도 <롤리타>를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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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절판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리.타.-15쪽

갑절의 바닐라에 뜨거운 초콜릿까지 얹은 셈.-69쪽

내 뜨거운 솜털 같은 연인아.-78쪽

저기 오른쪽 구석에서 축 늘어진 채 거의 쭉 뻗고 누운 십대의 소녀, 롤라는 먼 옛날의 사과를 와작와작 먹으며 즙 사이로 노래를 했고 슬리퍼를 떨어뜨리고 맨발로 소파 왼쪽에 쌓인 낡은 잡지 더미에 발뒤꿈치를 문질렀다.-83쪽

나 자신이 대견했다. 미성년자의 육체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고 열정의 단 꿀을 훔친 것이다. 정말이지 털끝 하나 해치지 않았다. 마술사는 어린 숙녀의 하얀 지갑에 우유와 벌꿀과 거품 이는 샴페인을 쏟아부었는데, 보라 그 지갑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내 수치스럽고 열렬하고 죄 많은 꿈을 오묘하게 만들었다.-87쪽

그녀는 마치 재능도 취향도 없고 일상의 삶에서는 지극히 천박하면서도 곡조에서 음 하나만 틀리면 악마 같은 정확성으로 당장에 짚어내는 음악가와 같았다.-117쪽

페르시아인들이 말했듯이 잠은 꽃이오.-175쪽

내게 다만 한 가지 이룰 수 없는 불만이 있다면 내 롤리타를 완전히 뒤집어서 그녀의 어린 자궁, 알 수 없는 심장, 진주 빛깔의 간, 포도송이 허파 그리고 두 개의 귀여운 콩팥에 실컷 키스하지 못한 것뿐이다.-225쪽

그녀는 솟구치는 호기심으로 어둠침침한 험버랜드로 들어왔다.-226-227쪽

그녀의 숨결은 씁쓸하고 달콤했다. 그녀의 갈색 장밋빛 뺨에서는 피맛이 났다.-326쪽

찾습니다, 찾습니다. 돌로레스 헤이즈를.
머리는 갈색이고 입술은 진홍색.
나이는 오천삼백 일.
직업은 없어요, 아니면 <작은 스타>랄까.-347쪽

미국의 교외에서는 외로운 보행자가 외로운 운전자보다 눈에 더 잘 띈다는 것을 잊고 나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론 거리, 342번지를 다소곳이 걸어갔다. (in concord)-3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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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 비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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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00쪽에 있는 글귀 하나. "역서가 좋아 보이면 역자의 저서로 눈길이 옮아가는 법"이라지. 이런! 무릎을 탁! 쳤다. 무릎팍 도사보다 어쩜 그리 독자의 마음을 꿰뚫고 계신지 순간 머리가 쨍 해지는 기분.

이윤기 작가의 책 중 읽어본 것이라곤 "그리스 로마 신화 1,2",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가 술김에 내 집에서 자고 나가는 길에 "그리스 로마 신화 1권"을 빌려가는 바람에, <안 친한 그 친구 + 못 돌려받은 내 책>에 대한 짜증이 애꿎게도 작가에게까지 옮아가 있던 때였다. 나쁜 친구. 차라리 2권을 빌려갔으면 이렇게 텅 빈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텐데. 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비어 있는 1권 자리에 화가 나서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 했으니 자연히 작가에 대한 관심도 더 이상 커지지 못했으리라. 그 후론, 웬만하면 책을 빌려주지 않는 쪽으로 방향까지 선회했다.

그런데 이 예쁜 제목의 책을 접하는 순간 잊었던 호기심이 되살아났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읽을 때 시원시원하고 쉽고 걸지게 써내려가던 그분의 필법에는 이미 매료되어 있던 터였다.

그리고... 아, 좋다.

이런 것이 연륜이고, 이런 것이 애정이구나. 구석구석 밑줄칠 곳도 많고, 책을 펴놓은 채 생각에 잠기느라 책 겉장은 구깃구깃해졌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 녹차까지 쏟아부었다. 책 한 권이 너덜너덜해졌는데 내 머릿속은 팽팽해진다. 쉽게 읽히는데 생각할 틈도 많다니... 이건 이윤기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필살기일 터.

그래서.

100쪽에 있는 글귀처럼 나는 이윤기 작가의 다른 저서로 눈길이 옮아가버렸다. 운 좋게도 홍대 벼룩시장에 헌책을 팔러 나온 아저씨도 나와 독서취향이 비슷한 모양이다. 이윤기 작가를 되게 좋아해서 그 책을 많이 모았다는 그 아저씨 덕분에 나도 절판된 책들을 여럿 구했다.

무지개와 프리즘. 뿌리와 날개.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에세이 온 아메리카.

역시 실망을 안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려올 때 보았네>를 읽으면서 많은 걸 본 셈이다. 이런 책은 참 고맙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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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지음 / 비채 / 2007년 10월
품절


"하루 공부한다고 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동악성제)-34쪽

요즘 나에게 이따금씩 악몽을 안기는 말 한 마디가 있다.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는 프랑스 속담이다. 작가의 생물학적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는 뜻일 터이다. 죽고 나서 10년 뒤에 작품이 남지 않는다면 그것이 작가의 진정한 죽음이라는 뜻일 터이다.-35쪽

나는 세월로부터 검증 받지 않은 책은 잘 읽지 않는다. 나에게는 10년 뒤에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36쪽

경구라는 것이 그렇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경구도 우리를 흔들어놓지 못한다. 그러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읽으면 우리는 그만 소스라치고는 한다. 어느 순간에 내 마음이 그럴 준비를 했던 것일까?-75쪽

나는, 굽은 작대기를 바로잡으려면 반대쪽으로 좀더 구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88쪽

"생각 없이 사는 일상적 삶, 그것이 바로 악의 근원이다." (아렌트)-89쪽

말맛에 찰기가 매우 부족하다...-92쪽

역서가 좋아 보이면 역자의 저서로 눈길이 옮아가는 법이다.-100쪽

"외국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나이만큼 되는 숫자의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외국 여행이 삶의 외연, 인연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들었다. 그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세계로 나갔더니 세계가 당신에게로 오기도 하던가? 풍경만 보고 왔는가, 사람도 사귀고 왔는가?-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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