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와 청년기에는 모든 이들의 보호와 관심 속에 주인공으로 자란다. 그러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새로이 피어나는 존재를 받쳐주는 조연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는 조연이 되어가는 걸까> - P29

"행복한 인생이란 조용한 인생"이라는 버트란트 러셀의 말처럼 진정한 기쁨, 본질적인 행복은 조용하고 단순한 삶에서만 깃들어 있다. 그러니 하루가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는 매일의 삶을 최선을 다해 즐기자. 권태가 찾아올 때면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지금의 내 인생이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안온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받아들이며 감사하자.

<행복한 인생이란 조용한 인생> - P89

프랑스의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셍이 <인간, 즐거움>에서는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변한다.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진정한 이름이 주어진다"라는 문장이 있다.

<아끼는 것과 비우는 것의 차이> - P117

<이너프, 이 정도면 충분해>의 저자 제프 시나바거는 엄청난 액수의 카드청구서를 접한 후, 생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냉장고와 식재료 창고에 있는 음식만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7주간 총 147끼니를 오로지 냉장고의 음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경험 이후 그의 인생이 변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작은 성찬을 위한 냉장고>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에는 빛이 있고 눈에는 불이 있었다.‘
그런 표현을 떠올렸다. 그 옛날 초원에서 벌어지곤 했던 잔혹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묘사할 때 쓰던 옛사람들의 표현이었다. 적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반드시 귀하게 길러져서 결국 그 모든 사람들을 이끌게 되는 아이들.

<초원의 시간> - P271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면 걸어다녀도 비석이다. 나는 그날부터 비석이 되었다.

<양떼자리> - P292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멀리 멀리 아주 먼 곳에서, 양치기신이 커다란 구름양떼를 이끌고 하늘을 건너셨다. 양들에게 별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양치기신이었지만 그분의 양떼는 그렇지 않았다. 별을 뜯어먹다가 밤이 묻는 바람에 입가가 새까매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구름양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니? 옆에 있는 다른 구름양들한테 닦아버렸단다. 털이 아주 폭신했거든."
"그러면 다른 애들이 지저분해지잖아요."
"그래서 양치기신이 화가 나신 거지. 까매진 구름양은 양처럼 보이지도 않거든. 그래서 큰 소리를 치면서 양들을 땅으로 쫓아보내셨대요. 별을 못 뜯어먹게 하려고. 깜짝 놀란 구름양들이 한데 모여서 파르르 떨면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거란다."

<양떼자리> - P2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그거 알지? 현금지급기에서 지폐를 달랑 석 장만 뽑아도 한 서른 장쯤 돈 세는 소리가 나는 거. 그거 다 녹음된 소리라니까. ‘아, 얘가 돈을 세고 있구나‘ 착각하게 만드는 소리라는 거지."

<홈스테이> - P211

가수가 자기를 봤다고 주장하는 팬들은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 가수는 그런 거 안 본다고. 새우젓 먹을 때 새우랑 눈 마주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티켓팅&타겟팅> - P163

몇 주 전부터 안경 코받침이 콧등을 심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룡 발자국처럼 선명한 자국이 콧등에 새겨졌다. ‘안경사우르스 이놈!‘

<홈스테이> - P2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서 찾아간 도시라면 무슨 생각부터 드는지? 나는 ‘걷는다‘는 생각부터 든다.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 P191

20대 후반, 내게는 두 종류의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하나는 1980년대 사회과학서였고, 다른 하나는 발행된 지 몇 년 지난 여행 가이드북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첫째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 둘째 헌책방에서 헐값에 팔린다는 것. 싸다는 이유로 한두 권 사서 읽어보니 대책 없는 향수가 밀려왔다.... (중략)... 본래의 쓸모는 완전히 상실했지만, 한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뜻밖의 쓸모가 나를 매혹시켰다.

<지구가 하나뿐이라 다행이야> - P223

이 세상이 거대한 회전목마라면, 그리고 그 가운데 가만히 앉아 쉼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게 궁금하다면,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호숫가의 호젓한 레스토랑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호안끼엠 호숫가의 레스토랑을 찾은 지난봄의 어느 저녁, 세상은 생맥주와 피자가 놓인 테이블 아에 앉아 있는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빙글빙글 돌게 만든 것은 바로 오토바이었다. 남녀노소, 허름한 차림의 노동자부터 양복을 갖춰 입은 회사원까지, 각계각층의 사람이 탄 오토바이가 호수 주위 일방통행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노이의 아침에> - P227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세계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훌륭한 여행자는 여행이 끝난 다음에도 계속 여행자로 남는 사람이다.

<세상이 변해도, 장소가 바뀌어도 여전한 것> - P231

열심히 사진을 찍고 돌아온 어느 여행의 경우, 사진으로 남은 기억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하지만 너무 날카로웠던 걸까.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나 어디선가 풍기던 이국적인 냄새 혹은 여행지의 전반적 느낌 같은 건 송두리째 기억에서 잘려나간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사진 속 풍경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사람이 됐다.

<사진으로 다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 P235

여행지는 낯선 땅이기 때문에 무방비의 순간에 목격한 한 장면이 마치 인생의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일 텐데 말이다.

<여행지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빛> - P2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 생생할 때 느껴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낙타 고기의 맛> - P163

교통수단과 글쓰기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그간 세계적 석학들이 한번도 연구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이동 중에 글이 잘 써진다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유를 내 멋대로 추론하자면 아마도 자이가르니크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과 블루마 자이가르니크가 제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식당 웨이터는 샐러드와 메인 디시와 디저트, 음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문을 동시에 받아도 그걸 다 외울 수 있는데, 그건 주방에 갈 때까지만 기억하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버스가 회사 앞에 도착하면 어쨌든 내려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아무것이나 써본다는 생각이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3

경상북도만 한 크기의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만난 코끼리는 어릴 적에 나를 매혹시킨 바로 그 코끼리, 내 눈앞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바로 그 코끼리였다. 사육사가 손을 들어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해서 난생 처음 코끼리를 만져봤다. 그건 스페인 말라가의 로마 유적을 만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피부는 돌처럼 딱딱했고, 털은 철사처럼 꼿꼿했다. 눈을 바라보노라면 순진무구한 무언가가 감옥 같은 몸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코끼리에게는 왜 이런 몸이 필요했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만이 나를 매혹시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다시 돌아와 내 눈 앞에 선 코끼리> - P111

제일 좋은 건 이제 막 도착할 그 도시에 대해 쓴 책이다. 장담컨대 그런 책이라면 코앞까지 바투 밀어젖히는 앞 좌석 등받이, 언제부터인가 옆 좌석의 남자가 점령해버린 팔걸이, 캄캄한 기내에서 혼자만 밝힌 독서등 같은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이코노미석에 앉아 조종사의 눈으로> - P71

사방에 지극히 공평하게 내리고 있어 가까운 비와 먼 비의 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 소리의 멀고 가까움을 구별하지 못하니 빗소리는 도처에 존재했다. 내 안에도, 또 내 밖에도. 3월 1일의 비는 겨울비도, 그렇다고 봄비도 아니어서 부를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데도 그 비는 모든 것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순천만에서 바다의 대답을 듣다> - P82

더 극적인 경우는 기업가이자 소셜 미디어 개척자인 피터 섕크먼의 이야기다. 강연자로 인기가 높아 비행기 탈 일도 많던 그는 다들 사육 체험 공간으로만 여기는 비행기 좌석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2주 만에 원고를 끝내야 하는 출판 계약을 맺은 뒤, 그가 한 일은 도쿄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는 일이었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내내 글을 썼고, 도착해서는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타 글을 썼다. 그렇게 해서 그는 미국을 떠난 지 30시간 만에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비록 티켓을 사는 데 4,000달러가 들긴 했지만, 그에게는 남는 장사였다고 한다.

<이코노미석은 지상, 아니, 천상 최고의 창작 공간> - P145

아무리 마셔도 맥주는 정말 맛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로컬 비어가 있다. 조선족이 사는 옌지에서는 ‘빙천‘이라는 맥주를, 독일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에서는 ‘라우흐비어‘라는 맥주를 마셨다. 빙천은 조금 약한 ‘소맥‘ 맛이고, 라우흐비어는 돼지갈비를 태우고 남은 불판의 그을음을 맥주에 푼 것 같은 맛이다. 맥주를 마시고 나면, 차차 도수를 높여나간다. 로컬 비어처럼, 도수가 높은 술 역시 지역마다 유명한 것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모스크바에서는 벨루가를, 시안에서는 시펑지우를 마시는 식이다.

<소설가가 여행지에서 제일 많이 하는 짓> - P175

일본어 표현 중에 ‘아메오토코‘, 즉 비를 부르는 남자라는 게 있다. 여행이나 야외 행사에 나서기만 하면 비가 내리는, 운 나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략)... "난 여자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이 말은 원래 ‘아메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에서 파생된 단어니까. 여자 쪽이 훨씬 더 강하게 비를 부르는 힘이 있다. 아메온나는 일본 요괴백과에도 실린, 아주 유명한 요괴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비가 내려 짜증난다면>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