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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모를 거야 ㅣ 우리 집 도서관 1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안상임 옮김, 송경옥 그림 / 북스토리아이 / 2012년 6월
평점 :
"엄마는 모를거야"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먹일듯한 표정을 한 채 맨발로 어디론가 뛰어 나가는 남자아이"
제목과 표지만이 주는 첫 느낌은 부모와의 불통과 트러블로 집을 뛰어나가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성장 소설이 아닐까 하는 정도였다. <엄마는 모를거야>를 만난 첫인상은 그러했었다. 하지만 가족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던 내 예상은 책을 읽으며 "이게 아닌데.."로 바뀌어갔다.
독일의 시골마을 슈타인바흐에서 나고 자란 다비트는 도시에서 직장을 구한 엄마를 따라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낯선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품을 가진 할머니와 기억에도 없는 아빠를 대신해주는 든든한 로베르트 삼촌과 엄마를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슈타인바흐를 떠나와 만나게 되는 도시의 풍경들은 낯설고 황량하기만 하다. 높은 고층건물들, 영영 익숙해 지지 않을거 같은 엘리베이터와 낯선 장소의 낯선 냄새들. 그리고 작은 가지 하나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한 발코니 창문까지. 열살 꼬마 어린 다비트에게는 모든 것이 두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더군다가 이사온 첫날 잠자리에 들며 보았던 보라색 형체의 시커먼 괴물은 다비트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고 그러한 공포심은 악몽으로 되살아났다. 설잠을 자고 일어난 낯선 방에는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새 직장을 구한 엄마가 벌써 출근하신 탓에 외톨이가 된 다비트는 어젯밤 꿈에서 보았던 보라색 괴물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고 두려운 마음에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쳐 나오게 된다. 문이 잡겨버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동전하나 챙기지 못한채 길거리로 뛰어나와버린 다비트는 엄마가 일하신다는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되고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낯선 환경에 익숙해 지고 성장해 나가게 된다. 반나절 동안 다비트가 만난 사람들은 지금껏 다비트가 만나온 모든 사람들을 다 모아도 모자랄 만큼 다양하였다.
맨발로 다니는 모양새가 의심스럽다며 다짜고짜 도둑으로 몰아세운 슈퍼마켓 아줌마
바퀴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유모차를 빠르게 모는 수다쟁이 아줌마
자신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말하는 자건거 탄 소년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까지 다비트를 데려주려고 애썼던 친절한 토르스텐 아저씨
아이들의 짖꿏은 장난에도 하모니카 불기에만 열중했던 노숙자 할아버지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떠돌이 강아지 모노클까지
아침 8시 30분 경부터 오후 3시 사이의 짧았지만 다비트에게만은 너무나 길었던 그 시간의 기록들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되던 때, 지금은 없어진 "백만인의 모금걷기 운동"이란 걷기 대회에 친구들과 참가한 적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친구와 단둘이서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낯설기만 했던 어느 출발지점에 섰고 수많은 인파에 쉽싸여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주변을 빽빽히 메우던 사람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어느 샌가 친구와 나만 남아버린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주무대로 삼고 놀았던 우리 동네가 아닌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에 달랑 친구와 나 둘만 있는 끔찍한 상황. 게다가 정신없이 길을 헤메고 있는 와중에 난생 처음으로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는 현장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안그래도 불안한 심리에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 그 때의 기억이 한동안 트라우마가 되어 낯선 장소에 가는 걸 극히 두려워 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다비트는 어릴적 나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 보인다. 더군다나 분수대에서 씻기고 털을 다듬어 준 덕분에 둘도 없이 예쁜 강아지로 탈바꿈했던 떠돌이개 모노클의 갑작스런 죽음은 보는 내 가슴을 다 철렁하게 만들었다. 낯선 곳에서 그렇게 헤매며 엄마를 찾는 것만으로도 열살 짜리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시련인데 서로 마음을 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슈타인바흐를 떠나 도시로 이사 온 것을 잘 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모노클과의 만남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 버린건 문학 작품에서 해피엔딩만을 바라는 지나친 나의 욕심일까?
이쯤 되니 갑자기 궁금증이 솟아오른다. 왜 제목이 "엄마는 모를거야"인걸까? 원제를 찾아봤더니 <Barfuss durch die grosse stadt>이라는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맨발로 만나는 거대한 낯선 도시"정도 될 듯 하다. 아이들 책이라 제목을 저리 정한 것도 이해는 되지만 반나절 동안 펼쳐진 다비트의 도전과 경험을 온전히 엄마에게 돌려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왠지 아쉽기도 하다. 엄마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일을 이리저리 부딪히며 풀어나간 다비트가 대견한 건 맞지만 그토록 간절히 만나고자 했던 엄마를 찾았을 때 다비트의 마음 속에 "엄마는 모를거야"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거 같진 않다.
열살 꼬마가 낯선 환경을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은 나약하기만 요즘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 하지만 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마련된 장치인듯 보이나 내내 아쉽기만 한 모노클의 죽음, 중간중간 몇번이나 언급되었음에도 결국에는 흐지부지 되어버린 아빠와의 얽힌 이야기, 그리고 모노클 죽음 이후 너무 갑작스레 마무리 지어진듯한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어찌보면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 방향과 달라서 생기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결론 나야 한다는 나의 옹졸한 마음을 접어두고 다시 한번 펼쳐들고 읽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