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한다고들 하는데
이 책은 끝까지 읽어봐야 진짜를 만나게 된다.

책제목이 무척 반어적이다.
불량한데 명랑한 유배라니!

제주를 종종 가지만 혼자 간적은 없다.
아마도 아직은 혼자 가야겠다고 마음 먹을만한 일이 없어서인지도!
만약 혼자 간다면 어떤 여행이 될까?
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여행에세이!


물 흐르듯 자유롭게 흘러간다. 잘 먹을 일도, 좋은 곳에 가야 할 일도, 계획한 일을 다 해내야 할 이유도 없다. 마음이 눕는다. 이런 적이 없다. 늘 내가계획하고 진행하며 배려하는 여행이었다. 지금의 나는 계획도 없고 진행도없다. 나조차도 배려하지 않는다. 힘들이는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구름의 속도로, 바다의 마음으로, 나무의 숨으로, 길의 이야기로, 나는 여행을 곧잘 한다. 혼자일 때 더 잘한다. 가난하고 자유로운 여행, 하찮은 그러나 괜찮은 여행. 남은 날의 모든 여행이 하찮고 또 괜찮길 - P130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예쁜 것들이 이어진다. 청보리가 흐느끼고, 바람의현의 소리를 내며 거꾸로 불어와 걸음을 막는다. 허기만 겨우 가셔가며 걷는다. 먹는 게 여행의 반이고 좋은 날씨가 여행의 반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먹는 것은 여행의 조금이고, 날씨와 상관없이 모든 날이 다 여행에 좋은날이다. 걷다 보면, 걸음이 나를 걷게 한다. 나를 이끄는 것은 내가 아니고 걷는 걸음이다. 걸음의 결을 따라 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자유로웠고, 쓸쓸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다. 혼자 걸으며 무수히 많은 것들을 채집한다.
물리적인 것들을 사진으로 수집하고, 둥둥 떠다니는 대책 없는 마음을 애써메모로라도 부여잡는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그렇게 지켜간다. 저녁이면친구가 온다. 혼자 하는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못한 듯하다. 언제고 본격적으로, 혼자일 거야. 기다리는 맛을 오래 음미해본다.
- P62

노 카페, 노 맛집 여행으로 식비를 아끼며 동시에 낭비벽 식생활에 벌을 주기로, 먹는 데연연하지 않는 여행은 실은 바라던 여행이었다. 먹는 게 여행의 반이라는 말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먹는 것보다 노는 게 좋다. 두 가지를 다 누릴만큼 돈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노는 제주만 누리련다. 여행하며 ‘논다.
는 것은 많은 것을 포함한다. 마음이 놀아야 한다. 방랑해야 한다. 감정이 요동쳐야 한다. 자유로워야 한다. 덜 먹고 잘 놀고 살짝 취하는 여행이 시작된다. 배려할 동행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벌인가, 상인가.
- P32

오름 오르듯 살면 좋았을걸. 낮은 오름 하나 오르듯, 그리 살면 되는 것을.
세상 모든 일이 다 한라산이고 백두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위축돼서 살았다.
오르지 못할 산, 넘지 못할 산일 거라고 짐작하며 회피로 일관했다. 오름의기쁨은 높이에 비례하지 않았다. 조금만 올라가도 충분했고 넉넉했다. 거대봉우리를 넘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얕은 둔덕 하나하나를 오르고 넘다 보면 튼튼한 다리도 생기고 멀리 보는 눈도 생기고 기세도 생긴다. 오름 오르듯, 한 오름 한 오름, 잘 쳐내며 살았어야 했다. 살아야 한다. 오르지 못하고스쳐 지나온 오름이 많다. 해낼 수 있는데 못해낼 거라 지나친 과업들이 많다. 이제는, 다시 오름, 다 오름, 삶에 좀 더 오름, 때로는 악착같이 때로는 한량하게, 오름 또 오름.
120

오십엔, 제주가 제철입니다. 여행이 제철입니다. 주저말고, 떠나셔요. 저절로 술술, 잘 풀릴 거에요. 여행도, 인생도.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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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요
글을 참 재미나게 쓰시더라구요.
이 작가님!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으로 글읽는 재미를 주면서
감동도 주는 제주한달살기!
술술 읽힙니다.

아무리 불량주부라도 아이둘을 키우고
남편도 키우려면 불량할수가 없어요.
하지만 저자는 그냥 대충 설렁설렁 살았다고,
열심히 살지 않아서 제주에 열심히 다녀오겠다고
그렇게 제주로 한달살이를 하러 갑니다.

사실 가정이 있는 주부라면
가족을 떠나 혼자 하루이틀도 쉽지 않아요.
살림만 살던 주부라면 더 그렇죠.
그런데 어느순간엔 자아를 찾고 싶고
나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나이 쉰에 접어들어 점점 노화가 시작되고
뭔가가 힘에 부치기 시작하는때라
더 그런것도 같아요.
게다가 그동안의 삶을 나무라는듯
뭐든 해보라는 주위사람들의 말은 자꾸
채찍이 되어 나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고
뭔가를 해보려고 찝쩍거리는 일들은
간만 보다가 끝나는 게 대부분!
그렇다고 가정주부로 완벽한것도 아니고...

왜 우리는 100년도 안되는 생을 사는데도
맘대로 못하며 사는걸까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주어진대로 설렁설렁
불량하게 사는게 왜 죄가 되는지..

제주 한달살기는 꿈만 꾸고 있는데 언젠간 이루어지려나요?
아무튼 불량주부 제주 한달살이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책!


어떻게 꿈 없이 살 수 있냐고 중학생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묻던밤, ‘가난한 여행자가 되고 싶다.‘고 노트에 적었다. 10여 년 전 일이다. 딸은요즘 다시 나를 채근한다. 그만 좀 간 보고 무어든 확 저질러 버리라고 읽고,
쓰고 보고 배우고, 이것저것 집적대고만 있은 지 어언 십여 년이다. 저지르지 못하는 이유는 열정 부족, 용기 부족, 성실 부족이다. 그나마 가난한 여행자로는 살고 있는 듯하니, 그래도 꿈은 대략 이룬 것일까?
대충 사는 것에 변명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은 하고 싶다. 아주 열심히. 방랑 유전자는, 저마다 얼마나 다를까. 대충 살고 방랑하면, 천벌 받을까?
열심히 살지 않은 죄로, 제주에 열심히 다녀오겠습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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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시집을 펼쳤는데
1부의 해인수녀님의 시가
오늘의 흐린 날씨와 딱 어울리는 느낌!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이기적인 기도에
저도 힘을 좀 실어드리고 싶습니다.
비오는 날 맘껏 웃을 수 없는 몸이면서도
힘든 사람을 사랑하고 우는 사람부터 달래야겠다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메마름을 적시는
비가 되겠다는 수녀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아쉬움보다
아직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들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겠다는 수녀님!
오래 알고 지낸 고마운 이들을
꽃잎으로 포개어 천국까지 들고 가겠다는 수녀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가득 담긴 시를 읽으며
이제는 수녀님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우리가 아닌
수녀님의 꽃잎 한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육신의 고통도 힘든 마음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풀어내며 스스로를 달랠뿐아니라
시를 읽는 우리들에게까지 위로를 주는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기를요!



이기적인 기도

하느님
오늘은 몸이 많이 아프니
기도가 잘 안 되지만
되는대로 말씀드려 봅니다.

앞으로의 남은 날들이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 거라 생각하면
종일토록 우울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스스로 사물을 분간하며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꼭 허락해 주세요.

누가 무얼 물으면 답해주고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온전히는 아니어도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병명 없는 통증도 순하게
받아 안을 테니
오랜 세월 길들여 온
일상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의 건강과 자유는
허락해 주시기를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그동안 내내
남을 위해서만 기도했으니
오늘은 좀 이기적인 기도를
바쳐도 되는 거지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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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편으로
햇살 예쁜 봄날 아침을 엽니다.
새로운 얼굴로 오는 시간을 품에 안고서!^^


시간의 새 얼굴

젊은 날엔
더디 가던 시간이
나이 드니
너무 빨리 간다고
그래서 아쉽다고
누군가 한숨 쉬며 말했지

시간은 언제나 살아서
새 얼굴로 온다.
빨리 가서 아쉽다고
허무하다고 말하지 않고
새 얼굴로 다시 오는 거라고
살아 있는 내가
웃으며 말하겠다.

날마다 일어나서
시간이 내게 주는
희망의 옷을 입고
희망의 신발을 신고
희망의 사람들을 만난다.
희망을 믿으면 희망이 온다
슬픔도 희망이 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푸념하는 그 시간에
오늘도 조금씩
인내와 절제로 맛을 내는
희망을 키워야지

마침내는 시간의 은총 속에
나 자신이 희망으로 태어나
이 세상 누군가에게
하나의 선물로 안길 때까지!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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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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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시인이 자연과 사람과 책등에서 만나는 것들을 사유하고 옮겨적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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