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 끌리는 이야기를 만드는 글쓰기 기술
도제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제희 작가의 첫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를 감탄하면서 읽은 터라 기대감에 부풀어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 책이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선생님이 아니라 글쓰기 친구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짜임새 있는 구성, 다정한 필체, 풍부하고 실용적인 사례, 읽고 따라 쓰다 보면 시나브로 완성되는 좋은 에세이 한편 이라는 소득까지, 나무랄 것이 없는 작법서다. 


우선 ‘풍부한 어휘와 문법에 충실한 문장이 가득한 글’보다 ‘비문투성이지만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글’을 더 높게 평가한 대목은 많은 글쓰기 지망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문장력이 뒷받침되면 더 좋겠지만 독자 들은 문장력이 뛰어난 글보다는 ‘독창적이고 재미나며 정보가 많이 담긴’ 글을 더 좋아한다. ‘새롭고 재미난 글’이라면 독자 들은 맞춤법이나 문법 오류와 같은 자잘한(?) 문제쯤은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관용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모두 소설가나 수필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잡아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본인이 겪은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글쓰기’ 실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심을 가득 담아서 마지막 이유를 덧붙이자면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는 글감 찾는 법,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방법, 제목 정하는 방법, 유머의 기술, 퇴고하는 법, 합평 비결로도 모자라 모든 글쟁이의 최종 목표인 출간을 위한 출판사 투고 요령까지 다룬다. 내가 글쓰기 책을 작가를 우러러보는 이유가 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책 자체가 재미가 없고 훌륭한 글이 아니라면 너무나 비극적이지 않겠냐는 걱정이 앞서서 나는 감히 글쓰기 책을 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낸 작가는 우선 내가 한 수 접어주는 편이다.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 자체가 너무 재미나고 웃기지 않는가.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 기술에 대한 모범을 제목으로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런 자상하고 따뜻한 문장은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의 좋은 사례다. 


어휘력이 풍부해지면 글을 써야지, 라고 생각하는 건 다시 태어나서 대작가가 되어야지, 와 같은 말입니다. 어휘는 그냥 많이 읽고 쓰면서 짬짬이 익히면 됩니다. 뭣보다 우리에겐 사전이 있잖아요.


방문을 열자 달콤하고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날, 파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온몸을 적셨다.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첫 문장으로 독자 들을 글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전략은 나도 꼭 써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글쓰기를 하면 합평을 해봐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다. 러시아 국민 시인 푸시킨은 ‘작가는 조언을 핑계로 칭찬을 해줄 독자를 찾기 마련이다’라는 뼈 때리는 말을 했다. 그렇다. 합평은 좋지만 아무리 개똥 같은 글을 쓰더라도 대문호의 글이라고 아부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신의 글을 칭찬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부딪침이 버거운 평화주의자’라는 도제희 작가의 통찰에 탄성을 내질렀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격언이 작가만큼 잘 적용되는 직업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비판에는 무조건 귀를 기울여야 할까? 도제희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글을 쓰다 보면 이거다 싶은 확실한 포인트가 있다면 누가 그 부분을 비판하더라도 지켜나가야 하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가 아니고 의사이겠지만 자기 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실용적이고 중요한 조언 하나만으로 나는 <방구석 일기도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를 지금까지 읽어온 글쓰기 책 중에서 최고로 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12-28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난데없이…의 작가였군요.
글쓰기 책 재밌게 쓰는 작가들이 더러 있더군요.
더구나 두껍지도 않아요.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올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내 주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균호 2022-12-28 23:02   좋아요 0 | URL
네네 일독을 권합니다 !!

도제희 2022-12-2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서평으로 책을 뒷받침해주셔서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감사해요. 말로만 하니까 사기꾼 된 것 같고 고민이 됩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박균호 2022-12-28 23:02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니까 좋은 서평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감사하지요. 이 책 이 잘되길 바래요.
 

글 쓰는 사람으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은 마감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일 년 치 연재 글을 미리 통째로 준 적도 있다. 많은 연재와 출간을 하면서 언제나 마감을 지켜왔는데 유일하게 그러지 못한 책이 바로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였다. 고전을 읽기도 힘든데 다른 시각으로 써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계약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출판사 사장님의 독려와 이해 덕분에 간신히 써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중세 영어로 된 셰익스피어 소네트(14행시)를 수십편 암기하라는 대학 은사 님의 과제를 받고 나서 암담했던 시절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소네트도 <고전적이지 않았던 고전 읽기>도 막상 해보니까 되긴 되더라.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겪었지만 내 책 중에서 가장 잘 풀린 책이 되었다. 세종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고 5쇄도 찍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영역의 책을 쓸 수 있는 안목과 글쓰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모름지기 글 쓰는 사람은 새로운 장르와 콘셉트에 도전해야 하며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성과는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기도 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이제는 슬슬 지겹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2-21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써 주시면 열심히 읽겠습니다. 새로운 도전 ! 응원합니다 소설가 박균호작가님 *^^*

박균호 2022-12-21 15:50   좋아요 1 | URL
아이코 응원감사합니다. ㅎㅎㅎ 기회가 되면 시도는 해보겠습니당...


은하수 2022-12-2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쓰기 도전 응원하겠습니다^^
도전! 파이팅!

박균호 2022-12-21 16:36   좋아요 1 | URL

친구신청
감사합니다!!

stella.K 2022-12-21 1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쓰기가 소원인데 이번 생엔 없지 않을까 싶은데
박균호님께서 쓰시면 저도 한 번 고려를...ㅋㅋ
암튼 저도 응원합니다!^^

박균호 2022-12-21 19:20   좋아요 1 | URL
먼저 모범을 보여주소서 ㅎ

stella.K 2022-12-21 19:23   좋아요 1 | URL
아유, 선배님이 먼저...!
책을 저보다 한참 먼저 내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ㅋㅋ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혹자는 독일 문학이 독일 사람의 성향을 닮은 것처럼 지루하고 딱딱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토마스 만이 쓰고 홍성광 선생이 번역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는다면 독일 문학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진지함이 매혹으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중편 소설이지만 소설 전체를 암기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치민다. 이건 마치 주인공 아센바흐가 흠모한 미소년 타치오에 대한 사랑에 버금가는 추앙에 가깝다. 길지 않은 중편이지만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통찰은 수십권의 대작에 뒤지지 않는다. 소설 전체가 한편의 아름다운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아와 유럽적인 영혼이 그에게 부여한 과제에 너무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창작에 대한 의무감에 지나치게 압박을 받고 있어서 기분 전환하는 일을 너무 싫어했다. 그는 다채로운 외부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93쪽> 이 부분을 읽고 내가 그토록 여행을 싫어하고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을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열정적이고 무조건적인 젊은 세대를 사로잡으려면 문제성이 있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에센바흐는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문제성이 많았고 무조건적이었다. 그는 정신의 노예가 되어 인식을 남용하였고, 종자로 쓰일 곡물을 찧어 가루로 만들었으며, 비밀을 누설하였고, 재능을 의심하였으며, 예술을 배반하였다. 303쪽> 젊은 친구를 이해하는 가장 공감이 되는 통찰!


<고독은 우리 안에 있는 독창성을 무르익게 하고 대담하고도 낯설게 하여 아름다움과 시를 낳게 한다. 321쪽> 이래서 유형 생활을 하던 도스토옙스키가 단 10분간만이라도 혼자 있을 자유가 없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본준 선생님의 건축 이야기 책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살아생전 페이스북 친구로 지냈는데 가끔 대화를 나누었다. 김중업 선생의 오래된 책을 자랑하자 ‘그 오래된 책을 가지고 계시군요’라고 말씀 하신 기억이 생생하다. 구본준 선생의 건축 이야기는 다정다감하고 재미나다. 특히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이 책의 첫 꼭지로 이진아기념도서관을 다룬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딸 이진아를 기념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세운 도서관이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마침 서대문구에서 독립 기념 공원을 부지로 내놓아 사재를 털어서 건립했다고 한다. 여러 지자체를 마다하고 서대문구를 선택한 것은 공원 부지를 내놓았기 때문에 도시계획 따위로 도서관이 사라질 위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서관이 완공되자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찾아서 휴지를 줍고 산책도 하면서 소일하신다고 한다.
이 사연 못지않게 감동적인 사연이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강의를 요청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11월 19일에 이진아 기념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2-11-07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진아 도서관이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축하합니다. 강연 잘 하십시오.^^

박균호 2022-11-07 10:00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11-07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본준씨의 책들 좋아하고, 그분이 운영하는 블로그도 열심히 드나들면서 건축 이야기를 읽었었어요. 정말 너무 갑자기 어이없게 가셔서 지금도 많이 아쉬운분이네요.
이진아 기념 도서관에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네요. 왠지 신선한 느낌! 저걸 기획한분 누군지 모르지만 센스만점인분일듯해요. ㅎㅎ 거기에 박균호님의 강연은 정말 찰떡궁합입니다. ^^

박균호 2022-11-07 14:39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이번 주말이 마침 8주기 랍니다.

mini74 2022-11-0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짓고 청소하시는 아버님이라니 ㅠㅠ 그나저나 중년남성의 책읽기라. 낯설어요 ㅎㅎㅎ

박균호 2022-11-07 15:3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처름 보는 콘셉트 이네료
 

<찬란한 타인들>은 유이월 작가의 첫 소설이다.

모르는 작가가 쓴 첫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유이월 작가가 SNS에 올리는 유머러스하고 재기발랄하며 돌직구처럼 대담한 글을 꾸준히 읽은 터라 두려움 없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찬란한 타인들>을 주문했다.

하필이면 주말에만 가는 본가로 배송지를 선택한 탓에 일주일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이 책을 읽고 싶어 했다. SNS에 재미있는 글을 대방출하는 한편 톡톡 튀는 아이템을 파는 자칭 거상이 쓴 소설이 무척 궁금하더라. 

우선 작가 소개를 읽었다. 매일 그녀의 글을 읽지만 지나온 행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문학을 전공했고 글과 관련된 여러 직업을 거쳤다고 한다. 미국에서 10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고 지금은 한국에 산다. 빛나는 혹은 재미있는 순간을 발견하길 좋아한다고.

<찬란한 타인들>을 다 읽고 나서 저자 소개를 다시 읽었는데 내가 읽어본 가장 잘 저자 소개 글이라고 생각한다. 저술과 관련한 저자의 경험과 소설의 내용을 적확하게 암시하기 때문이다. 
 

찬란한 타인들
▲ <찬란한 타인들> 찬란한 타인들
ⓒ 자유문방

관련사진보기

 
빛나며 재미있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괴테는 인간은 누구나 특별하며 고귀한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만의 고유한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살아온 행적은 한편의 드라마틱한 소설이다. 누구나 소설 같은 인생을 살지만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빛나고 재미난 순간을 수도 없이 만나지만 유이월 작가처럼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유이월 작가가 SNS에 글을 자주 올리는 이유도 알겠다. 그녀는 재미나고 신기한 순간과 에피소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글솜씨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을 캐치하는 센스와 그 순간을 기록하는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찬란한 타인들>은 신기하고 재미난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한 편이 몇 쪽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담긴 서사, 반전, 유머, 통찰은 하나같이 <백 년의 고독>과 같은 대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문학마저 흑백논리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등장인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서 쭉 그 길을 걷게 하는 구도는 식상하며 현실감도 떨어진다. 유이월 작가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여러 겹의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과연 <찬란한 타인들>에는 작가의 이런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가령 '강아지 모리'를 살펴보자. 주인공은 더 이상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집에서 수십마일 떨어진 기차역에 버리고 온다. 그런데 영리한 반려견은 그 먼 거리를 되돌아온다.

반려견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만 결국 주인공은 다시 반려견을 같은 장소에 유기하기로 결정한다. 반려견을 사랑하지만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현실에 놓인 주인공의 마지막 말은 유이월 작가의 모든 역량이 발휘된 가장 기발하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거기에 버려야 모리가 또 나를 찾아올 테니까'


도벽이 있어서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는 친구를 향해서 '좋은 사람과 결혼하게 돼서 기뻐'라고 축하해준다거나 고객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스스럼없이 총을 들이대는 업자가 방금 협박한 사람의 가게에서 맥주를 들이키고 값을 치르며 '그래도 양아치는 아니다'고 너스레를 뜨는 장면 들이 모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중 캐릭터를 보여준다.

게다가 고객이 의뢰한 일을 처리하느라 총으로 사람을 협박한 다음 '요샌 총 없이는 일이 잘 안 풀린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의 극한값을 맛보게 한다. 대체 유이월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찬란한 타인들>은 <신기한 타인들>로 제목을 바꾸어도 좋은 만큼 신기한 사람 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톡톡 튀는 반전과 유머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배꼽이 두 개인 여자, 본인과 똑같은 점을 가진 사람이 근처에 오면 그 점이 움직이는 신기한 신체를 가진 여자, 구치소에 대한 리뷰를 남기고 별점을 남기는 사람,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등. 

가끔 재미난 책을 칭찬하기 위해서 '아껴가면서 읽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그러나 <찬란한 타인들>은 실제로 아껴가면서 읽게 되더라. 반대로 이 소설이 176쪽에 불과하다는 것이 진심으로 다행스럽다. 한쪽 한쪽 넘길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피식 웃게 되는 것도 만만찮은데 기발한 문장을 기록하느라 볼펜과 공책까지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잖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