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으로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은 마감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일 년 치 연재 글을 미리 통째로 준 적도 있다. 많은 연재와 출간을 하면서 언제나 마감을 지켜왔는데 유일하게 그러지 못한 책이 바로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였다. 고전을 읽기도 힘든데 다른 시각으로 써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계약을 없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출판사 사장님의 독려와 이해 덕분에 간신히 써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중세 영어로 된 셰익스피어 소네트(14행시)를 수십편 암기하라는 대학 은사 님의 과제를 받고 나서 암담했던 시절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소네트도 <고전적이지 않았던 고전 읽기>도 막상 해보니까 되긴 되더라.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을 겪었지만 내 책 중에서 가장 잘 풀린 책이 되었다. 세종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고 5쇄도 찍었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영역의 책을 쓸 수 있는 안목과 글쓰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모름지기 글 쓰는 사람은 새로운 장르와 콘셉트에 도전해야 하며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성과는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기도 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이제는 슬슬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