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에 있는 도서관에서 강연 의뢰를 했다. 대구는 청소년과 대학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니 반가운 마음에 선뜻 수락했다. ‘이토록 재미난 고전 소설 읽기라는 주제로 고전 속에 숨겨진 이야기와 작가들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로 하고 파워포인트까지 작성했다. 그런데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내 신간인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을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래도 학부모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으로 학력과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은 곳이니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교직 생활과 독서 인생을 통틀어 특정 대학을 목표로 지도한다거나 독서를 통해서 더 좋은 대학에 간다는 목표를 세운 바가 없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도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나에게 출간의뢰를 했으며 서울대에 가기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요즘 청소년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더 발전적인 독서를 하기 위한 발판쯤으로 쓴 책이다.

 

사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20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사람들이 많이 읽은 요즘 책에 지나치게 무관심하였으며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읽는 책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새로운 생각과 영감을 주는 책이 많다는 것을 통감하였다. 즉 모두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자녀가 책을 많이 읽기를 바라는 학부모에게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책이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은 일찍이

양친을 여의었고 더구나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백부 슬하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백부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목사였다. 그는 필립에게 성경을 암기하라고 명령했고 필립은 힘겨워서 혼자 방에 틀어박혀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자상한 숙모는 필립이 운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방문 앞에서 필립이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히 노크했다.

 

숙모는 필립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운 그림이 담겨 있는 그림책을 필립에게 보여주었다. 필립은 그림에 빠져 그림 뒤에 쓰인 글씨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고 자발적인 독서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독서에 빠진 필립은 다양한 고전을 섭렵했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의사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까지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린다.

 

자식이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하는 부모는 강압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서점을 다니거나 좋은 책을 자녀에게 읽어줌으로써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나저나 내 딸아이가 서울대 낙방생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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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24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박한 고민이네요,ㅎㅎㅎ

박균호 2023-05-24 16:04   좋아요 1 | URL
나름 진지한 고민입니다..ㅎㅎ

stella.K 2023-05-24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야할 책이 늘어나네요. 인간의 굴레 읽은 것 같긴한데
기억이 안 나네요.ㅠ
근데 따님이 공부를 잘하긴 했나 봐요. 서울대 원서를 넣어봤다는 게 어딥니까?
저는 꿈도 안 꿨습니다.ㅋㅋㅋ

박균호 2023-05-24 16:04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쨌든 떨어졌는데요 몰..
인간의 굴레...이거 정말 강추해요. 저도 오랜만에 새로 읽었는데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구요.
 
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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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이 쓴 <파계 破戒>는 백정 출신임을 숨기고 교사 생활을 하는 우시마쓰의 번민과 내적 갈등을 다룬다. 이 책은 190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애타(천민)라는 계급이 실존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제도는 타파하였으나 천민엔 대한 뿌리 깊은 멸시로 새로 평민이 된 사람 이란 의미로 신평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가하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백정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교사로 멀쩡히 근무하다가 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탄로 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부족해 하숙집에서도 쫓겨난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우시마쓰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죽을죄를 저지른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 지낸다. 일본 사회에서 백정을 비롯한 천민이 겪은 고초는 소설 내용보다 훨씬 가혹했다. 예산 부족으로 천민 출신 자제를 일반 학교에 다니게 하였지만 ‘차별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게 하였으며 교실 한쪽 바닥을 한 단계 (1.2미터) 내려 판자벽을 치고 천민 출신 아이돌의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거기에서는 칠판도 교사도 보이지 않았다. 온갖 차별과 멸시로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천민 출신 자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에타(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부락(部落)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부락! 왠지 익숙한 단어다. 실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마을을 부락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부락이라는 단어를 애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 들이었다. 선배 일본인 교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으리라. 불길한 예감에 잠시 검색을 해보니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몇십년 전까지 자주 사용하던 부락이란 말이 일본의 천민 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하는 부락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들은 조선사람이 사는 동네를 천민 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며 이런 속뜻도 모른 채 우리나라 사람 들은 자신 들이 모여 사는 곳을 ‘천민이 사는 마을’로 불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936년 서정주가 주축이 되어 발간한 동인지 이름이 ‘시인 부락’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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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2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3-05-08 08:28   좋아요 1 | URL
어이쿠...과분한 칭찬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기분좋게 한 주를 시작하게 되네요 !!
 

미혼 시절 테니스와 주식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비가 오면 테니스를 못 하니까)와 주식 창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주식이나 테니스는 일희일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스릴도 있었다. 혹독한 쓴맛을 보고 주식에서 발을 뺀 지가 이십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책을 내고서부터 주식과 다름없는 스릴을 맛보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내 책의 판매 포인트를 살펴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식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주식을 할 자금이 없다는 것도 주식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된 약간(?)의 동기가 되었음을 자백해야겠다.
그런데 이 생활도 오래되다 보니 살짝 지친다. 내 출간 생활이 주로 실패만 거듭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일단 책이 나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팽겨 두고 어느 날 출판사에서 2쇄를 찍게 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오! 면피는 했네’라고 안도를 하고 5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오면 ‘오! 대박인데’라고 한마디하고 끝내고 싶다. 그리고 책이 나오면 SNS에 홍보하는 것도 지치고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건 뭐 군대 간 아들이 첫 휴가 때나 반갑지 너무 자주 나오면 살짝 귀찮은 격 아닌가. 그리고 내 책이 나온다고 내가 이것저것 해봐야 별 효과도 없다.
그냥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으면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 생각 끝에 지난번 책을 내면서 작성해둔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삭제해버렸다. 그냥 고고하게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지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내 소신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당장 삭제한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복구하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나 하나만 믿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한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에이, 이번에도 틀렸어’라고 술 한잔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피 같은 돈을 투자한 출판사는 불쌍해서 어떻게 하냔 말이다.
원고만 넘기고 나 몰라라 하면 이건 마치 친구를 불구덩이 속에 놔두고 혼자 도망친 배신자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인지 몰라도 얼마 전에 읽었던 고우리 작가의 <편집자의 사생활>에서 ‘책 팔아 10층 자리 빌딩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보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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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4-26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신간으로 나오는 책들이 많아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책들도 판매부수가 이전처럼 많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2쇄를 찍지 못하는 책들도 많을 것 같고요.
주식은 미인대회라고 들었는데, 책에서도 그런 건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다음엔, 주식관련 책을 쓰실 수도 있겠네요.

이번책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박균호님, 좋은 하루 되세요.^^

박균호 2023-04-26 16:12   좋아요 2 | URL
저는 서이데이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주로 2쇄는 찍는 편이에요...그런데 주식채은 도저히 ㅎㅎㅎ 주식으로 패가 망신하는 법..뭐 이런책은 가능하겠습니다. 감사해요.

2023-04-26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7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아이가 대입을 치를 때 면접관에게 욕만 하지 않으면 합격이라고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모 여대에 응시했었다. 내 인생에는 재수나 지방대는 없다는 딸아이의 굳은 의지의 표출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우등생의 상징이었던 모 지방거점 국립대학을 권했지만 인서울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절에 입시를 한 내 의견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쨌든 그 여대 면접관은 대뜸 딸아이의 독서 활동을 살펴보다가 혹시 폐미가 아니냐?’고 묻더란다. 마치 정보기관이 간첩을 색출하는 듯한 뉘앙스였다고 한다.

 

과연 딸아이의 독서 활동에는 여성주의와 관련된 책이 있긴 했다. 딸아이는 특별히 폐미성향은 아니지만, 그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읽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해명할 일도 아닌데 해명이 되고 말았다. 연이어 너 싫어라는 의사를 확실히 품은 공격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딸아이는 최초합격자 명단에 없었다.

 

며칠 뒤에 서울대 면접장에 갔는데 어찌나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든지 불합격해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말했더랬다. 모 여대에서 당한 수모와 모욕을 치유하고 왔다나. 몇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서울대 면접관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살짝 기대했지만, 딸아이는 서울대에 합격하지 못했다.

 

나는 이 불합격을 두고 오랫동안 자책했는데 혹시 서울대 자소서 4번 항목 즉 독서 활동란에 손석희 아나운서의 <풀종다리의 노래>를 읽고 기록하도록 권한 것이 실수는 아닌가 생각했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서 불호로 비칠 수도 있는 인물 아닌가. 그러나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을 집필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서울대는 단 한 명의 지원자가 읽은 책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언론분야를 지망한

딸아이가 기록한 <풀종다리의 노래>가 몹시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니까 이 책을 독서 활동에 기록한 학생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은 대학진학에 유리한 책 목록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요즘 학생들이 관심이 있는 분야와 새로운 생각을 소개함과 동시에 나아가 단 한 명의 지원자가 읽은 책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썼다.

 

그래서 20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반드시 각 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았다. 당연한 일이다. 서울대는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중에서 대놓고 이런 책은 그다지 권할 만한 책도 아니며 좋은 내용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20권의 책을 비판적이고 생산적으로 읽어서 자신만의 독서목록을 찾아 나가도록 돕기 위해서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을 냈다. 말하자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아울러 요즘 것들의 생각이 낯선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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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11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여대 면접관 진짜 고소하고싶네요. 무슨 말도 안되는 질문을..... 대학교의 면접관조차 저럴진대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아직도 아득하게 멀었구나 싶네요.

아참 다시 새 책을 내셨군요. 부지런한 박균호님. 축하드립니다. ^^

2023-04-11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3-04-11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아까 페이스북에서 읽었는데, 서재 들어와서 다시 만나네요. ㅎㅎ

저도 오래 전 어느 대학 면접 보던 날이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책이나 시사 문제에 대해
떠들었던 이야기들이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박균호 2023-04-11 13:27   좋아요 1 | URL
그 때야 뭐 다들 그렇지 않겠어요. 면접관님들도 이해하시겠죠 ㅎㅎ

서니데이 2023-04-11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대학교 지원할 정도면 최상위권이었겠어요. 많이 부럽습니다. 학교마다 원하는 지원자 유형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일단 성적이 좋지 않으면 원하는 학교에 원서쓸 기회가 오지 않겠지요.^^
오늘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박균호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박균호 2023-04-11 2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그냥 뭐 적당히...그리고 결국 떨어지고 다른 학교 갔는데요..ㅎㅎㅎ 서니데이님 언제나 감사해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래요.

moonnight 2023-04-12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따님대학(입학식이었나요?@_@;;)방문 때 청소하시는 분들 휴게실 얘기 하셔서 많이 뭉클했었는데요. 저도 부러워요2. 따님이 엄청 수재@_@;;;;;; 조카아이 입시가 다가오니 여러모로 안절부절하네요. 아직 2학년이지만 ^^;

내 인생에는 재수나 지방대는 없다! 라는 따님의 확고한 의지가 멋져요 호호^^

박균호 2023-04-12 19:18   좋아요 2 | URL
아...종교 재단 학교라서 그런지 뭔가 좀 인간적이더라구요. 수재까지는 아니구요 ㅠㅠ 조카아이 입시까지 신경쓰시고 엄청 자상하십니다.

얄라알라 2023-04-1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저는 책 권하는 책을 우선 순위 삼아 찾아 읽진 않는데
따님의 에피소드가 곁들여진 이 리뷰를 읽으니, 갑자기 이 책 꼭 읽고 싶어졌습니다^^
서울대 지원할 일은 없겠지만요 ㅎ

박균호 2023-04-17 08:22   좋아요 0 | URL
아이코 감사합니다.
 
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고우리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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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책을 낸 나는 여러 편집자를 거쳤다. 사소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고 타인의 지적에 유독 민감한 내가 언제나 굽신거리며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르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편집자다.

 

내가 한 일을 지적하며 다시 하라고 시키면 내 잘못을 제쳐두고 우선 화부터 낼 준비를 하지만, 편집자가 짧은 머리말을 네 번째 다시 쓰라고 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편집자가 무슨 일을 시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에게 편집자는 작가 위의 작가다.

 

나에게 편집자는 글쓰기 선생님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만큼 작가는 편집자로부터 훈육(?)도 받지만 보살핌도 받기 마련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저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믿는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편집자는 작가에게 다양한 역할을 선사하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굳이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영원한 내 편'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출판사가 10개에 육박한다던데 의외로 이 바닥이 좁아서 두어 다리만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우리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사생활>을 만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나는 모 출판사에 나온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아껴가면서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편집자가 고우리 선생이었다.

 

대작이지만 번역이 유려하고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고우리 선생이 유능한 편집자였다는 것을 실감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집자의 사생활>을 펼쳤다.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텐데 출판계에 이상한 사장은 있어도 이상한 편집자는 거의 없다. 내가 만났던 많은 편집자들은 내가 쓴 엉성한 글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했는데 자괴감이 들어서 한 번은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데 직접 책을 내보는 것은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읽을 줄만 알지 쓸 줄은 모른다'라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다 보니 편집자가 '읽을 줄만 아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하게 된다. 고우리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며 생동감이 넘치는 에밀 졸라의 글이 떠오른다.

 

편집자라고 출판에 대한 거시적인 문제를 고상하게 풀어나가지 않고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구어체가 넘치지만, 맥락이 잘 이어지고 독자들이 마치 글쓴이와 함께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질 만한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아울러 양념처럼 들어 있는 '업무 일지' 코너는 내가 너무 재미나게 읽었던 '열린책들' 홍지웅 사장이 쓴 출판 이야기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좀 더 재미난 현실판'으로 읽힌다.

 

그래서 에밀 졸라의 글은 아껴가면서 읽게 되지만 고우리 작가의 글은 나도 모르게 한 번 앉은 자리에서 허망하게 다 읽고 말았다. 이건 뭐 아껴 읽겠다는 다짐조차 할 겨를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잘 읽힌다.


그런데 웬걸? 퇴사하고 나서부터 SNS를 무지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심히 하게 '됐다'. 무슨 전략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심심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두 번째 회사에서고 세 번째 회사에서고 연봉'협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연봉이란 언제나 '정해지는' 것이지 '협상'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올해 당신 연봉은 얼마일세. , , 감사합니다. 넙죽!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한 유일한 아쉬움. 나는 왜 고우리 편집자에게 출간 제의를 받지 못했는가! 새삼 장 그리니에의 <>에 헌정한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가 생각난다. 고우리라는 유능하고 눈 밝은 편집자와 함께 작업했고 작업을 할 이름 모를 작가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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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5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면 고 편집자님 연락하실 것 같은데요? ㅎㅎ
맞아요. 편집자는 작가위의 작가.
편집자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텐데 왜 말을 안 듣겠습니까?
근데 왜 작가와 편집자는 견원지간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책과 통의동에서…읽어보고 싶네요.^^

박균호 2023-04-05 10:44   좋아요 1 | URL
네 출판이야기인데 은근 재미나더라구요. 두꺼운 책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혀요.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

stella.K 2023-04-05 10:49   좋아요 2 | URL
앗, 근데 또. 책 내셨나 봅니다.
서재 대문에…!
축하드립니다. ^^

박균호 2023-04-05 12:07   좋아요 2 | URL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3-04-05 12:46   좋아요 2 | URL
저도 stella K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고우리 편집자님의 러브콜을 받으실지 모르는 박균호 작가님^^

2023-04-09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