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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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이 쓴 <파계 破戒>는 백정 출신임을 숨기고 교사 생활을 하는 우시마쓰의 번민과 내적 갈등을 다룬다. 이 책은 190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애타(천민)라는 계급이 실존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계급제도는 타파하였으나 천민엔 대한 뿌리 깊은 멸시로 새로 평민이 된 사람 이란 의미로 신평민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에게 극심한 차별을 가하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백정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는 교사로 멀쩡히 근무하다가 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탄로 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부족해 하숙집에서도 쫓겨난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 우시마쓰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죽을죄를 저지른 것처럼 전전긍긍하면서 지낸다. 일본 사회에서 백정을 비롯한 천민이 겪은 고초는 소설 내용보다 훨씬 가혹했다. 예산 부족으로 천민 출신 자제를 일반 학교에 다니게 하였지만 ‘차별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게 하였으며 교실 한쪽 바닥을 한 단계 (1.2미터) 내려 판자벽을 치고 천민 출신 아이돌의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거기에서는 칠판도 교사도 보이지 않았다. 온갖 차별과 멸시로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천민 출신 자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에타(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부락(部落)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부락! 왠지 익숙한 단어다. 실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마을을 부락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부락이라는 단어를 애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 들이었다. 선배 일본인 교사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으리라. 불길한 예감에 잠시 검색을 해보니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몇십년 전까지 자주 사용하던 부락이란 말이 일본의 천민 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하는 부락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들은 조선사람이 사는 동네를 천민 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며 이런 속뜻도 모른 채 우리나라 사람 들은 자신 들이 모여 사는 곳을 ‘천민이 사는 마을’로 불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936년 서정주가 주축이 되어 발간한 동인지 이름이 ‘시인 부락’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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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2 0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3-05-08 08:28   좋아요 1 | URL
어이쿠...과분한 칭찬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기분좋게 한 주를 시작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