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시절 테니스와 주식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날씨(비가 오면 테니스를 못 하니까)와 주식 창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주식이나 테니스는 일희일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스릴도 있었다. 혹독한 쓴맛을 보고 주식에서 발을 뺀 지가 이십년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책을 내고서부터 주식과 다름없는 스릴을 맛보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내 책의 판매 포인트를 살펴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식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주식을 할 자금이 없다는 것도 주식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게 된 약간(?)의 동기가 되었음을 자백해야겠다.
그런데 이 생활도 오래되다 보니 살짝 지친다. 내 출간 생활이 주로 실패만 거듭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일단 책이 나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팽겨 두고 어느 날 출판사에서 2쇄를 찍게 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오! 면피는 했네’라고 안도를 하고
5쇄를 찍었다는 소식이 오면 ‘오! 대박인데’라고 한마디하고 끝내고 싶다. 그리고 책이 나오면 SNS에 홍보하는 것도 지치고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건 뭐 군대 간 아들이 첫 휴가 때나 반갑지 너무 자주 나오면 살짝 귀찮은 격 아닌가. 그리고 내 책이 나온다고 내가 이것저것 해봐야 별 효과도 없다.
그냥 글이나 쓰고 책이나 읽으면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 생각 끝에 지난번 책을 내면서 작성해둔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삭제해버렸다. 그냥 고고하게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지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내 소신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당장 삭제한 서평가 명단과 연락처를 복구하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나 하나만 믿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상태에서 투자한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에이, 이번에도 틀렸어’라고 술 한잔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피 같은 돈을 투자한 출판사는 불쌍해서 어떻게 하냔 말이다.
원고만 넘기고 나 몰라라 하면 이건 마치 친구를 불구덩이 속에 놔두고 혼자 도망친 배신자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인지 몰라도 얼마 전에 읽었던 고우리 작가의 <편집자의 사생활>에서 ‘책 팔아 10층 자리 빌딩을 올리겠다’는 포부를 보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책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