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 - 사춘기 5, 6학년을 위한
김선호 지음, 신병근 그림 / 노르웨이숲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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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5, 6학년을 위한 비밀 상담소책이라고 하니까 중고등학교 교사이며 자식이 이미 직장인이 된 내가 무슨 공감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의아심을 가졌다. 그러나 첫 번째 고민 상담소부터 제대로 각 잡고 읽게 되더라. 친구가 자꾸 본인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고민인데 이 고민을 접하니 인간의 모든 고민과 해결책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확신도 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친구가 자신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싸움하고 학폭위원회까지 넘겨지는 사건이 있었다.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의 고민 상담처럼 한 학생이 다른 친구가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고 상대 학생은 노려보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감정이 격해져서 심각한 몸싸움을 한 사건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자초지종을 다투고 학폭위에 넘겨 처벌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데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를 읽다 보니 우리는 그동안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학생의 잘잘못을 따져 처벌하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었나라는 반성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선호 선생에 따르자면 많은 사람이 째려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해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일까? 상당수가 본인 스스로 째려본다고 생각한 친구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그 악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 아이가 나를 기분 나쁘게 쳐다보잖아. 그러니까 내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라는 이유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본인이 어떤 이유로 그 친구를 싫어하는지부터 찾아내서 본인이 던졌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 내가 사실은 그 친구의 말투를 싫어했던 거구나. 그 말투가 계속 귀에 거슬렸던 거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인정하면 본인이 던진 마음을 되찾고 굳이 다른 이유를 찾아서 그 친구에게 품은 나쁜 감정을 그럴듯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초등학생의 고민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오십 대 후반을 달려가는 내가 지금껏 풀지 못한 내 평생 과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늘 한참이 지나서야 그 당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이불 킥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늘 순발력과 재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이다 쌤의 비밀 상담소>를 읽고 나서야 순발력과 재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내성적이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남다르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내성적이고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타인이 뭘 원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섣불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뜻 말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늘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못한 것은 내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삼 김선호 선생의 통찰이 위로된다. 좀 더 일찍 이 책이 세상에 나왔더라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엉뚱하게 나를 자책하면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민에 대한 해결책은 참 쉽고 간단하다. 원하는 걸 곧장 말하기 어려울 때는 대답을 미루는 것이다. “잠깐, 생각 좀 해 보고.” 잠깐 시간을 두는 것은 뭘 선택할지 고민하려고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바를 말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여유를 가진 다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번에는 짬뽕이 아니고 짜장면을 먹고 싶어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엄마의 잔소리 문제, 부모님의 이혼, 용돈 문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생각, 여자 친구와의 스킨십, 야한 동영상, 자해, 다이어트, 낮은 자존감 등에 관한 살아 있는 고민이 등장하며 저자 김선호 선생은 관념적이고 뻔한 조언이 아니라 누구나 이 책을 읽기만 한다면 쉽게 실천할 수 있고 효과 만점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이 참으로 신비롭다는 것은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어떤 독자가 읽더라도 그 독자의 처지에 맞게 읽힌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것처럼 세 살 고민이 여든 고민까지 간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평생 지고 갈 수도 있는 고민을 이 책 권을 읽음으로써 말끔히 해소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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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2-0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균호님 설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박균호 2024-02-09 08:1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언제나 감사드려요 . 복 많이 받으세요.

얄라알라 2024-02-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균호 작가님^^ 설 연휴 가족분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박균호 2024-02-09 08:14   좋아요 1 | URL
아이코 정말 반가운 분이네요. 정말 오랫만에 뵙네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김오랑 -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준철 지음 / 더프레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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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386세대라면 부하를 대신하여 수류탄에 몸을 던진 강재구 소령의 희생정신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듣고 교과서에서도 심심찮게 접했다. 그러나 12.12 군사 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고자 반란 세력과 교전하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거의 들은 바가 없다. 내가 김오랑 소령에 대해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제5공화국을 그린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이마저도 김오랑 소령의 평소 인격이라든가 애국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다뤄질 뿐이다. 12·12 사태라는 반국가적 사태에서 그나마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된 것은 장태완 수경 사령부의 처신과 김오랑 소령의 애국심과 충성심인데 우린 그동안 김오랑 소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았다.

 

이런 면에서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안일한 불의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라는 신조를 지키며 살았으며 서울의 봄특전사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이며 군사 반란에 맞서 사령관을 지키고 군과 국가의 체제 수호를 위해 몸 바친 김오랑 소령의 일대기를 다룬 점에서 의미가 깊은 저작이 아닐 수 없다.

 

300여 쪽이 훌쩍 넘은 분량에 김오랑 소령의 일생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담은 이 책은 김오랑 중령 추모회를 이끄는 김준철 선생이 자신의 일생 중에서 일부를 아낌없이 받쳐서 세상에 나오게 된 대 저작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좀 더 실감 나는 서울의 봄을 체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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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취직에 성공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문과 출신으로서 제 전공을 찾아서 취업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취업 시즌이니 이곳저곳에 원서를 냈고 운 좋게도 두 군데가 얻어걸린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부녀는 때아닌 다툼을 하고 있고 딸아이도 어느 회사에 출근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삼십 분 간격으로 생각이 달라진다나. 한 회사는 네임벨규가 높고 인지도가 높으며 규모가 큰 회사인데 재미가 없는(?) 직군이고 다른 회사는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니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딸아이와 다툼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서머싯 몸<인간의 굴레에서>에서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이 바로 진로에 관한 문제다. 주인공 필립은 조실부모하고 백부 슬하에서 자랐는데 완고한 백부는 필립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돈을 잘 버는 회계사를 하라고 강권했지만, 필립은 자기 적성을 쫓아서 파리로 미술 공부를 떠났다.

 

예술로 성공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참담한 실패를 하고 돌아온 필립을 두고 백부는 나무랐지만 필립은 백부에게 일갈을 가한다. “다른 사람이 권한 좋은 선택을 해서 얻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길로 가서 실패한 경험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내 자식 문제와 부딪히니 적성보다는 보수와 인지도 높은 회사를 권하게 되더라.

 

적성에도 맞지 않는 기름집(정유회사) 면접에 가라고 닦달했고 적성에는 맞지 않는 직군이지만 좀 더 보수가 높고 규모가 큰 회사에 가라고 줄기차게 설득했다. 물론 딸아이는 부모의 조언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는 성정이 아니다. 일종의 답정녀인데 자신의 고충을 그저 공감해달라고 할 뿐 정작 결정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되돌아보니 딸아이의 결정은 언제나 옳았다. 대학 입시 때도 그랬다. 6장의 원서 중에서 한 장만이라도 교육대학에 써달라고 애원했건만 딸아이는 가볍게 무시하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길에 몰빵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갈 때도 미국이라면 총기사건과 마약 그리고 인종차별을 먼저 떠올리는 나는 반대했지만, 딸아이는 제 뜻대로 비행기를 타버렸다.

 

휴학하고 인턴을 할 때도 나는 그럴 시간에 차라리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권했지만, 딸아이는 1년을 꽉 채워서 휴학하고 인턴으로 근무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룬 성과는 우리 부부의 반대를 무시한 결과물이다. 더구나 작금의 학교 상황을 보아하니 딸아이가 우리 말을 듣고 교대에 덜컥 진학했다면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도 못 감고 죽을뻔했다. 어쨌든 조만간 부모의 뜻에 반하는 딸아이의 결정에 또 서서히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하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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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1-2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웃음이 나네요. 자식은 정말 청개구리인가 봅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부모님 말씀 지긋지긋하게 안 들어서 여기까지 왔죠.ㅋㅋ
자식은 다 그런가 봐요.
나쁜 짓 하는 것만 아니면 무조건 응원해 주세요.
나중에 부모 원망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그나저나 따님이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축하합니다.^^

박균호 2023-11-30 08:47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에요. 잘 계시죠?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3-11-2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식이네요. 축하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박균호 2023-11-30 08:4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잘 계시죠?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그냥 2023-11-30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새 같은 취업 난 시대에 따님이 여간 똘똘하지 않으면 두군데나 됐겠어요? 그냥 결정 하는 데로 두고 볼수 밖에 없겠네요. 아무튼 축하합니다. 정말 자랑하고 싶으실 거 같아요.

박균호 2023-11-30 08:48   좋아요 0 | URL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감사해요..

bookholic 2023-11-30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축하드립니다^^
따님의 멋진 사회 첫출발 응원합니다~~

박균호 2023-11-30 08:48   좋아요 0 | URL
북홀릭님의 자녀는 더 잘 될 거에요. 감사합니다.

2023-12-15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3-12-16 04:07   좋아요 1 | URL
아...그냥 청소년용 소 책자에 가까운 겁니다..ㅎㅎ 그래도 정말 고맙습니다.

루피닷 2024-01-0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균호 2024-01-01 04:05   좋아요 1 | URL
어이쿠 감사합니다 !! 루피닷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도도새75 2024-01-03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꺼비 북클럽 책으로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어보고 싶어서 글 찾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따님이 정말 능력이 좋으네요. 축하합니다! 2024년, 행복한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랍니다~

박균호 2024-01-04 04:42   좋아요 0 | URL
어이쿠..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많으셨어요 ㅎㅎ 덕담 정말 감사합니다. 도도새님도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moonnight 2024-02-1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명석한 따님이 요즘 같은 때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까지@_@;; 축히드립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차곡차곡 이루어나가는 따님 이야기에 감동받고 부럽기도 합니다^^

박균호 2024-02-12 19:02   좋아요 1 | URL
딱히 명석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자기 진로에 맞춰서 대외활동을 많이 한 것이 도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칭찬 감사합니다. !! 새 해 복많이 받으세요.
 
태권도와 바이올린 - 초등교사 김지혜가 사는 세상
김지혜 지음 / 읽고쓰기연구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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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교직생활 경험을 담았으니 교단 일기라고 할 수 있겠고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하고 있으니 독서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태권도와 바이올린이라는 중년 여성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취미에 관한 이야기도 많으니 일종의 자기 계발서라도 해도 되겠다. 더구나 교단 경험과 취미 생활 그리고 성찰을 거쳐서 저자 자신이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도 지켜볼 있으니 성장기록으로도 읽힐 수도 있겠다.
 
자전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책에서 흔히 보일 수 있는 자기 과시나 자기 자랑이 거의 없으며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함께 성장해나가겠다는 의도가 뚜렷한 책이다. 저자 김지혜 선생은 본인의 교직 생활과 인생 경로를 담담하게 들려주면서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을 주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태권도와 바이올린>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교단 일기에서 전혀 접하지 못한 깨알 같은 정보가 많다.
 
단테의 <신곡> 첫 문장이 생각나는 책이다.
인생의 반고비에서 문득 뒤돌아보니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네. 톨스토이도 단테도 인생의 절반쯤 살아보니 문득 가슴속에 찬 바람이 불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생겼고 톨스토이는 <참회록>을 단테는 <신곡>을 집필하였다. 톨스토이와 단테는 글쓰기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회의를 치유하였는데 김지혜 선생의 글을 읽다보니 태권도와 바이올린이 그녀에게는 <참회록>이자 <신곡>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권도와 바이올린>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인생의 고비에서 아픈 상처나 기억을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여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오한 철학이나 형이상학적인 가르침 따위로 독자에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고 '성인 태권도 도장 찾는 방법', '좋은 악기 고르는 방법' , ' 미니멀 라이프를 위한 독서 목록'과 같은 실용적인 팁을 제공한다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함이자 장점이겠다. 이런 생활 속 작은 팁이 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뒤돌아보니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한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을 읽다가 참 좋은 내용이다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중년에 악기를 시작하면 좋은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중년이 되면 '늙은 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다'는 속설에 매몰되어 새로운 취미나 활동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김지혜 선생은 중년이야말로 악기를 배우기에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우선 주머니 사정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한결 나아서 좀 더 좋은 악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악기를 시작하면 좀 더 좋은 장비를 갈구하기 마련인데 중년은 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마련된 경우가 많으니 젊은이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둘째 중년은 젊은이에 비해 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육아를 끝내고 여유시간이 많아서 고독감이나 허무감마저 느낄 수 있는 중년에 악기를 시작하면 새로운 삶의 활력소마저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중년이 된 부모가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취미 생활을 가지고 뭔가 배운다는 것은 자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든한 노후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미 생활을 해서 돈을 벌 수는 없지만 건강 문제를 따져보았을때는 이보다 더 좋은 노후 대책이 없다. 특히 악기를 다루는 것은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 매우 좋다.그리고 악기 동호회 활동을 더한다면 고독하기 쉬운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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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9-26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균호님 잘 지내셨나요.
여름지나고 이제는 가을이 되었어요.
새 리뷰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립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박균호 2023-09-26 19:3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인사 주셔서 정말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래요. 언제나 건강하시고요.

감은빛 2023-09-27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창시절에 배워 대학 다닐 때 푹 빠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부상을 당해
중단했던 기타를 다시 쳐 보려고
친한 형에게 저렴한 기타 하나를 구해왔는데,
이젠 잘 안 되더라구요.
다시 차근차근 배워보려고 해도
자꾸 예전에 괜찮게 쳤던 시절이 떠올라
의욕이 안 나네요.
결국 기타는 장식품이 되어가고 있어요. ㅠㅠ

태권도도 권투도 어렸을 때는 빨리 익히는 편이었는데,
나이 들어서 다시 해보려니 유연성과 근력이 떨어져
원하는 좋은 자세가 안 되네요.
이건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면 점점 나아질 것 같아요.
몸 쓰는 일은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네요.

박균호 2023-09-27 20:2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악기와 운동을 좋아하시고 잘 하셨다는게 저는 무척 부러운데요 ...
저는 둘 다 잼병이라서 어떤 악기라도 하나라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참 부러워요.

kelly110 2023-09-30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이 책을 썼습니다.
좋은 편집자님 소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은혜를 어찌 갚을지요.
서평까지 써 주시고 정말 잊지 못할 은인이십니다.

작은 책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행복 가득한 연휴 보내세요!

박균호 2023-09-30 22:23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좋은 책을 써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무술 분야로 분류된 것은 다소 의외입니다 ^^ 알라딘 측에 문의를 한 번 해보시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명절 즐겁게 잘 보내시길 바래요.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 페니실린에서 플루오로퀴놀론까지 항생제 개발의 진짜 역사
고관수 지음 / 계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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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야 말로 승자 독식의 표상이라고 할 만하다. 승자나 1등만을 기억하고 조력자나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우리 정부는 제102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아내 고 단양이씨와 그의 아들 홍양순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라는 말인데 홍범도 장군의 아내는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아서 단양이씨의 명의로 훈장을 받았다. 단양이씨는 발가락에 심지를 끼워 놓고 불을 달아 놓은 잔인한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혀를 끊어냄으로써 순국했다. 역사가의 고충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일을 기껏 해봐야 몇 권 분량으로 압축해야 하니 나폴레옹 혼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유럽을 정복했다는 식의 지도자나 승자 중심의 서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 밝은 독자들은 영웅이나 황제가 아닌 조력자라든가 큰 공을 세웠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조명한 기록물에 관심을 기울인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이 쓴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은 승자 독식 역사관에 가려진 숨겨진 영웅을 다루는 귀한 책이다. 항생제라는 밝지도 쉽지도 않은 주제를 다루는 책이니 당연히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꾸역꾸역 읽다 보면 한 줄기 빛과 같은 영감이나 통찰 그리고 재미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 책은 확실히 책장을 넘기는 고통보다 전혀 생각지 못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감동까지 맛볼 수 있다.

 

독자의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의 첫 번째 요건이라면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과학지식이 목마른 이과 체질의 독자들에게는 항생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의학사에 대한 지식을 선사하고 문과 체질 독자들에게는 순수문학에서 찾지 못하는 색다른 휴머니즘을 맛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약학이나 의학만큼 더 인간적인 학문이 어디에 있을까.

 

세계 최초로 푸른곰팡이가 세균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된 에르네스트 뒤셴의 슬픈 인생 역정 이야기는 고관수 선생이 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뒤셴은 1901년에 아내를 결핵으로 잃었는데 1912년에는 자신도 아내와 같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1897년에 이미 그는 자신과 아내를 죽음으로 내몬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 즉 오늘날 페니실린이라고 불리는 물질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의과대학생에 불과했던 그의 논문을 아무도 주목하지도 않았고 그가 추가적인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 논문을 보낸 파스퇴르 사는 그의 논문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파스퇴르가 비록 어린 대학생의 논문이지만 유심히 살펴보고 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여건 마련을 해주었다면 그 사이에 결핵으로 숨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뒤셴이 곰팡이의 항균 작용을 연구하게 된 계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그가 마구간에서 군마의 안장을 관리하는 아랍 출신의 소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푸른곰팡이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안장을 관리했는데, 습기가 많고 어두운 곳에 안장을 보관해 안장 아래쪽에 의도적으로 곰팡이가 자라도록 했다. 말이 사람을 많이 태우면 안장에 등이 쓸리고 피부가 까져 고통스러운데, 이 곰팡이가 말의 통증을 완화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뒤셴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푸른곰팡이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공로는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플레밍에게만 돌아갈 것이 아니라 뒤셴과 군마의 안장을 관리한 소년들에게까지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과학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어느 한 위대한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으로 큰 발전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값어치는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에는 항생제와 관련한 많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에리트로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공을 세운 필리핀의 의사 아귈라의 편지가 눈길을 끈다.

 

제 과학적 지식과 희생이 없었다면 일라이릴리가 이 항생제를 제조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항생제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일라이릴리에 5억 달러의 로열티를 요청합니다. 이 로열티는 수천 명의 가난하고 병든 필리핀 동포를 돕는 사업에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것입니다.

 

이 편지는 매년 2월이면 출판사에 원고료를 독촉한 것으로 유명한 법정 스님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출판사 사람들은 무소유를 주장한 법정 스님이 돈을 밝히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했지만 사실 법정 스님은 대학 입학을 앞둔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때 주기 위해서 원고료를 독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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