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 추위만 끝나면

이 찌무룩한 털스웨터를 벗어던져야지

쾨쾨한 담요도 내다 빨고

털이불도 걷어치워야지.

펄렁펄렁 소리를 내며

머리를 멍하게 하고 눈을 짓무르게 하는 난로야

너도 끝장이다! 창고 속에 던져넣어야지.

(내일 당장 빙하기가 온다 해도)

 

요번 추위만 끝나면

창문을 떼어놓고 살 테다.

햇빛과 함께 말벌이

윙윙거리며 날아들 테지

형광등 위의 먼지를 킁킁거리며

집터를 감정할 테지.

 

나는 발돋움을 해서

신문지를 말아쥐고 휘저을 것이다.

방으로 날아드는 벌은

아는 이의 영혼이라지만.

(정말일까?)

 

아, 이 어이없는, 지긋지긋한

머리를 세게 하는, 숨이 막히는

가슴이 쩍쩍 갈라지게 하는

이 추위만 끝나면

퍼머 골마다 지끈거리는

뒤엉킨 머리칼을 쳐내야지.

나는 무거운 구두를 벗고

꽃나무 아래를 온종일 걸을 테다.

먹다 남긴 사과의 시든 향기를 맡으러

방안에 봄바람이 들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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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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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대로 감각에 관한 여러가지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공감각 에 대해서 그 감각에 관련된 우리몸의 특정 기관에 대한 설명, 과학적으로 그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원리, 예술속에서 발견되는 감각등에 대해 여러가지 예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각 장을 읽으면서 나는 그 감각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청각을 읽을 때는 내 귀에 귀 기울였고 후각을 읽을 때는 더 다양하고 미세한 냄새까지 맡아지는 것 같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는 다양한 감각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그런 것이 어떤 시간과 기억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된다. 사고로 후각을 잃은 사람이 후각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문득 아무런 고민없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맛이라는 것은 미각뿐 아니라 후각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향수를 선물하는 것은 기억의 액체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향수를 한번 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 들을 수도 말하지도 못한 헬렌켈러는 말과 사물의 개념사이에서 방황했다고 한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어른의 말소리를 듣고 따라하고 사물의 개념에 대해서 배우고 자신이 아는 부분을 차츰 넓히는 과정들이 어느 한 감각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양치질을 한뒤 오렌지주스를 마시면 쓴 이유는 미뢰를 덮고 있는 점막에 지방과 비슷한 인지질이 들어있는데 치약속의 세정제가 지방과 유지를 분리하기 때문이다. 음악은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편안하게 치유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용이 나오는데 좋아서 밑줄그어 보았다. "감정은 사적이다. 우리는 복숭아 잼 단지처럼 자신의 감정에 마개를 닫아 선반 맨위에 보관한다. 그리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노래를 통해 감정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아주 사소해서 어쩌면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의 모든 감각기관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보고 말하고 듣고 냄새맡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나는 주말 아침 9시쯤 창으로 비춰지는 따스한 햇살을 피부에 느끼고 부스스 깨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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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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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김연수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음미했다. 음 그래, 사랑은 그런 것이야. 이건 좀 아닌것 같은데.. 소설가는 정말 좋겠다. 자신의 책안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정의내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이제 어린 사람들의 몫이다. 이제 적당히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격정은 그들에게는 매우 소모적인 일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그의 정체성까지 요구하는 사랑은 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내 자신의 삶을 살아줄 수 없듯이 나 또한 그의 삶을 살아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작가는 '사랑' 이라는 어쩌면 가장 식상한 주제에 대해 말하면서 그 식상함을 감추기 위해 낯선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나 글을 쓸때 자주 쓰는 단어, 문장들을 발견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공통점이 되고 그 공통점이 특성이 되고 성격이 되고 하는 것들을 요즘 발견한다. 나는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다.

 

여성 포탈 사이트의 이름을 패러디한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그가 <7번국도>에 이어서 두번째로 팬에게 주는 특별선물이라고 한다. <7번국도>도 읽어보아야 겠다.

 

'사랑'에 대해 논한 읽고 싶은 꺼리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이성복

<사랑, 그 환상의 물매>,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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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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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를 소개하는 부분에 씌여져 있는 글,

그 때 나는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부모님이 두 분 다 세상을 뜨신 직후였고,
나 자신은 가족도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지루한 투쟁, 이루지 못할 꿈, 도중에 끝나버린 사랑, 발버둥치면 칠수록 서로 상처밖에
주지 않는 인간관계, 구덩이 밑바닥 같은 고독과 우울, 그런 것 뿐이었다.
내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그대로 이 세상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막연했다. 죽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죽음이 항상 내 곁에서 숨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는 그림에서 인생을 더듬고, 의미를 찾고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모든 문제는 발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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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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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이다.
정말 이 표정, 비밀을 한가득 가진 듯한 매혹하는 듯한 아니면 매혹당하는 듯한 이 표정은 어떤 상황에서
이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상상력을 증폭시킨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이 그림을 보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연결시켜 정말 멋진 소설 한편을 써냈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은 거의가 일상풍경이다. 우유를 따르는 소녀, 피아노를 치는 뒷모습, 창가에 서서
허공을 응시하는 하늘빛을 만지려는 여인은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이지만 알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비밀스러움을 풍기는 것들이다.

소설의 절정부분에서 이 진주귀고리 소녀를 그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소설속에서는 그리트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 아이를 그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편의 글이 탄탄하게 구성되기 위해 필요한 등장인물과 스토리와 상징물들을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스토리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낯익은 것이었는데 문장문장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장면이 상상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확인한 것들,
그리트는 하녀이지만 다른 하녀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대 저택의 남자 주인은 항상 하녀를 먼저 사랑하게 된다.
하녀와 남자 주인간에는 그 남자의 안주인이 항상 버티고 있게 마련이다.
물론 큰 마님은 사위와 이 하녀의 관계를 눈치챈다.
자제들중의 한명이 그 하녀를 굉장히 미워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게 한다.
그 하녀를 좋아하는 평범한 멋진 범인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시장에 고기를 사러 저택의 자제와 나갔는데 우연히 자신의 동생을 보게 되고 그 동생을 못 본 척한다.
남자 주인과 하녀 사이에 또 다른 신분 높은 남자가 있다.
진주 귀고리가 주는 상징.
그리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의미하는 것.


정말 정형화된(?) 안정된 구성이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그림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소설을 읽어가는 맛이 대단하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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