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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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다가 포기한지 일년이 넘어 간다. 김연수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의 소설은 나에게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단편들을 읽으며 소설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대로인데 혹시 내가 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간의 세월에 난 이 세상의 어떤 의미들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와 있는 것은 아닐까고.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주인공처럼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아버린 자에겐 휴가가 필요하다. 10년간 300번대와 900번대의 책들을 섭렵해나가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야기를 찾아내려 했던 남자는 언젠가 김연수의 단편에서 나왔던 선풍기를 수집하는 남자를 떠오르게 했다. 이런 인물을 만나기위해 나는 김연수의 소설을 들여다 본것은 아닐까. 수전 손택과 단테의 신곡과 지각의 현상학을 만나기 위해 김연수의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 내게 일어나는 삶의 의미가 밝혀질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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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하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9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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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 두달은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역시나 고전은 그래서 고전이구나를 실감케 했던 책이다. 노파를 나름대로의 논리로 살해한 주인공인 라스꼴리니코프의 불안한 심리를 따라 하루하루 몇장 씩 읽었는데 후반부의 나머지 백여장 정도는 한번에 후루룩 읽었다. 이 소설의 백미는 아마도 치밀한 심리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 백해무익한 <이>같은 존재인 노파는 없어져도 될 존재이며 따라서 본인이 마치 나폴레옹처럼 역사의 비범인(다른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특권)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라스꼴리니꼬프는 생각한다. 그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성을 잃지 않고 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누가 생각해도 뻔한 결말을 초래한다. 범죄가 드러날까봐 주인공은 얼마나 고심하는지 식음을 전폐하거나 헛소리를 하고 때론 실신까지 한다. 살해의 동기에는 그 외에도 처참한 생활, 어머니와 누이로부터 아무런 희망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자수하러 가기 까지 아니 감옥에 수감되고 나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범죄 동기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못한다. 소냐에 의해 갱생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지만 라스꼴리니꼬프가 진정으로 회개하였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도대체 무고한 타인을 어찌 죽였는가를 계속 질문해보았는데 만족스런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의 인과관계를 명쾌히 설명할 수 없음에 기인하는 듯하다. 그것이 설령 살인이라는 명백한 행동일지라도 말이다. 오히려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은 어느 정도는 우연에 일어나기도 한다.   

 보통 살인자에게는 동정심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동정심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고 철학적이며 생각이 많고 자의식이 강한 청년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도덕률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였지만 그 이유는 사회, 역사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당함에 항거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달랐다. 방법은 크게 잘못되었을 지언정 잘못된 것을 알고 자신의 신념에 의해 일을 저지른다. 그것이 다른 살인자들과 주인공을 구분하게 해주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하나 인간의 나약함, 죄의식 등을 보며 사람을 사람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백을 하였고 여러 정황이 참작되어 8년형이라는 아주 가벼운 형량을 받게 되는 주인공은 탈소후에 갱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냥 읽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 많은 철학적 요인들을 소설속에 심어놓은 대가의 작품이다. 더불어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로 인해 이야기가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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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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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중 사과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거의 매일이다 싶을 정도로 하루에 사과를 하나씩 먹는다. 물론 농약을 생각해서 물로 씻고 칼로 반드시 깎아서 먹는다. 그런데 여기 무농약으로 재배한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표지도 빨간 사과 세 개가 위로 쌓여있다. 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사과를 먹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는지.. 그런데 이 책을 덮고 나서는 이 기적의 사과를 생산해내는 기무라 아저씨의 사과가 너무나도 먹고 싶어졌다. 기무라 아저씨의 사과의 맛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 이런 맛이 나오기 까지 기무라의 눈물 나는 노력이 눈앞에 그려진다.

 사과는 원래 농약 없이는 재배할 수 없다고 한다. 반년 동안만 13번의 농약을 친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농약을 치는지 상상이 간다. 물론 일본의 상황이므로 우리나라의 사과 농가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책 한권을 읽고 농약없이 사과를 재배해야겠다고 생각한 기무라는 자신의 사과밭에 이를 실행한다. 불보듯 뻔한 결과 사과나무는 온갖 병충해들로 시름시름 앓다고 말라죽어간다. 농약을 쓰지 않으려는 노력은 처절한다. 사과 나무에 온갖 것을 다 발라본다. 식초, 비눗물, 우유, 유황 등. 벌레를 잡는다고 온 가족이 손에 비닐봉지를 걸고 작업을 하면 사과 한그루에서는 비닐봉지 세 개 분량의 벌레가 잡혔다. 병충해를 방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밭을 방치하는 것으로 오인받아 동네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산다. 친구들도 등을 돌리고 가세는 기울어 간다. 죽으로 연명해가다가 결국 파친코, 카바레에서 3년간 일을 하기도 한다. 사과 나무에 빨간 딱지가 붙고 전기세를 낼 돈마저 구하러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죽기로 결심하고 산으로 올라간 그곳에서 우연히 도토리 나무를 발견한다. 아무런 농약을 치지 않아도 산의 나무들은 열매를 잘도 맺는 것이다. 순전히 나무 자체에는 집중했던 자신의 방법이 크게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밭으로 돌아온 기무라는 정기적으로 잡초를 뽑았던 것을 그만둔다. 그리고 사과밭은 변화를 보인다. 잡초를 오히려 그대로 놔두자 사과나무가 살아난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은 9년 만에 사과는 꽃을 피운 것이다. 그리고 작지만 어쨌든 사과가 열리게 된다. 작은 사과를 들고 오사카로 떠난 기무라. 우연히 떨이로 판 사과의 맛을 인정한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오른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기무라의 사과 맛을 기쁨의 진수라고 표현하며 먹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떤 목표를 위해 10년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들 수 있겠는가. 기무라의 집념을 보며 내가 느낀 가장 큰 것이었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 들은 모양 좋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온갖 인위적인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무 아래는 콩이 키워지고 해충과 익충, 개구리와 뱀이 노니는 기무라의 사과밭에서는 자연의 섭리 그대로가 들어있다. 기무라의 말처럼 사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가 만드는 것이다. 사과나무가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인간의 할 일이었던 것이다. 기무라가 말라가는 사과나무에게 죽지 말아달라고 말을 거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다. 식물과 말이 통한 것인가. 기무라의 진심이 사과나무에게 기적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말을 걸지 않은 나무들은 모두 죽었다고 한다. 기무라의 성공이야기가 가슴을 더 울리는 것은 사과가 날개 돋친 듯 팔려도 사과 값을 올리지 않은 이유가 무농약 재배 과일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기무라의 말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기농 농산물은 비싸고 따라서 일부의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렇게 되면 무농약 재배라는 것은 특수 재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농법이 일반적으로 확산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기무라는 강연을 다니며 자신의 무농약 재배법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자기계발로 분류되어있다. 10년간 이루어낸 기적이라고 보면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성공이야기가 되지만 우리 인간과 자연,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물과의 공존을 위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환한 웃음, 어찌 보면 순한 바보처럼 보이는 기무라의 성공에서 우직한 사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기적을 보며 한없는 기쁨을 느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모두들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내가 아니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중략) 온 밭 가득 활짝 핀 꽃을 보고 난 그걸 절실히 깨달았어. 저 꽃을 피운 건 내가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걸 말이지.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 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것 정도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간신히 그걸 깨달았지. 그걸 알아채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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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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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관리사인 블룸은 언론에 의해 사생활이 폭로되기에 이른다. 카니발 시즌 한 댄스파티에서 만난 괴텐이라는 강도 용의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 결과로 언론과 경찰의 그물망에 걸렸기 때문이다. 사실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읽는 내내 (분량이 짧다.) 마음이 안좋고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신문의 보도기사와 같은 느낌의 문체와 블룸이 당하는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언론의 호도에 놀아나는 우매한 사람들로서 반응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압권은 블룸의 소지품이 낱낱이 까발리는 장면이다. 어머니를 죽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 기자를 살인하는 블룸의 행동은 결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었다. 매사에 철저하고 계획적이며 섬세하기까지 한 블룸에게 사생활의 폭로는 어느 누구에게보다도 가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고 오히려 분석적으로 변한 블룸에게 살인이라는 행위는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건조한 문체로 동시대적인 문제와 늘 연결되어 작품을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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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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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눈에 밟힌 건 근래들어서 인데 출판된지는 꽤 오래된 책이었다. 와우, 이토록 사랑스러운 책이라니.. 읽는 내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패드먼 가족을 떠올리니 지식광 가족인 A.J.제이콥스의 가족이 떠오른다. 이쯤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다. 둘다 가지고 있는 책중 한권만 남겨야 할 때의 고뇌, 잠자리에 들기전 침대에서의 낭독 너무나 부럽다. 이런 남편이라면 나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흔에 가까워진 아버지가 시력을 잃어 저자가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도서관의 책에 교열을 하고 식당 메뉴판도 교정을 보는 패디먼 가족,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아껴읽고 싶었는데 너무나 재밌어서 다 읽어버렸다. 분량이 너무 짧아 아쉽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나도 집에 읽는 책들에 내 맘대로 메모해가며, 과자부스러기쯤은 묻혀도 상관없다는 듯이 책을 대해야 할 듯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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