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Mr. Know 세계문학 45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구판절판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산과 구름과 넓은 하늘이 펼치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여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구로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도 잊은 채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243쪽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우연히 이상하게 얽힌 어떤 사정에 의해 그에게 소중하고 흥미로우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그 속에서라면 그가 진실하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그의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는 그런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다. (....)
각자 개인의 생활은 비밀 속에서 유지되며,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지도 몰랐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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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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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 문학이 그 무엇에 대한 설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걸 느낀다. 기독교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책일지라도 이 책이 줄 수 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칠십대의 늙은 아버지가 여섯,일곱살 정도되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드리워져있다. 비록 종교적으로 그런 것에 단련된 직업인 목사일지라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에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것은 용서에 관한 것이다. 용서라고 표현하였지만 사실은 좀 복잡한 것인데 딱히 표현을 못하겠다. 동네의 친한 목사의 아들인 존 에임스 보턴을 애증의 관계로 용서하기 까지의 단계들이 잘 묘사되어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의 '존재'라는 은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는 평생 내내 마음 졸여왔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목사라는 직업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례'를 주는 장면은 특히나 감동적이다. 누군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일텐데... 이 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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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노력으로 얻는 순수함이 있다고 믿고, 그것은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똑같이 영광스러운 것이지. 자주 그것에 대해 설교하고 싶었지. 그런 설교를 한 적도 있을 거야. 주님이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독선과 가식, 진부함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의미일 게야.

(고양이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
 손바닥에 닿던 그 따스한 털의 감촉이 지금도 기억나는구나. 누구나 고양이를 쓰다듬지만, 축도하려는 순수한 의지를 품고 만지는 것은 정말 다른 느낌이란다. 그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어. (중략) 축복에는 진실이 있고, 세례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지. 그것이 신성함을 끌어올리진 않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능력이 있지. 말하자면 내 안에 그것이 지나가는 느낌을 맛본단다. 피조물을 진정으로 아는 느낌이지.

 다 좋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네 존재야. 내게 있어 ‘존재’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범한 것이란다.

 나는 행복을 얻기 이전의 긴 밤에 대해 말하면서도 슬픔과 외로움보다는 평온과 위로를 기억한단다. 슬픔에는 위로가 없지 않고, 외로움에는 평온이 없지 않거든. 거의 그렇지.

 그녀는 다른 부인들이 목사관에 올 때 같이 와서, 커튼을 뜯어 빨고 아이스박스의 성에를 닦아냈지. 그러다가 혼자 와서 정원을 손질하기 시작했어. 정원을 아주 멋지고 풍요롭게 꾸며 놓았지. 어느 저녁, 정원의 장미꽃 옆에 선 그녀를 보자 나는 “이 신세를 다 어떻게 갚을까요?”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녀는 대답했어. “저랑 결혼하시면 돼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  


 네가 용감한 곳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마. 네가 쓸모 있는 삶을 살 길을 찾도록 기도하련다.
 기도하고, 그런 다음에는 잠들어야지. (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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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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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지 한 일주일이 흘렀더니 섬세하게 기억났던 문장들이 흐려지면서 이 소설에 대한 이미지도 흐려지려는 중이다. 아, 읽는 당시에는 굉장히 좋았었다. 엄청나게 포스트잇 붙여가면서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이런류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런류가 어떤 것이냐면... 철학적 사유가 녹아들어가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스토리는 좀 그렇더라도 던지는 질문이 진지하다면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사인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출근길에 자살하려는 포르투칼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또 우연히 손에 쥐게 되는 포르투갈 작가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아마데우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그의 완벽하리만큼 절제되고 규칙적인 일상을 벗어던지고서 말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으면 그레고리우스의 삶과 아마데우의 삶 두명의 인생을 따라가게 되고 책속의 책인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도 읽게 된다. 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이 정말 예술이다. 아마데우는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닌 아버지가 선택한 의사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시점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한다. 내가 인식하는 자아와 타인의 눈에 드러난 자아사이의 괴리, 이 괴리의 어느 지점엔가 내가 존재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데우가 이런 문제로 평생을 고뇌했다면 그레고리우스는 이런 아마데우의 인생을 추적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소설의 마지막에 자신의 모든 경험을 기록하려는 듯 사진을 찍는다.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내 것인듯 딱맞아 안락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던가. 안락하다는 것이 권태도 아니고 행복과도 좀 다른 그런 것이라면... 다른 삶 따위에는 곁눈질 하지 않고 내 것 자체로 완벽한 그런 상태가 올까 싶다. 자꾸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어디, 내가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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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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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록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가 늑대라고 생각하고 이 늑대의 생활을 알아내고자 파견되는 것이 저자의 임무였다. 하지만 1년동안 늑대를 곁에서 관찰해보니 늑대는 우리 인간이 가진 편견과는 전혀 다른 동물이다. 늑대하면 떠오르는... 잔혹한 육식동물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글의 곳곳에 저자의 유머감각이 특히 돋보여 정말 큭큭거리면서 읽었다. 저자가 관찰한 늑대가족은 어른늑대3마리와 아이들 3마리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이름까지 붙여준다. 조지(아빠늑대),앤젤린(엄마늑대),앨버트아저씨가 그렇다. 앨버트아저씨는 조금 애매한(?)위치인데 자신의 짝 없이 꼬마들을 돌보는 독신 아저씨 늑대인것이다. 늑대무리중에는 이처럼 육아를 담당하면서 짝을 이루는 것에는 관심없어 보이는 늑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한다. 늑대굴 옆에 텐트를 치고 이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이 너무 우꼈다. 순록이 별로 없는 계절에 쥐를 먹고 산다는 것을 증명하게 위해 본인이 직접 개발한 요리법으로 쥐요리를 만들어 증명해보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순록을 죽인 것들은 인간인 것으로 증명됐다. 마지막에 늑대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늑대굴로 들어갔다가 앤젤린과 꼬마한마리와 마주치고는 공포에 질렸던 경험은 1년동안 늑대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친밀감을 단숨에 허물게 했다. 본인 스스로가 늑대에 관한 편견을 물리쳤지만 사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순수한 공포심까지는 어쩔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가지는 편견들로 잃어버린 자연의 세계는 얼마나 많은가. 늑대의 세계는 인간이 잃어버린 세계들중의 하나였다. 늑대무리와의 교류 뿐아니라 늑대의 말을 알아듣는 에스키모인 우텍의 얘기도 신기하고 재밌다. 책이 얇아 금방 읽어버려 아쉬웠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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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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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파 라히리의 책은 처음이다. <길들지 않은 땅>을 읽다가 아버지의 새로운 사랑을 돕고자 엽서를 대신 부쳐주는 장면에서 과연 뒷장면이 어떻게 진행될까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세상에나, 이 책이 단편모음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단편을 싫어해서 더 읽을까 고민했는데 정말 모든 이야기들이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좋았다. 세 가지 이야기가 연결되는 <헤마와 코쉭>을 읽으면서는 코쉭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퍼서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배경을 지닌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인도의 벵골 인 2세로 타국에서 삶을 시작하는 2세들의 이야기가 그렇다. 아이들은 모두 똑똑하고 각각의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고학력자들(저자의 이력처럼 이글들에 나오는 2세들은 대부분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설정일까?) 이지만 이민자라는 독특한 상황은 그들의 삶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의 가족이 삐꺽거리기만 하는 가족해체나 분열의 모습을 그린 것만은 아니다. 각각의 단편은 이민자들이 감내해야할 아픔들을 정말 잘 그려내고 있다. <그저 좋은 사람>의 수드하가 동생 라훌의 삶을 책임지려하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 아이의 생명을 보호해야할 그저 좋은 사람이 될 뿐인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배우자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질투심을 한번이라도 느껴보았던 사람이라면 <머물지 않은 방>을 읽다가 슬쩍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옥-천국>에서는 지금의 처지에 만족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무도 모르는 일>에서는 교묘하게 비켜가는 일들의 실타래를 풀며 나쁜 남자(?)는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마지막 <헤마와 코쉭>이야기는 가장 애틋했고 가슴이 아팠다. 재혼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심정들을 엿볼 수 있었다.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해내는 줌파 라히리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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