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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가끔 문학이 그 무엇에 대한 설명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걸 느낀다. 기독교에 대해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책일지라도 이 책이 줄 수 있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감동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칠십대의 늙은 아버지가 여섯,일곱살 정도되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드리워져있다. 비록 종교적으로 그런 것에 단련된 직업인 목사일지라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은 안타까운 심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에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것은 용서에 관한 것이다. 용서라고 표현하였지만 사실은 좀 복잡한 것인데 딱히 표현을 못하겠다. 동네의 친한 목사의 아들인 존 에임스 보턴을 애증의 관계로 용서하기 까지의 단계들이 잘 묘사되어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의 '존재'라는 은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는 평생 내내 마음 졸여왔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목사라는 직업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례'를 주는 장면은 특히나 감동적이다. 누군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일텐데... 이 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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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노력으로 얻는 순수함이 있다고 믿고, 그것은 어린이들의 순수함과 똑같이 영광스러운 것이지. 자주 그것에 대해 설교하고 싶었지. 그런 설교를 한 적도 있을 거야. 주님이 ‘어린이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독선과 가식, 진부함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의미일 게야.
(고양이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
손바닥에 닿던 그 따스한 털의 감촉이 지금도 기억나는구나. 누구나 고양이를 쓰다듬지만, 축도하려는 순수한 의지를 품고 만지는 것은 정말 다른 느낌이란다. 그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어. (중략) 축복에는 진실이 있고, 세례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지. 그것이 신성함을 끌어올리진 않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능력이 있지. 말하자면 내 안에 그것이 지나가는 느낌을 맛본단다. 피조물을 진정으로 아는 느낌이지.
다 좋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네 존재야. 내게 있어 ‘존재’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범한 것이란다.
나는 행복을 얻기 이전의 긴 밤에 대해 말하면서도 슬픔과 외로움보다는 평온과 위로를 기억한단다. 슬픔에는 위로가 없지 않고, 외로움에는 평온이 없지 않거든. 거의 그렇지.
그녀는 다른 부인들이 목사관에 올 때 같이 와서, 커튼을 뜯어 빨고 아이스박스의 성에를 닦아냈지. 그러다가 혼자 와서 정원을 손질하기 시작했어. 정원을 아주 멋지고 풍요롭게 꾸며 놓았지. 어느 저녁, 정원의 장미꽃 옆에 선 그녀를 보자 나는 “이 신세를 다 어떻게 갚을까요?”라고 말했지.
그러자 그녀는 대답했어. “저랑 결혼하시면 돼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
네가 용감한 곳에서 용감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마. 네가 쓸모 있는 삶을 살 길을 찾도록 기도하련다.
기도하고, 그런 다음에는 잠들어야지. (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