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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내가 격동의 터키 현대사를 알리는 만무하다. 몇번을 그냥 덮으려다가 읽어나갔는데 대략 1권의 반쯤부터 재미가 있어진 것 같다. 이 소설에는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카르스,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 군부와 언론, 군사 쿠테타.. 그리고 인간도 나오고 신도 나온다. 그 와중에 눈은 또 하염없이 내린다. 가난하고 적막하고 삭막한 카르스의 상처를 덮어주기라도 할 것 처럼 새하얀 눈이 계속 내렸던 것이다. 이미지의 형상화 측면에서는 지독히 외롭게 그곳이 상상이 되어서 다시는 들여다 보고 싶지 않다. 더불어 카라는 남자 주인공의 외로움과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의 인생에 유일하게 행복해질 기회가 왔으나 신은 그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의 친구로 등장하는 오르한이 이펙의 아름다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묘사했을때 어쩌면 남자의 행복에는 아름다운 여자의 등장이 절대적일까,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카가 이펙을 프랑크푸르트로 데려가려 했던 것처럼 오르한도 이펙을 이스탄불로 데려가려는 생각을 했으니까..
카를 외롭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망명? 독신의 생활? 유럽인이 절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터키인으로도 살 수 없는 그의 가치관? 의문은 하나도 풀리지 않고 책표지의 그림처럼 눈으로 뒤덮힌 스산한 거리만이 마음속에 남는다.
카가 매일 아침 갔던 프랑크푸르트 시립 도서관은 현대적이고 정체성 없는 건물이었다. 안에는 이 도서관의 전형적인 방문자들, 그러니까 주부들, 시간을 죽이고 있는 노인들, 실업자들, 한두명의 아랍인과 터키인, 학교 숙제를 하면서 킥킥거리는 학생들, 그리고 이러한 장소에 항상 있는, 극도의 비만인들, 장애인들, 정신지체 장애인들 그리고 바보들이 있었다. 입에서 침이 흐르는 청년은 그림책을 보다가 고개를 들고는 내게 혀를 내밀었다. 책들 사이에서 지루해 하는 나의 안내자를 아래층 카페에 앉히고 나는 영문 시집이 있는 서가로 갔다. 그리고 뒤표지 안쪽에 있는 대출 카드에서 내 친구의 이름을 찾았다. 오든, 브라우닝, 콜리지. 매번 카의 서명을 볼 때마다 이 도서관에서 인생을 소비했을 친구에 대한 생각이 나 눈물이 글썽거렸다. (p.48)
"명심하십시오. 행복한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