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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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책의 저자는 장석주.

난다 시리즈의 책을 읽고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아주 다작하는 저자인데 왠지 손이 가지 않았더랬다. 두 책 모두 저자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를 확 사로잡았다. 나 역시도 생자필멸의 노화를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한 개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이렇게 더운 여름이 몇번일까를 헤아려보면 이 더위조차도 값진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읽었는데 형식이 똑같다. 작가로 해외 연수(?) 같은 것을 가나본데 그곳에서 매일의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둘 다 잘 알지 못하는 작가였다. 베를린일기를 읽으니 베를린을 백림이라 부르는데 낯설지 않아졌고,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작가처럼 읽는 나도 어떤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라 재밌게 읽었다.

받아쓰기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자의 비애가 느껴졌다. 저자가 그 점을 많이 토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국어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어떤 또 하나의 굴레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소노 아야코의 책을 읽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과 비슷했다. 자기만의 철학이 이렇게 있다면 쉽게 흔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방관자적인 자세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

'깨어있는 것'으로 이해하겠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쩌다 어른이 된 것이라고 본다. 준비되어 어른을 맞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의 밥벌이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걱정하는 주변의 부모들을 보며 하는 생각이다. 모두가 공부를 잘 할 필요도 없고...

많은 젊은이들이 어쩌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신이 잘했던 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밥벌이를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읽은 지 두어달 지났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다. 기담이라기엔 살짝 약할 수도 있지만 충분히 더위를 잊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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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책은 많다. 그런데 책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들은 이미 읽었던 책에 대한 내용은 흥미가 떨어지거나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일종의 스포일러 때문에 읽기가 꺼려질 때도 있다. 그런데 함정임의 이 책은 다른 책을 소개하는 글이기 이전에 이 글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깊이도 있다.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댈러웨이 부인>과 <디어 라이프>를 주문했다.

 

 

 

 

 

 

 

 

글이 시적이어서 쉬이 읽히지는 않지만 가끔 가슴을 쿵 울리는 글들을 읽게 된다. 작가는 사람에게서 멀리 거리를 두는 성격이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의 관찰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인간에 대한 애정이 충분한 사람이리라...<울기 좋은 방>도 읽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커피향이 진동하는 듯 했다. 커피를 진하게 한잔 마시고 싶은 밤이다. 찌든 일상의 비루함이여... ㅠㅠ

 

 

 

 

 

 

 

정여울의 책들이다. <그림자 여행>은 <공부할 권리>와 살짝 겹친다. <내가 사랑한 유럽..>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짝 위로가 되기에... 중고서점에서 샀다.

 

 

 

 

 

 

 

 

 

 

유럽의 예술문화사쯤 되려나..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읽기 시작했는데 중고등학교 때 세계사 지식이 되살아나면서 재밌게 읽고 있다.

 

 

 

 

 

 

 

 

 

 

 

 

읽는 내내 행복하다~

요리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꿈틀한다. ^^;;;

 

서울에는 언제 벚꽃이 피려나.. 아니 벌써 피었나.

몸이 안좋은지 한기가 들어서.. 춥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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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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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에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클래식 캘린더>를 샀더랬다. 무엇인고 하니.. 매일 한페이지씩 민음사전집의 1권부터 제일 첫 페이지가 나오는 식이다. 어떤 책의 첫페이지만 읽어도 끌리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첫 문장은 군고구마, 군고구마아, 따끈따근한 군고구마아. 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 이 소설에는 인도 단체여행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몇명 나온다. 물론 제각각 인도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다르다. 이소베는 아내의 환생을 찾아서, 미쓰코는 한 때의 남자 오쓰를 찾아서, 기구치는 기구치대로 정글에서 인육을 먹은 고뇌를 잊고자, 누마다는 유일한 위안이었던 동물 구관조를 찾아서..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자신의 인생에서 놓지 못하는 무언가를 붙잡고 번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무언가를 붙잡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몇년전 재밌게 읽었던 <테레즈 데케루>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반가웠다. 엔도 슈사쿠는 종교색이 짙은 작품이 많다는 데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라면 오쓰의 경우처럼 모든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데 나도 동감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만물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주어진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라는 나라는 흥미롭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도 갠지스 강가는 이런 분위기일까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깊은 강'은 인도인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몸도 마음도 정화가 일어나고 자신의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인의 힘이 이 강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인도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가 마음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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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1,2월이 지나가고 오늘은 날씨가 조금 풀린 것 같다.

봄이 오면 몸도 간질간질, 마음도 간질간질 해지겠지~

그럴 때면 겨울의 이 쨍쨍한 추위도 그리워질터.. 행여 여름이라도 오면.. 더 그리워질터..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젊은 날엔 딸의 인생을 어떻게 보면 짓밟기도 했던 어머니를 용서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성장할지는 결국 개인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신경이 없는 신체 부위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선뜻 돌봐 줄 수가 없다. 당신의 손발이 당신에게서 잊힌다. 반면에 고통은 지켜준다. 눈에 무언가가 들어가면 즉기 그에 대해 대처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작가가 나병환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나병환자들에게 무서운 것은 병의 고통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감각이 사라져서 더 이상 고통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발에 상처가 나도 그 상처의 아픔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상처가 커지고 힘들어진다. 우리에게 고통이란 것이 있고, 그 고통이 감당할 만한 것이라면 그것 때문에 나를 돌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므로.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이 어느 곳으로 향해야하는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층간소음의 항의는 윗집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지은 시공사에게 해야 한다.

그간 나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오... 바로 이런 책이 필요했다.

서점에는 공부를 잘 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들이 널렸다. 열등생을 이해하려는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온전히 열등생에게 바쳐지는 책이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무언가'가 되길 강요당한다.  강요는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되길 원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신경쓰려 하지 않으려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무언가가 된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학교의 슬픔일까..

다니엘 페낙의 책은 <몸의 일기>도 좋았고, 오래전에 읽은 동화책 <늑대의 눈>도 좋았다. 시적이고 한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책은 줄거리는 알고 있어도 원작을 찾아읽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또 재밌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들이 많이 나왔는데 비로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재조명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한다. 톰은 계속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양심에 따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에드워드는 톰이 되어봄으로써 훗날 올바른 군주가 되었다. 회초리 시동과 같이 재밌는 그 시대만의 읽을 거리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도 읽어봐야겠다.

 

 

 

 

 

 

이런 책들이 뜨는 데는 모두들 미니멀~해지고픈 욕구가 있기 때문일테다. 미니멀 라이프로 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이 소개된다.

- 집의 한개의 방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기

- 공산품의 라벨을 모두 제거하고 쓰기 (가령 세제 용기의 라벨 같은거를 다 뗀다.)

- 패션은 비슷한 패턴의 무난한 색으로 유니폼화 하기

- 수납의 60%정도를 비워두기

- 주방 싱크대 위에는 한개의 물건도 꺼내놓지 않기

 

그런데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무인양품의 정리용기를 사는 것도 미니멀라이프에 위배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사고 싶오.. 그래도 참고 물건들을 더 사려는 욕구를 줄여야겠다. 책도 사지 않고 전자책으로 구입하라는 것은 실현불가능 ㅠㅠ 채식도 시작하면 점점 더 엄격하게 하고 싶어진다던데, 정리도 점점 더 엄격하게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허지웅처럼은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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