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1,2월이 지나가고 오늘은 날씨가 조금 풀린 것 같다.

봄이 오면 몸도 간질간질, 마음도 간질간질 해지겠지~

그럴 때면 겨울의 이 쨍쨍한 추위도 그리워질터.. 행여 여름이라도 오면.. 더 그리워질터..

 

치매에 걸린 어머니, 그리고 젊은 날엔 딸의 인생을 어떻게 보면 짓밟기도 했던 어머니를 용서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성장할지는 결국 개인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신경이 없는 신체 부위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선뜻 돌봐 줄 수가 없다. 당신의 손발이 당신에게서 잊힌다. 반면에 고통은 지켜준다. 눈에 무언가가 들어가면 즉기 그에 대해 대처하기 마련이다.

이 부분은 작가가 나병환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나병환자들에게 무서운 것은 병의 고통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감각이 사라져서 더 이상 고통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발에 상처가 나도 그 상처의 아픔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상처가 커지고 힘들어진다. 우리에게 고통이란 것이 있고, 그 고통이 감당할 만한 것이라면 그것 때문에 나를 돌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나를 되돌아보는 일이므로.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이 어느 곳으로 향해야하는지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층간소음의 항의는 윗집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을 지은 시공사에게 해야 한다.

그간 나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오... 바로 이런 책이 필요했다.

서점에는 공부를 잘 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들이 널렸다. 열등생을 이해하려는 책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온전히 열등생에게 바쳐지는 책이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무언가'가 되길 강요당한다.  강요는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되길 원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신경쓰려 하지 않으려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무언가가 된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학교의 슬픔일까..

다니엘 페낙의 책은 <몸의 일기>도 좋았고, 오래전에 읽은 동화책 <늑대의 눈>도 좋았다. 시적이고 한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책은 줄거리는 알고 있어도 원작을 찾아읽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또 재밌다. 이 시기에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들이 많이 나왔는데 비로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재조명하게 되는 시기였다고 한다. 톰은 계속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양심에 따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에드워드는 톰이 되어봄으로써 훗날 올바른 군주가 되었다. 회초리 시동과 같이 재밌는 그 시대만의 읽을 거리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도 읽어봐야겠다.

 

 

 

 

 

 

이런 책들이 뜨는 데는 모두들 미니멀~해지고픈 욕구가 있기 때문일테다. 미니멀 라이프로 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이 소개된다.

- 집의 한개의 방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기

- 공산품의 라벨을 모두 제거하고 쓰기 (가령 세제 용기의 라벨 같은거를 다 뗀다.)

- 패션은 비슷한 패턴의 무난한 색으로 유니폼화 하기

- 수납의 60%정도를 비워두기

- 주방 싱크대 위에는 한개의 물건도 꺼내놓지 않기

 

그런데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무인양품의 정리용기를 사는 것도 미니멀라이프에 위배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사고 싶오.. 그래도 참고 물건들을 더 사려는 욕구를 줄여야겠다. 책도 사지 않고 전자책으로 구입하라는 것은 실현불가능 ㅠㅠ 채식도 시작하면 점점 더 엄격하게 하고 싶어진다던데, 정리도 점점 더 엄격하게 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허지웅처럼은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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