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서성?였던 습관을 없애고 잠을 좀 더 많이 자도록 노력했더니 읽은 책 정리할 기회가 없어졌다. 어른들이 왜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절대적인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 알라딘의 이 공간은 실세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아무도 모르는 공간이라 혼자만 있을 때 후다닥 글을 올린다. 얼마전엔 오래 사용했던 컴퓨터가 고장나 내 컴퓨터도 없는 상황. 컴퓨터가 없으니 또 그것대로 매력이 있어서 고치지도 않고 있다.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 속에서.. 그래도 독서는 계속되었으니, 기억을 더듬어 읽었던 책들을 소환해본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십 년 동안, 약 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서독으로 향했다. 이 책은 파독간호원(혹은 파독간호보조원)이라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 시대의 어떤 그룹으로 불리워지나 사실은 알고보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개인들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읽는 내내 설렘이 가득했다. 타국의 오랜 친구 레나, 한수 뿐만 아니라 어쩐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들 때문에... 독일의 G시가 어느 도시일지 궁금하다. 모호한 K.H.의 존재도... 소설가라는 직업은 쓰는 직업이지만 그에 앞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동네 북클럽 이달의 책으로 구매해서 코멘터리 북을 읽으면서 든 생각. 백수린 작가가 소설을 쓰고 거꾸로 독일의 G시를 확인하러 가는 부분을 읽으니 비로소 독서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읽고 오래전에 사두었다가 (아마도 문학동네 북클럽??) 눈에 띄어 읽었다. 영혼의 집처럼 지루할 틈 없는 스토리 전개로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었다. 글쎄 이 소설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한 사람이 오랜 동안 집착해왔던 것에 대해 그것을 떨치고 자유롭게 되는 과정, 다 부질없다? 좀더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엘리사: 젊은 날의 불같은 사랑의 호아킨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을 건 모험을 하지만 결국 그 사랑이란 것도 한때의 목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가 중요하다!! 현재의 사랑 타오치엔!
타오치엔: 명의가 되겠다는 열망, 린과의 추억. 엘리사를 구렁텅이에서 구하는 인물. 한때 지식, 학문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인물.
"당신은 뭐를 찾고 있었는데요?"
"지식, 학문,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것들이지. 하지만 난 싱송 걸즈를 찾았고, 내가 지금 얼마나 공경에 처해 있는지 보라고."
미스 로즈: 오빠의 숨겨진 딸 엘리사를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여성에게 숙명지어진 운명에 따라 엘리사를 키우지만 그 엘리사에게 배신당한다.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을 찾았던 과거의 날들. 흐뭇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연륜이 쌓이길. 방황했던 순간의 어설픈 나를 사랑하는 지금의 나이길.
오랜동안 그런 나를 좋아해주었던 그런 사람 한 명 내 인생에 있다면 참 괜찮은 인생아니겠는가.
"좋아요?"
"나는 늘 너를 좋아했어." p.301
정말 오랫동안 읽었다. ㅠㅠ 일단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힘들어 역자 해설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소설에는 1840년대와 1960년대 사이의 세대 갈등, 자유주의와 허무주의의 대립,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 학대받는 여성과 오만한 여성의 대비 등 다양한 주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관계와 갈등의 중심에는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
이처럼 모든 인물의 중심에는 스타브로긴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있는데 다른 인물들은 스타브로긴을 스승, 군주, 태양으로 부르고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달라고 호소한다.
샤토프, 키릴로프,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19세기 중엽 러시아 젊은 지식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리고 하다... 라고 해설이 되어있다. ^^;;
그런데 소설에서 스타브로긴은 꽤 뒷부분에 나오고 심지어 부록 '티혼의 암자에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진다.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혼돈스런 상황을 따라 읽다가 스타브로긴에게 귀결되는 그런 구조랄까... 2년 전에 사둔 알라딘 특별판으로 읽었는데 가독성이 높음에도 큰 독서의 재미는 못 느꼈던 도스토옙스키의 대작이다. 암튼 나도 악령을 읽었다는데 의의를.
미즈무라 미나에의 소설 <본격소설>을 오래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었다. 기존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변형한 것이 독특했다. <어머니의 유산>은 평생을 애증의 관계로 살아온 두 딸과 어머니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어머니는 몇년의 노화로 인한 투병 끝에 유산을 남기고 죽는다. 애증의 관계였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오십대 여성의 심리 묘사가 중반까지 이어지다가 신물난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하코네 산속에 폭풍우가 치던 날 밤, 어두운 기억만 되살아났던 일이 거짓말 같았다. 지금 되살아나는 기억은 어두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빛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의 이상함,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사는 것이 허락된 것의 이상함이 미쓰키를 쳤다. p.536
빛도 어둠도 아닌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인생의 가을쯤에 와 있다는 이상함...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미쓰키의 몸부림에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인생도 이해되어질 그런 순간이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모두에게 온다는 것이 생의 비밀인 것처럼 느껴진다.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한영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 50여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쓴게 여름인데 찾아보니 오늘이 마지막날...뜨아..)
이 책은 그런 작품들중 중요한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러 작품이 어떤 주제로 묶여져서 전시된 것은 아니라 다소 산만하게 서술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작품들을 한국에서 실견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인것 같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썼지만 미술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우리는 미술이라는 물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액자가 주는 느낌이라든지, 매끈한 표면이 아닌 물감의 질감이라든지..
가장 보고 싶은 작품은 티치아노의 <달마티아 여인>과 고야의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이다.
특히 후자는 저자의 유학경험에서 나오는데.. 화집으로 몇십년 가지고 있던 표제작을 실제로 한국에서 마주하는 기쁨은 상상만 해도 애틋하고 저자의 인생에서 어떤 큰 의미를 가질지 짐작하게 된다.
나도 전에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8월 초에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도 다녀왔는데 느낀 것은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그 탄탄한 기본기가 거장에게도 당연하게 기본이 된다는 진리를 느끼고 왔다. (어쩌면 유명한 그림들보다는 스케치가 더 많이 와서?) 호퍼, 젊은 날에 내가 참 좋아하던 화가였는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유명한 그림들보다도 데생, 스케치 같은 것들에 더 감명을 받은 것 같다.
결국 이 전시회는 보러가지 못했네요;; 언젠가 어떤 기회로 이 그림들을 눈 앞에서 마주할 날이 올 것인지...
1권에 이어 역시나 감탄하게 만드는 만화.
독서 덕후라면 어떤 페이지에서 스르르 마음 녹게 만드는.
어린 딸아이가 자기전에 침대에서 김연수의 새로 나온 단편집을 읽고 있는데 "왜 하루 종일 책을 읽는거야?"라고 말해서 전시적 시점에서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살짝 충격이 왔다.
작가는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되기 이전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게 참 재밌다. 예를 들어 , 절에서 총부 알바를 할 때는 IT보살님으로..
지금은 사라진 커피발전소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같다. 카페를 열었던 것도 같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위해서 같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
그런 우울한 날들도 글의 소재가 되고, 현재의 작가가 있게 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 힘을 느끼는 과정이 글에 고스란히 드러나있어서 두 책 모두 좋았다. 그리고 나도 어떤 힘을 받은 것 같았다. 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원 동영상 촬영, 절 총무, 인천공항에서 동선 측정하는 알바는 참 신선했다.
재미있게 읽은 외국어 배우는 에세이. 이탈리아어를 완전한 초보에서 부터 1년 동안 배우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서 삶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매주 토요일 외국어를 1년 배우면 이렇게 삶의 변화가 온다!) 나 또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한 로망이 늘 있어온 터라... 피렌체는 정말 가보고 싶다. 볼로냐도 추가. 우리도 정년 이후에 이 책에 나오는 노년의 모습이라면 참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다가 읽는 김연수의 글은 이 얼마나 말랑말랑한 모국어의 속살이란 말인가. 한번 읽고 다시 읽고 있다. 다정하고 따스해서...
잘못된 선택은 정말 없는 걸까요. 목숨을 버리는 것 같은 일도요.. 힘들고 더운 올 여름이었는데 가족을 잃은 누군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을까 생각하며 이제는 차가워진 가을 바람을 맞는다.
모두들 곁에 이유 없는 다정함이 가득한 가을, 겨울 맞이하시길.
* 그리고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은 하루키의 신간과 (요즘 제목이 잘 안 외워지는 현상이...)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어느 경로로 우리집에..?), <내 이름은 빨강> (와... 얼마나 오래 눈여겨본 책인가), 최은영의 새 단편집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책들을 매일 조금씩 읽으며 오늘은 책을 한아름 가져다가 중고서점에 팔 생각입니다. 모두들 행복한 가을날 보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