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법이다. 내 앞에 어떤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운좋게 피해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p286~287

 
   

천명관의 새로운 장편 소설.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왔다. 별 기대 안했는데 책을 펴고는 손에서 놓질 못해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고래'만큼의 충격은 아니지만 솔직하고 노골적이며 재미난 입담은 여전한 듯하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그의 생각은 마지막 장에 적혀있는 윗 글에 다 들어있는 듯 하다. 남들 보기에 뭣하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지질한 인생일지라도 그 인생 또한 그만의 삶이고 역사이기에 의미 있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무기력하고 지질한 날들이었는데 간만에 재미난 책 한 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계삼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새롭게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더불어 선생님께서 해제를 쓰신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도 같이 구입을 하였지요. 하지만 책을 바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읽고는 싶었으나 왠지 책을 펼지기 망설여지더군요. 선생님의 전작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삶을 위한 국어교육' 그리고 간간히 '녹색평론' 등에서 만난 선생님의 글들은 같은 교사 생활을 하는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을 주었고, 또 반성하게 했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암담한 교육의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를 날것으로 묘사하면서 제가 느끼고 있던 그 무기력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여 선생님의 책은 읽고 싶으면서도 쉽게 손에 쥐고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책을 구입하고 며칠을 바라보고 고민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휴직을 하게 되었고, 쉬는 동안은 학교나 교육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온전한 저를 찾고 싶었습니다. 제가 읽고 싶었던 책도 좀 읽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어 소설책 몇 권 읽고, 사회과학 책들도 몇 권 읽고 그렇게 학교와는 거리를 두었지요. 하지만 결국 제가 관심을 갖고 읽게 되는 것, 그리고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저를 다독이던 것은 교육현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사회과학 책을 읽다 내가 글자만 읽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저의 무기력함과 좌절감의 원인들,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메시지들이 문자로서의 글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써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 뒤의 선생님의 해제를 보면서 더더욱 감동을 했더랬지요. '일개 한 명의 교사에 불과한 내가 과연 무얼할 수 있을까' 하는 한탄과 그에 따른 무기력과 좌절을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탄은 무의미하다'라고 일갈하셨지요. 선생님의 그 말에 저는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한탄만 하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을 했지요. 그리고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여러군데에 실으셨던 글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미 읽은 글도 있고, 새로운 글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그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시골학교라도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의 일과는 너무나 고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에 자습 감독, 7교시까지의 정규수업, 8교시 보충학습 9,10교시 야간 자율 학습 감독 혹은 야간 수업. 때론 11시 12시까지 계속되는 심야야자 감독까지 그 속에서 교재연구며, 공문처리며, 학생 상담, 청소지도, 생활지도, 학부모 상담 등 지치기 쉬운 그 일과 가운데서도 선생님께서는 지역 사회 운동이며, 전교조 모임, 녹색평론 모임, 원고 기고, 강연 등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느끼신 것을 그렇게 고스란히 글로써 표현하시고 책으로 내셨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일상의 피곤에 짖눌려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한다 생각 못했던 저에게 죽비를 내려치시는 듯 했지요.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내용들은 교사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느꼈던 저의 생각과 느낌이 더욱 심화되고 확장되어 나타나 있기에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에 부산에서 선생님을 만나뵙고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이야기했었죠. 선생님께서는 그때 저에게 '모든 것이 헛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고, 살아가면서 또 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많은 일들을 그만 두더라도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 옆에 있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말이 참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늘날 학교는 갈곳 없는 아이들이 억지로 모여 있는 곳, 유일한 학력 인증 및 졸업장 수여 기관, 아이들이 공부보다 잠을 자기 위해 오는 여관으로서의 기능 밖에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안아주고 믿어주고 싶은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간절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저 곁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행동으로서 보여주심으로써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하, 그림자가 없다'의 경우 가을에 핀 벚꽃과 관련한 뉴스를 듣고 '사유하지 않는 삶'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성찰은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평소 학교 교사의 역할이 꼭 사유하지 않는, 제 역할에 성실한 공무원이었던 '아이히만'과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유하지 않는 삶'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현상과 그에 대한 깊은 사유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 촛불시위 등 다양한 사회 제재와 관련한 시민으로서의 선생님의 사유는 교사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오늘날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사들 또한 무한 경쟁을 뚫고 힘겹게 교사라는 안정된 직함을 가지게 되었기에 사회의 주류로서 편안하게 살아가고픈 욕망이 큽니다. 안정된 직장에 적당한 월급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삶이란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그대로의 삶이 아니던가요. 그러기에 저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대로 안일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같은 분을 통해 자신의 안일한 삶을 반성하게 되고, 다시 한 번 교육 현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선생님께서 더 많은 글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알려주시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선생님의 건강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부지런한 선생님 활동에 혹여 몸에 무리나 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앞으로 종종 현장에서, 또는 지면에서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교사로서 또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11년 9월 가을 어느날. 김해에서 여름 드림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도덕은 근본적으로 주의집중의 문제"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교육은 만남이며, 부딪침이라는 것, 공장의 노동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달라야 한다는 것,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사실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아닐까? -p24 

교육은 애초부터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아이들에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 '몸과 시간'을 구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근대 교육의 본원적인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거기에 '인적 자원'의 등급 감별에만 골몰하는 한국 교육의 극악한 현실이 엎어져 있다. 너무 힘이 들어 학교 바깥으로의 탈주를 여러 차례 꿈꾸기도 헀지만, 나 또한 이 바닥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안락에 어느 순간 나도 물들어버렸기 때문에,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리라. 이것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고 카를 마르크스가 인용했던 이솝우화의 한 대목,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라는, '지금 여기'를 버리고서는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진리의 무게를 조금씩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29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이해한 만큼 이해받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만큼 스스로의 삶이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한다.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자존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p90 

아이들 본연의 모습은 유희의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충분히 놀아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히 '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때서야 아이들은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p105 

그러나 나는 믿는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했듯, "바람은 딴 데서 불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데서" 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믿는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성찰의 힘이, 그리고 흙 속에서 노동하며 흘리는 땀방울이 이 모든 참담한 왜곡과 파행을 바로 잡아 주리라는 것을. -p109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하나의 '대세'에 편승하여 "난들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스스로의 공모를 합리화하면서 일구어온 전체주의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자기 행동의 도덕적 윤리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지는,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려는' 데에 기인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모습 바로 그 자체가 악이다. 이게 악의 진부함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었다. -p335 

일상의 마디마디, 매듭마다 꿈틀거리는 본절직인 것과의 연관을 끊임없이 스스로 잘라냄으로써 의식의 진공상태가 조성한 평화로움에 젖어 있고자 하는 것, 그리하여 생활은 껍데기로만 존재하며 자기 존재를 건 의식의 모험은 가급적 회피되고, 그 속에서 미디어와 시스템이 마련한 침대에 자발적으로 결박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망각'이 아닐까? -p3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수 끝에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선다는 기쁨도 잠시. 학교 현장은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초임교사로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던 첫 해 3월 한달 동안 매일매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르치는 보람보다는 여기저기 쏟아지는 공문과 일거리들,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른 현실 등에서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교사로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어느 정도 가르치는 일이나 학교 생활, 학생들과의 관계가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과연 오늘날 학교의 기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달리 학교는 여전히 작은 공간에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하루종일 (13시간동안!!) 가둬두고 책 속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킨다. 학교 수업에 흥미 없는 아이들은 졸거나 핸드폰을 만지거나 친구들과 장난치기 일쑤이다. 교사가 바라는대로 지시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은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공간. 국가에서 선정한 교육과정의 내용대로, 또는 사회가 바라는 대로 경쟁하면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만을 선발하는 이 죽음의 레이스에서 과연 학교는, 교사는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이고, 어떤 것을 가르치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계속 회의가 들었다.  

무언가 사회에 대한 문제점이나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삐딱한 교사라고 찍히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런한 것을 언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도 왠지 스스로의 검열에 의해 조심하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회의, 타성에 찌들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동료교사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점점 타성에 물들어가는 것이 참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도 참 싫었고... 그저 회의적인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이런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내가 서 있는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라는 걸. 누가 뭐래도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그것을 행동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타성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싸움을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 체제의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는 거룩한 성지에 다름 아닌 공립학교에서 거짓 성스러움을 벗겨내 아이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p16 

교사 자신의 진정성과 살아 있는 신념은 보이지 않는 교육과정인 셈이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 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잊혀지지 않는 교훈이 될 것이다.  -p40 

공립학교 학생과 교사의 의식에 주입된 가장 두드러진 억압들 중 하나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다.  -p41 

교사와 학생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큰 사안에 직면하면 차근차근 작은 투쟁부터 시작하려는 자발적 의지를 가져야 한 다는 뜻이다. -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p114  

<이계삼 선생님 해제>그는 교사들에게 우선 '솔직해지자'라고 말한다. 학교란 위선과 기만으로 지탱되는 국가기관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저 학교에 십수 년간 붙잡아놓고, 공부로써 경쟁시켜놓으면 십수 년 뒤에는 그들의 기대대로 '낮은 사고력과 쓸데없는 애국심'으로 치장한, 절대로 지배자에 맞서 단결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p170  

조너선 코졸이 제시하는 최종의 결로은 '행동'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부적절한 자책감에 시달려야 할 이유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졸은 이런 거대한 문제에 맞선 '작은 행동'을 안내하고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 또한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교사들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두려움이야 말로 이러한 악마적인 체제를 유지시키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p175 

 공교육을 지탱하는 물적 근거는 민중의 세금이다. 그러나 민중의 자녀들은 의무교육의 장으로 끌려 나와 배움의 기쁨을 오히려 뺴앗기고, 이기심과 복종과 묵인이 골수에 박힌 '비전 없는' 존재로 빚어진다. 그리고 절대 다수는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실패자'로 확정지어지고 만다. 이에 대한 코졸의 매시지는 간명하다. 정직한 한 인간으로 존재하자는 것, 할 수 있는 한 불복종하고 힘을 모아 싸우자는 것이다. '분노하고 비난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공립학교에서 우리의 권한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교훈'이라는 것이다. p-177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교사로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느낀만큼 공부하고 행동하길 권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하면 되는 것이다. 한탄은 무의미하다. -p179

 

 
   

쉬는 동안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나름의 실력을 잘 쌓고, 마음도 단단히 무장한 후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할 때 이 책의 내용들을 잘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는 '인식'을 통해 알려지기 이전에 먼저 '기분'을 통해 열린다.  

느낌이 이성보다 근원적이라 보는 철학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중요한 주체가 된다. '역겨움'과 더불어, 철학적 의미를 갖는 기분이 있다면, 아마두 '지루함ennui'일 것이다. 실존철학의 담론에서 '지루함'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예 현대인의 조건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때 삶에 의미를 주었던 최종적 권위들(신, 국가, 이념)은 무너졌다. 산업화한 도시 속에서 모든 것은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이것이 현대인이 느끼는 지루함의 요체가 아닐까?  

지루함에도 종류가 있다. 가령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루함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내면에서 올라오는 지루함이리라. 삶 자체가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느낌. 물론 지루함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 지루함은 휴식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며 우리를 새로운 창조로 이끈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의 행위로부터도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절대적 지루함은 인간을 보들레르가 말한 '처형대'로 이끌 수 있다. 자살에 반드시 처절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웅적인 것은 이 절대적 지루함을 분과 초 단위까지 충만하게 견뎌내는 인내심에 있지 않을까? 어느 에세이에 나오는 발터 베냐민의 말이 혹시 답이 될지 모르겠다.   

"파괴적 성격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살을 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진중권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후였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빨간 바이러스'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글을 접했는데 사회나 세상에 대한 정보나 지식, 경험 등이 부족한 터여서 독서한 후 그 느낌을 '삐딱이의 투덜거림'으로 정리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후 세상에 대한 공부도 좀 하고, 정치, 사회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다보니 그의 말이나 생각들이 좀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후 만난 책들 '미학 오딧세이', '호모 코레아니쿠스' ,'앙겔루스 노부스' 등의 책 등을 통해 그의 폭 넓은 지식과 리버럴한 생각과 태도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언론이며 인터넷에서 얼마나 날카로운 논객이던가... 매체를 통해 만나는 그의 모습에는 무언가 범접하기 힘든 날카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 초 노회찬의 '진보의 탄생' 출판기념회에 참여했을 때 그를 바로 옆애서 직접 본 적(만났다고 하기에는 혼자서 바라만 보았으므로 ㅠㅜ)이 있었는데 편한 캐주얼 차림에다 자그마한 몸집의 그냥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생님 혹은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곁에 다가가서 사인 받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만 보다 온 쓸쓸한 기억이 있다.  어쩄든 실제 그의 모습과 달리 예술, 철학, 사회, 정치 등 다방면에 관한 그의 지식이나 생각 등은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또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풀어내는 그 말솜씨나 글솜씨 또한 뛰어나다.  

이번 책 같은 경우 개념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말에서 "이 책이 '인식의 효소'. 말하자면 독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각각의 개념어들과 그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위의 인용문 같은 경우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쉬면서 느끼는 그 감정들을 'ennui -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의 개념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너무나 명확히 적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파타피직스, 파타포 등의 개념 또한 현재 우리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신을 논하는 종교가 오히려 돈을 숭배하는 유물론적 태도를 보이고, 정당들이 이념 논쟁을 하고 있어 관념론적 태도를 보인다고 한 것. 현실을 이렇게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지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좀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한동안은 꾸준히 그의 책과 글을 좋아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맘 먹고 도서관에서 소설책들을 빌려 읽었습니다. 한겨레 신문 토요일자에는 책과 세상이라는 색션이 있는데 거기서 새로운 책들을 소개 받으면 수첩에 적어 두었다 사거나 빌려서 읽곤 합니다. 노트 한 켠에 적혀있던 손아람의 '소수의견'을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손아람씨는 80년생입니다. 저랑 동갑인데 젊은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것이 참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니 그 감정이 더욱 커지더군요. 소설은 용산참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기업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쫓겨나게 된 철거민이 4층 건물 꼭대기에 망루를 짓고 항거하다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에서 아들은 경찰에게 맞아 죽고 그 옆에 있던 아버지는 경찰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를 변호하는 국선변호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사건을 맡고, 변호를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조사하고 법정에서 검찰과 공방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어려운 법률용어며 법정 절차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정말 놀랍더군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나 싶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결론은 현실과 다르게 나름 행복한(?) 결말입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이나 절망, 아쉬움들을 나름 달래줬다고 해야할까요?

 

다 읽고 나니 작년에 읽었던 주원규씨의 '망루'가 떠올랐습니다. 역시나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재개발 과정과 철거민들의 투쟁. 하지만 이 '망루'는 대형교회의 비리와 함께 재림예수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예수가 재림하더라도 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죄를 짓는 이들을 벌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저 다친 사람을 기적으로 치료만 할 뿐. 선과 악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두 작품 다 젊고 새로운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잊지 않고 소설로 표현하여 그것을 잊혀지지 않도록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새롭게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상기 시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힘이자 문학의 기능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두 작품 모두 강추~!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