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계삼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새롭게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더불어 선생님께서 해제를 쓰신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도 같이 구입을 하였지요. 하지만 책을 바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읽고는 싶었으나 왠지 책을 펼지기 망설여지더군요. 선생님의 전작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삶을 위한 국어교육' 그리고 간간히 '녹색평론' 등에서 만난 선생님의 글들은 같은 교사 생활을 하는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을 주었고, 또 반성하게 했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암담한 교육의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를 날것으로 묘사하면서 제가 느끼고 있던 그 무기력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여 선생님의 책은 읽고 싶으면서도 쉽게 손에 쥐고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책을 구입하고 며칠을 바라보고 고민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다가 휴직을 하게 되었고, 쉬는 동안은 학교나 교육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온전한 저를 찾고 싶었습니다. 제가 읽고 싶었던 책도 좀 읽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어 소설책 몇 권 읽고, 사회과학 책들도 몇 권 읽고 그렇게 학교와는 거리를 두었지요. 하지만 결국 제가 관심을 갖고 읽게 되는 것, 그리고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저를 다독이던 것은 교육현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사회과학 책을 읽다 내가 글자만 읽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저의 무기력함과 좌절감의 원인들,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메시지들이 문자로서의 글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글로써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 뒤의 선생님의 해제를 보면서 더더욱 감동을 했더랬지요. '일개 한 명의 교사에 불과한 내가 과연 무얼할 수 있을까' 하는 한탄과 그에 따른 무기력과 좌절을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한탄은 무의미하다'라고 일갈하셨지요. 선생님의 그 말에 저는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한탄만 하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을 했지요. 그리고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여러군데에 실으셨던 글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미 읽은 글도 있고, 새로운 글도 있었지만 선생님의 그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시골학교라도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의 일과는 너무나 고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에 자습 감독, 7교시까지의 정규수업, 8교시 보충학습 9,10교시 야간 자율 학습 감독 혹은 야간 수업. 때론 11시 12시까지 계속되는 심야야자 감독까지 그 속에서 교재연구며, 공문처리며, 학생 상담, 청소지도, 생활지도, 학부모 상담 등 지치기 쉬운 그 일과 가운데서도 선생님께서는 지역 사회 운동이며, 전교조 모임, 녹색평론 모임, 원고 기고, 강연 등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느끼신 것을 그렇게 고스란히 글로써 표현하시고 책으로 내셨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저는 일상의 피곤에 짖눌려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한다 생각 못했던 저에게 죽비를 내려치시는 듯 했지요.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내용들은 교사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느꼈던 저의 생각과 느낌이 더욱 심화되고 확장되어 나타나 있기에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에 부산에서 선생님을 만나뵙고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이야기했었죠. 선생님께서는 그때 저에게 '모든 것이 헛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고, 살아가면서 또 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많은 일들을 그만 두더라도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 옆에 있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말이 참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오늘날 학교는 갈곳 없는 아이들이 억지로 모여 있는 곳, 유일한 학력 인증 및 졸업장 수여 기관, 아이들이 공부보다 잠을 자기 위해 오는 여관으로서의 기능 밖에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을 안아주고 믿어주고 싶은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간절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저 곁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직시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행동으로서 보여주심으로써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하, 그림자가 없다'의 경우 가을에 핀 벚꽃과 관련한 뉴스를 듣고 '사유하지 않는 삶'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성찰은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평소 학교 교사의 역할이 꼭 사유하지 않는, 제 역할에 성실한 공무원이었던 '아이히만'과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유하지 않는 삶'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현상과 그에 대한 깊은 사유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 촛불시위 등 다양한 사회 제재와 관련한 시민으로서의 선생님의 사유는 교사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오늘날 교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사들 또한 무한 경쟁을 뚫고 힘겹게 교사라는 안정된 직함을 가지게 되었기에 사회의 주류로서 편안하게 살아가고픈 욕망이 큽니다. 안정된 직장에 적당한 월급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삶이란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그대로의 삶이 아니던가요. 그러기에 저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대로 안일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같은 분을 통해 자신의 안일한 삶을 반성하게 되고, 다시 한 번 교육 현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선생님께서 더 많은 글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알려주시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선생님의 건강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부지런한 선생님 활동에 혹여 몸에 무리나 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앞으로 종종 현장에서, 또는 지면에서 만나뵈었으면 합니다. 교사로서 또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11년 9월 가을 어느날. 김해에서 여름 드림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도덕은 근본적으로 주의집중의 문제"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교육은 만남이며, 부딪침이라는 것, 공장의 노동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달라야 한다는 것,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이 모든 사실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아닐까? -p24 

교육은 애초부터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아이들에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 '몸과 시간'을 구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근대 교육의 본원적인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거기에 '인적 자원'의 등급 감별에만 골몰하는 한국 교육의 극악한 현실이 엎어져 있다. 너무 힘이 들어 학교 바깥으로의 탈주를 여러 차례 꿈꾸기도 헀지만, 나 또한 이 바닥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안락에 어느 순간 나도 물들어버렸기 때문에,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리라. 이것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고 카를 마르크스가 인용했던 이솝우화의 한 대목,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라는, '지금 여기'를 버리고서는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진리의 무게를 조금씩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29 

사랑한 만큼 사랑받고, 이해한 만큼 이해받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만큼 스스로의 삶이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한다. 삶에 대한 책임과 성실성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자존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p90 

아이들 본연의 모습은 유희의 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충분히 놀아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히 '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때서야 아이들은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p105 

그러나 나는 믿는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했듯, "바람은 딴 데서 불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데서" 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믿는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성찰의 힘이, 그리고 흙 속에서 노동하며 흘리는 땀방울이 이 모든 참담한 왜곡과 파행을 바로 잡아 주리라는 것을. -p109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것이 가장 위험하다. 하나의 '대세'에 편승하여 "난들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식으로 스스로의 공모를 합리화하면서 일구어온 전체주의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자기 행동의 도덕적 윤리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지는,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려는' 데에 기인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 모습 바로 그 자체가 악이다. 이게 악의 진부함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었다. -p335 

일상의 마디마디, 매듭마다 꿈틀거리는 본절직인 것과의 연관을 끊임없이 스스로 잘라냄으로써 의식의 진공상태가 조성한 평화로움에 젖어 있고자 하는 것, 그리하여 생활은 껍데기로만 존재하며 자기 존재를 건 의식의 모험은 가급적 회피되고, 그 속에서 미디어와 시스템이 마련한 침대에 자발적으로 결박당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망각'이 아닐까?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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