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주 째 비였다가 햇살이 눈부신 화요일 아침-나는 이방인을 읽으려고 햇살이 따가운 날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처럼- 창 밖의 햇살이 켜놓은 형광등보다 밝다. 여름 나뭇잎이 내가 앉은 쪽의 창을 툭툭 건드리는 때 나는 귀찮은 듯 느릿느릿 페이지를 넘겨 드디어 이방인을 읽기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과도한 빛에 거리감각이 무뎌져 책상 모서리에 몇 번 다리를 짓찧어 잔뜩 눈을 찡그려보지만 그것이 햇살의 이유인지 고통의 이유인지도 모호하여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읽는 뫼르소는 깊은숨을 푹푹 쉬게 할 만큼 멋지다. 누가 고막이 터질 듯 요란스런 노래를 부르다 정지 버튼을 눌러 음악이 멈춰버리는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순간처럼 저절로 숨이 멈춰지는 약간 난감한 기분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2.
하늘이 바다 같다.
노트의 첫 줄에 이렇게 적혀있다. 그리고는 미토콘드리아에 사무친다, 시가 한 편. 나머지는 나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험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지만, 그 날이 꼭 오늘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안정적이고 평온한 것을 뒤흔들고 싶은 못된 욕망 같은 것이 있다. 온전한 모양을 갖춘 것을 파괴하는 재미. 틀을 깨고 옳지 않다 여기는 길로 가보고 싶은 충동 같은 것. 그래서 당신이 떠난 여행길이 내겐 고통이다. 차마 말못하고 무심을 가장하여 외면하는 야비함. 고통은 내 것이 더 크다.
순천이 고향인 어떤 남자의 목소리에 매료된 적이 있다. 처음 그 사람 목소리를 듣던 날, 나는 다섯시간이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곱고 단정한 목소리로 많은 얘기들을 들려주었고, 나는 그 남자 목소리만 있으면 비 내리는 이 백일을 태양 없이 견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남쪽이 고향인 그 남자와 뭔가 낭만적이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비가 많던 여름 내게 우산을 씌워준 며칠 후, 큰 부도를 내고 도망자가 되었다. 이런 여름이었다.
3.
어디 물가, 먼 바다나 계곡 같은 곳에서, 웃고 있을 것 같았다. 닭을 여러 마리 끓이는 중이거나, 햇감자 옥수수 같은 걸 마당가에서 삶고 있을 것 같았다. 끓는 닭이 암탉일까에 생각이 미치자 그 때부터 내가 웃기 시작했다. 수박을 쪼개 먹고 달게 낮잠을 자는 중일 거라고도, 구름 같은 걸 보고 있거나, 높은 나무의 자두를 따서 아이들에게 먹이거나 하며. 그러는 중 당신 생각의 어느 언저리에 내가 있을 까, 혼자 묻기도 했다. 그렇게 먼 곳까지 내 소리가 닿지 않아서 우리는 혹시 이별 같은 걸 한 게 아닐까도 생각 되었다.
- 오래 된 파일을 열었더니, 지난 여름이 몇 토막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