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뭔가 좋지 않은 병 같은 것을 앓고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쉽게 나이 들지 않는 병. 이웃보다 더 순수한 병. 손님보다 착한 병. 뭐.. 그런.
우리는 그녀가 날라다 준 소주를 마신다. 그녀의 엄마는 솜씨 좋은 요리사.
그녀의 아버지는 머리가 하얀 반백의 구부정한 할아버지이지만 좋은 인상이다.
나는 미더덕을 자꾸 골라 먹으면서 그녀의 아버지를 훔쳐본다. 그녀는 오늘 어딘가 더욱 모라자 보이는 표정이다. 나는 회오리를 만들면서 소주를 한 병이나 마신다. 내게는 그래도 되는 밤이다.
‘나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나이는 아버지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아.’
‘으응.. 그렇지만 요즘은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 참 부럽다.’
‘아버지 없는 사람이 주위에 몇인지 알아?.’
‘윤고문, 반고문, 기용이. 기용이는 엄마도 없네. 용식이. 너. 나. 음.. 그리고.. ’
‘거봐,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아.’
멍청하다.
그게 위로가 될거라고 생각하다니. 갯바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다가 익사한 아버지를 삼일 만에 건져내고 뉴스에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친구에게 나의 아버지 타령은 조금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당장 아버지가 필요하다.
택시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내 친구. 녀석은 전날에 내일이 아버지 제사니까 아침은 제 집에서 먹으라고 우리를 불러 모으던 예민한 놈이다. 나는 아버지 얘기가 하고 싶다. 그래서 전화를 하지만, 이미 잔뜩 나이가 먹은 내 친구는 회식중이고 ‘아’ 자도 꺼내기 전에 끊어 임마! 그러면서 킥킥 웃는다.
어제는 울었고, 오늘은 아버지.
나는 그냥 일지매를 좋아하고, 카스를 마시고, 처음처럼의 0.5%조금 더 알콜을 선호하는, 아구찜의 작고 통통한 미더덕을 열심히 먹는, 아버지를 조금 그리워 하는, 이웃보다 조금 더 순수한 ^^ 푸른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