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 수석 디자이너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론칭한 브랜드로 승승장구 중인 톰 포드는 2009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A sigle man>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한다. 주인공인 중년의 영문학 교수 조지를 연기한 콜린 퍼스의 찬란한 연기, 디자이너 출신 감독 특유의 색채와 소리에 대한 섬세한 감각은 원작의 충실한 재현을 뛰어 넘는 완성도와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침대 위에서 사랑했던 사람의 차갑게 식어버린 입술에 입맞추며 화들짝 놀라 깨어나는 교수 조지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을 관통하는 접점에서의 현재와 자아의 조우를 묘사한 독백은 원작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서늘한 음악, 에메랄드빛의 차를 스치고 지나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무의식에서 깨어나 '하루'와 '나'의 옷을 입는 우리들의 나날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펼쳐내고 있다. 이미 우리 앞에 당도해 있는 죽음 안의 하루 하루는 갑자기 성큼 눈 앞에서 숱한 날들 중의 하나지만 또 특별한 여기에서의 지금으로 그려진다.
Waking up begins with saying am and now.
영화도 원작도 동성애자인 조지가 반려자였던 짐을 사고로 잃고 여느 날처럼 시작했지만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최후를 맞는 하루를 그려낸다. 그는 누구나가 기대하는 중년의 교수가 입어야 하는 정체성을 관성처럼 입고 학교에 출근하지만 내면은 잃은 사랑으로 이미 산산이 부서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하고 자신에게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학생을 상대하지만 내밀하게 스스로 삶을 종결짓는 하루를 공모하고 있었다. 영화는 원작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한 동일시, 감정 이입,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들이나 이야기가 많다.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톰 포드와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정확히 교감했다는 느낌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것은 삶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역시나 원작의 서문에는 디자이너 톰 포드의 서문이 실려 있다. 그는 열아홉 살때 처음으로 <A single man>을 읽었고 사십 대 후반이 되어 또 다른 감동으로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영화화를 결심하게 된다. 톰 포드가 실제로 작가 크리스토퍼 어셔우드를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톰 포드는 이성애자의 세계에서 동성애자로서 느끼는 이질감, 고립감을 충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 예기치 않게 끼어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사회가 입히는 강제적 정체성의 감옥 속에서 진정한 실재와 자기를 발견해 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서 엄중해지는 시간성이 난타하는 삶의 편린으로서의 하루에 대한 예민한 인식의 촉수도 날카롭다. 누구나가 하루를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하루가 담겨 있는 병의 입구가 임의적으로 닫힌다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괴로워할 것도 상실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이다.
그래도 역시 그렇게나 슬퍼하고 번민하고 끄달리는 누구나의 단 하루는 언제나 얼마간의 찰나의 아름다운 예술성을 지닌다. 아름답지만 처절하게 슬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