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 전설의 책방지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젊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논리나 지론을 강제하거나 훈계하지 않는 여든넷의 노인을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팔십이 넘어 현역에 있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산업구조다. 팔십이 넘어 자녀나 친척이 아닌 젊은 세대들과 동등하게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낼 기회를 손쉽게 얻는다는 것도 그렇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공중 도덕을 지키지 않을 때 그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결 구도로 희화화 되는 요즘이다. 소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나이듦은 불통의 노년의 집단으로 희석된다.
시바타 신은 여든넷의 책방지기다. 아직도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이와나미 북센터에 출근한다. 거의 반세기에 걸쳐 서점 현장에 있어 왔다. 서점 업계의 저널리시트인 거의 사십 년 차이가 나는 저자가 그와 마주 앉아 그의 삶과 일본의 서점계의 역사를 듣고 이런 저런 소회를 나눈다. 그는 "젊은 사람을 억누르지 않는 사람이다." 따라서 미주알 고주알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거나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저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그럴 수도 있겠어. 나중에 한번 시도해 볼게."라고 이야기한다. 정작 자신의 이야기에 이르면 심드렁해진다. 어떤 '주의'나 '이상'을 회의한다.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는다. 대쪽처럼 곧지 않고 현실에 발을 깊숙히 담그고 변화와 시류를 수긍한다. 그는 나이듦을 뒤집어 쓴 젊음의 모습 같다. 둘의 대화는 도발적이면서 담담하다. 갈피짬마다 끼어드는 그의 삶의 역사의 요약은 쉼표 같다.
내 나이쯤 되면 뭐가 옳은지, 뭐가 정답인지는 전혀 재미가 없어.
-p.54 이
그에게 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책을 파는 행위나 장소도 이상화되지 않는다. 현대의 대량 자본주의 논리에는 염증을 느끼지만 서점도 자금융통을 해야 하는 장사이자 사업이다. 꼭 이렇게 해야한다,거나 절대적인 것은 그 앞에서 흔들린다. 오직 그는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갈 뿐이다. 죽음도 그러하다. 그가 인용하여 자기화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닮아 있다. '죽음'은 그 순간, 그 사람은 이승의 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1인칭을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곧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체도 불가능한 영역이므로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이미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치로 끌어내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런 담담한 보통의 자연스러운 그의 나날들이 참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자신의 공과를 과시하며 그악스럽게 질주하는 나이 든 자들이 권력을 탐하고 있는 오늘을 무색하게 한다. 나이듦이나 노년이 세상을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그들의 포기할 줄 모르는 탐욕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여든 넷의 책방지기 앞에서도 출판계나 책에 대한 작은 희망의 불씨가 낙관적으로 점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조차 그는 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찰랑이는 물결 속에 이 나이든 자는 초연하게 그러나 그 물살에 가끔 손을 적셔가며 저벅 저벅 걸어나간다. 어쩌면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유연함에 대한 이야기인 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가장 집약된 형태랄 수도 있는 대형 커피숍 체인의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말다 한다. 젊은 아이들은 저마다 내일을 품고 오늘을 소비하며 거리를 가른다. 모든 것은 모순이다. 절대도 순수도 순전함도 어떤 순간에는 폭력이 된다. 그런 이야기를 노인이 하고 중년이 듣는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찰나지만 결국은 무언가가 남아 보탠다. 그런 게 나날이 되고 삶이 된다. 그런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