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지음, 고영범 옮김 / 강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9월 3일부터 읽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감기로 뒤채다 견딜 수 없어 타이레놀을 찾아 일어났다. 약을 삼키니 이제 마저 읽고 싶어져 바닥에 퍼더 앉아 그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따라갔다. 이미 죽을 것임을 알고 일어나는 모든 현재진행형 일들이 사소하게도 느껴지고 엄혹하게도 느껴지고 너무 무기력하고 가련하게 보여 중간 중간 멈춰야 했다. 이제 레이먼드 카버는 바야흐로 미국 단편의 거장으로 그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축소하고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이유로 싫어했던 미니멀리스트 그 자체로  가는 시점이었다. 모든 실현되지 않을 여행 계획들, 출판할 책들이 죽음의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했던 동반자 시인 테스 갤러거는 그의 작품을 위해 자원해서 삶을 헌납했던 메리앤의 헌신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그녀는 '그'를 완성시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을 이야기했던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작품들을 정리하고 간행하고 세상에 정련된 모습으로 보여주었던 그 여자가 결국 그의 마침표에 동했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십여 년에 걸친 자료수집, 생존자들과의 면담, 저자 자신의 언어에 대한 성실함과 레이에 대한 애정, 경탄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 만큼이나 그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복원해 내었다. 이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사이의 틈새를 허룩하게 방치하며 검증된 낱낱의 사실들의 공허한 나열도 아니고 성급하게 그 막간에 개입하여 소위 소설을 써 나가는 오만도 아닌 가장 균형 있는 지점에서 이 모순적이고 매력적이고 천진한 작가의 삶을 관조하고 언어의 결들에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러니 그 모든 성실한 취재의 틈마다 생략된 잊혀진 이야기들은 공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레가토를 따른다. 레이가 자신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느라 웨이트리스로 심지어 백과사전 세일즈까지 했던 전처 메리앤과 왜 결국 결혼 생활을 끝낼 수밖에 없었는 지, 편집자 고든 리시의 오만에 왜 그다지도 미온적으로 반응했었는 지에 대한 의문들은 그러니 그 자체로 가지고 이 사내의 삶의 여정에 동행해도 괜찮다. 모든 상상력의 여지와 생략과 말줄임표 사이에 진실의 핵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캐롤 스클레니카는 잘 알고 있으니까.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이름의 아버지는 노동자였고 아들처럼 알코올 중독자였지만 아들에게 불성실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그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웃의 사내에게 주말마다 사냥에 아들을 데려가 자연 속에서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려는 노력까지 했다.  이 시간은 오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레이가 작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분명 무언가를 남겼다. 아버지는 소멸로 가는 그 여정에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육체 노동은 이제 글쓰는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길 거구의 아들을 둔 이 아버지의 존재감이었다. 레이는 그 자신조차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의 한계 앞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알코올 중독자가 된 딸을 아파하면서도 그 딸이 재정적으로 너무 기대어 올 때는 부담스러워했고 자신과는 다르게 착실하게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 아들과의 관계에 대한 부담감을 은연 중 내비치는 단편으로 아들을 아프게 한다.

 

레이의 작품들에는 거의 대부분 부부가 나온다. 그리고 아내의 모습에는 열다섯 살, 도넛상점에서 처음 시선을 마주친 아내 메리앤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제재소에서 일하고 돌아온 소년에게 함께 보바리 부인과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한 소녀는 그가 글을 쓰는 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둘째를 가지고도 과수원에 일하러 나가 타자기를 사들고 온다. 자신의 학업이나 꿈은 항상 레이 앞에서 후순위였다. 마침내 남편이 성공하여 자신을 떠나 '자신은 여전히 빗 속에 있을 때에도' 그녀는 레이를 걱정하고 배려했다. 다른 여자 옆에 있어도 레이는 그러한 아내와 공유한 시간과 꿈들, 눈물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 시인 테스 갤러거가 진정한 의미의 작가로서 레이를 완성시키는 데에 일조를 담당했다면, 메리엔은 레이를 작가로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자 레이가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그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작품화 하는 데에 강력한 동기를 작용한 추동력처럼 보인다. 그러니 죽어가면서도 레이는 전처의 천사 같았던 그 모습을 제발 염두에 달라고 테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에서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그리고 그의 사후 작품에 관련된 모든 권리에서 대부분 소외되게 된 메리앤이었지만 이러한 레이의 진심만은 어떤 형태로든 짐작하고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 성인이 되기 전 부모가 되었던 소년, 소녀는 들이닥치는 삶의 과제들을 외롭게 해결해 나가야 했던 그들은 그러한 것들 대부분을 이야기화해 나가며 싸우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마침내 전설로 만들어 버렸다.

 

레이먼드 카버의 알코올 중독 시절 쏟아낸 많은 작품들이 편집자 고든 리시의 과도한 개입에 의하여 더 완성도를 가지게 되었는 지, 카버 특유의 색깔과 신선함을 잃게 되었는 지에 대한 의견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어디까지가 리시의 편집이자 창작인 지에 대한 경계도 그러하다. 이는 저자의 "출판이란 언제나 예술을 상업적으로 전환시키기 마련인데 거기에 리시의 과도한 편집과 카버의 알코올 중독이 합쳐지면서 이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모호해졌다."는 표현이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모호함'의 지대에 레이먼드 카버의 것들이 놓여 있기에 논쟁의 끝은 명료한 것이 되기 힘들다.

 

그 무엇보다 레이먼드 카버가 알코올 중독에서 해방되는 과정이 그 자신의 표현 만큼이나 팬으로서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다. 아버지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취해 있었던 그가 마지막 잔을 입술에 대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들이 하루 하루 차곡 쌓여가는 과정이 마침내 술에 대한 그의 승리로 귀결되는 묘사가 아름답다. 드디어 레이먼드 카버는 삶과 글들을 주무를 수 있다고 착각해도 괜찮게 되는 시점, 그 원숙한 지점에 도달하고 걸작 <대성당>을 낳는다.

 

서른다섯의 하루키는 이미 죽음에 임박해 있는 작가와의 조우를 계기로 그를 초대하기 위하여 그 거구를 누일 침대를 일본에서 제작한다. 이 모든 것들은 삶에서 밀려오는 그 잔인하고 때로 신비로운 우연 앞에서 좌절된다. 그것 또한 레이먼드 카버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통과하며 그 모든 것들을 잉크처럼 푹 담가 써 내려갔던 그의 모든 이야기들은 레이먼드 카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여행."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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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5-09-20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다 해도 한사람의 삶이 끝나가는 걸 보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죠

알코올 의존증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마시지 않다 다시 마시면 다시 돌아가고... 처음부터 그렇게 안 되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을 고쳤다는 말을 보고 이런 말을 했군요 딸도 그랬다니... 이것도 유전되는 걸까요 그것보다는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부모를 보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 하는 사람도 있고, 닮는 사람도 있잖아요

레이먼드 카버 소설 예전에 한권 읽기는 했는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소설은 못 봤지만, 이건 한번 보고 싶기도 하네요


희선

blanca 2015-09-20 22:34   좋아요 0 | URL
그만큼 어려우니 카버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이 술끊기에 성공한 것이었다고 고백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술잔을 입에 대고 그 날들이 쌓여 마침내 금주에 성공하는 장면이 그의 소설들 만큼이나 극적이고 감동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