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군가에게 취미가 독서라고 밝히는 일은 다소 멋쩍은 것이 되어 버렸다.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는 이야기에 부모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던 아이 엄마, 아빠 들은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생명체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종이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나이들어가는 중년에게 행복한 순간이 된다는 것에는 공감하기 힘들다는 듯한 눈빛으로 느껴졌다,면 자격지심일까.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액정으로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독서가'가 된다는 것은 조금 고독한 일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재미있게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많았고, 그 책을 줄서서 서로 빌려주고 빌려받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책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책을 기반으로 건설된 사회에서 살면서도 책을 읽지 않을 수 있고, 책이 액세서리에 불과한 사회에 살면서도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가 될 수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중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라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대우를 받지 않아도 어느 지점에서 책을 소유하고 읽고 해석하고 느끼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내면화하는 그 일련의 과정에 어떤 의의나 의미를 부여받고 싶은 소망이 크고 있었다. 왠지 위축되고 무의미하고 때로는 이 한정된 생, 공간에서의 그 종이 위의 검은 잉크 자국들에의 집착이 낭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적어도 말줄임표를 허용할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렇다면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 이 세계를 응시하고 해석하고 해체하고 형상화할 수 있었던 보르헤스에게 그의 눈을 대신해 책을 읽어 주었던 소년이었던 알베르토 망구엘이 개인적인 차원의 독서의 지평을 역사적인 것으로 확대한 그의 책을 읽는 일은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판형과 사백 페이지를 넘는 분량은 사실 그리 접근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읽는 일'의 역사까지 천착할 만큼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젊은 날의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하는 이 읽는 일에 대한 섬세하고 정성어리고 사려 깊은 천착은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 상상한 미처 쓰지 못한 <독서의 역사>의 첨언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쉽게 접근할 듯하면서도 학구적이고, 정보를 제공하는 듯하면서도 사색적이다." 걸프전이 벌어지기 전 바그다드 고고학 박물관에서 알베르토 망구엘이 직접 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 중 가장 오래된 예인 진흙 조각에 파인 홈으로부터 마침내 즉각적으로 우리의 생각,느낌을 구태여 출판의 형태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이버로 유통시킬 수 있는 작금에까지 그 장대한 독서의 역사는 사실 우리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만들어 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은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의 미덕은 이러한 역사 현장의 복원이 죽어 있는 하나의 해설이나 주석이 아니라 생생한 현장의 드라마인 것처럼 그려낸 상상력과 문체의 힘에 있을 것이다. 15세기 라틴 학교 학생들이 남긴 노트에서 복원해 낸 읽는 일의 자발적지평의 확대의 현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이 하나의 연대기의 자잘한 기록에 그치지 않음에 놀라움까지 느끼게 된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자들 앞에 그 교실에서 노트의 빈 공간에 자신의 해석, 느낌을 끼적이는 청년들의 자태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역사다. 이제 읽는 일은 더 이상 공적인 영역 안에 가두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더 은밀하고 내밀한 개인적인 것으로 마침내 옮겨 가게 된 것이다. 낭독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간들이 지나고 묵독이 허용되고 더 나아가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고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책 읽는 사람들이 편재해 있다는 상징으로서 펭귄문고의 출발을 이해한 그의 이야기는 오늘 읽고 싶은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당일 바로 받아 언제든 읽고 싶을 때 읽고 심지어 그 느낌, 감상까지 사이버 공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이 자유가 고독과 맞닿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호사스러운 것으로 느끼게 한다.

 

'피그말리온 서점'에서 눈이 번 노작가에게 행복한 포로가 되어 책을 읽어주던 소년은 그 위대한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쓰지 않은 책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교를 부려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마치 이 책에 다 언급되었던 것처럼 짐짓 너스레를 떠는 작가의 계략에 어리둥절하다 독자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그에게 속아주는 것이 숱한 노고들이 녹아 있는 이 책에 대한 독자의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을. 그러니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이 책을 제대로 읽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독서의 역사>는 알베르토 망구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잡혀들어가는 행복한 포로 생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이상 책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육천 년간 인간이 독서가로서 존재했던 과거에서 길어내는 하나의 위로이자 확신이다. 책은 결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독서가로 남는 일도 고독하고 위험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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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12-0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아이들 키우며 책을 읽는 일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요.
밤의 도서관, 담아갑니다.
올해 마지막 달의 첫날
두 이쁜이들과 행복한 날 보내세요^^

blanca 2014-12-02 13:2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잘 지내시죠! 아무래도 여유가 없다 보니 책 읽는 시간이 참 소중해요.
프레이야님도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더 행복하고 건강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