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성석제 같은 작가 요즘 진짜 잘 쓰잖아.

 

교양국어 시간. 대학교 1학년. 나는 그 작가를 잘 몰랐고 그래서 그로부터 십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둘을 혼동한다. 나는 분명 수많은 강의들을 들었을 테고 수많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필기까지 했을 테지만 유독 그 시간의 이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그 공간 안에서 그 작가의 이야기나 문체의 향내와 내 청춘이 혼재하는 소중한 추억으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는 학생들에게도 어떤 기호나 평가를 떠나 당당하게 잘 쓰는 작가로 소개될 정도의 그런 인물이었다,로 남아있는 것이다.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는 막간의 휴식 같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윤대녕의 이 에세이는 마지막 장을 덮고 그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어떤 그녀와의 해피엔딩의 고백을 떠올리며 잘된 장편 소설을 읽은 후와 비슷한 감동의 여운에 가슴이 저릿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너무 솔직하고 초연하고 애절한 그의 삶에 대한 고백들, 나도 내가 떠나온 그 공간들이 하나씩 귀환하는 듯한 환상에 내내 행복했고 가슴이 뛰었다. 주저리 주저리 자기 과거의 미화에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노마드처럼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던 슬픈 유년, 청년기의 사연들에 엄살을 떨지도 않으며 삶의 갈피짬마다 쓰는 자로서 겪어야 했던 에피소드들이 그의 소설의 결처럼 섬세하고 생생하고 추연하게 복기된다.

 

쓰기 위해 자신의 공간이 장소로 고착화되고 저물게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유랑하는 그의 삶이 참으로 고단해 보이면서 다시 한 번 '작가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했다. 어쩌면 작가란 자신의 삶 자체도 하나의 제물로 바쳐야 검은 활자로 이야기를 받아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참으로 슬픈 직업일런지 모르겠다. 아니, 윤대녕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고문이자 하나의 운명 같다. 

 

한때 출가를 꿈꿨다는 그가 소개하는 '사원들'은 기억해 두고 언젠가 한번 꼭 방문해 보고 싶다. 이를테면 그가 하나 하나 소개했던 "봄의 선암사, 가을의 내소사, 출가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부여 부석사 무량수전, 사과나무 길을 통과해야만 닿을 수 있다는 영주 부석사, 마룻구멍으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절정은(그렇다, 이 에세이들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까지 구비한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에 상응한다) 대한극장이 고전을 재상영하던 시기 밤새 함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자신한테 과하다고 느껴 이별을 선고하고 유럽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헝가리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거리에서 괴로워하며 다시 전화기를 들어 재회를 기약한 여인과의 결말이다. 군데 군데 그를 현실로 내려오게 하는 아내에 대한 간간의 언급은 이 여인과의 에피소드의 솔직함에 아내가 기분나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했던 그의 대담함의 이유가 결말이다. 아내. 바로 중년 부인이 된 샴고양이라고 묘사한 아내가 된 그 비장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이 참으로 궁금하다. 이 해피엔딩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 삶의 비의를 탐구하기 위해 더이상 인간 관계를 확장하지 않고 도통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방랑벽의 이 사내의 지상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의 아내가 돌연 존경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윤대녕'이라는 작가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언급한 숱한 공간들과 나의 공간들은 일치하는 구석이 없었다. 아쉽게도. 그런데 마지막 단락. 마침내 못 만날 듯 못 만날 듯 했던 만남이 이루어졌다. 손만두집. 두 번 정도 가 본 그곳. 아름다웠지만 막상 맛은 심심했던 그곳을 이 작가 덕택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그의 존재를 스물 언저리에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이제 어쩌면 마흔으로 가고 있는 나는 쉰 살의 문턱을 넘은 작가가 풀어 낸 자신이 거쳐온 공간들에 대한 사유에 절로 잠기고 말았다. 누구의 인생도 닮아 있는 구석이 있고 만날 대목이 있는 법이니 이러한 유려하고 솔직하고 아름다운 고백들은 절로 아름다운, 때로는 슬픈, 때로는 부끄러운 추억들로 타박타박 걸어들어가게 한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행복이 가능할까. 사는 게 지루하지 않을까. 한자에 약하니 도통 집중이 안 되네. 창밖을 내다본다. 화창한 교정. 나는 청춘을 소진하고 있었다. 늙음으로 가는 길. 그것이 삶임을 그때는 미처 몰랐구나. 이제 곧 나는 마흔의 나를 대면하게 될 것인데. 윤대녕을 이 때에서야 만나게 될 터인데. 그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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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09-24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윤대녕 작가와 잘못 만났어서 그런지 그 이후로 그분의 책이 나와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네요,,
블랑카님 글 읽으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핑크 공주는 여전히 핑크 좋아해요??ㅎㅎㅎ 저희 막내는 많이 변했어요,,,쬐끔 귀여운 구석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ㅋ

blanca 2014-09-26 00:03   좋아요 0 | URL
아롬님, 핑크 공주는 이제 핑크를 좋아했던 자신을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ㅋㅋ 귀여운 구석이 점점 사라져 가서 슬퍼요. 아기 때 동영상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괜시리 코끝이 찡하더라고요. 내 자신은 시간의 흐름을 잘 실감 못하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흘렀구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