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이라는 작가를 이제서야 알게 됐다. 아쉽게도 유명한 <객주>는 읽어보지 못했다.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줌의 먼지였다. 그러나 민들레 꽃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로 흩어지는 것은 잠깐의 착시였을 뿐, 먼 느낌이 들도록 던진 몇 줌의 먼지는 대부분 우리들 두 사람의 바짓가랑이와 구두 위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해주 최씨였던 어머니는 끼닛거리 마련에 평생을 박해받은 이승에서 처연하게 소멸되고 말았다.

- 김주영 <잘 가요 엄마>p.88

 

 

 

어떤 이야기는 마치 작가가 단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이용하여 픽션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작가를 만나게 된 첫 작품이면서도 내도록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도저히 억지로 그냥 만들어 낼 수 없을 것같은 느낌. 정묘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작가의 가슴에서 나와 손끝으로 영글었다. 소설은 정말이지 아무나 막 되는대로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절로 내려앉는 처절한 문장들. 책장이 쉽게 넘어가도 아쉽고 더디게 넘어가도 아쉽다.

 

구순이 넘은 노모가 자식들과 며느리에게 천덕꾸러기처럼 대우받다 혹은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자초하기도 한 소외에 갇혀 있다 슬프게 사라지는 장면. 그리고 그 어머니와 아들의 곡절 많은 삶의 복기. 소설 중간을 무지르고 바로 '작가의 말'로 가본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로부터 유린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그런 질곡과는 무관심한 채로 일생을 보냈다. 오히려 그 참혹한 공포심을 끌어안고 흡사 아무런 구애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혹은 남의 것이든 끌어안고 살았다. 드디어 어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죽음조차 아무런 불평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곧 함정은 아니란 것을 나에게 가르쳤다.

-작가의 말 중

 

 

어디까지가 작가의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그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 지의 그 모호한 경계쯤에 그의 가엾은 '어머니'는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어머니'는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삶의 뒤안길에 서성인다. 일단 그녀는 그 시대에서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남편의 사랑과 부양을 받을 수 없었다. 성이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평생을 신역으로 끼니를 이어야 했다. 장남은  머리가 영글자 그녀를 떠나버린다. 나이가 들어서는 유명해진 아들의 뒤켠에서 숨을 죽이고 엎드려 지낸다. 그녀의 수명은 길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 염꾼들 앞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져 쪼그라든 그녀의 몸은 마침내 돌아온 아들 앞에서 눈물겹다.

 

대문이나 사립문, 담도 울도 없었던 초라한 집에서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와 배를 곯아야 했던 어린 아들이 새아버지와 의붓아우를 얻게 되며 느꼈던 소외감과 비애는... 새아버지가 나타난 후로 잠들면 따뜻한 어머니 품에서 떨어져 건넌방에 옮겨질 때마다 느꼈던 그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것같은 느낌에 대한 묘사는 이윽고 몰래 나타나 아들을 껴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눈물에 대한 감각으로 더욱 아프다. 아들을 사랑했지만 아들은 어미의 그 사랑을 실감하지도 받아내지도 못한다. 새아버지와 새아우, 믿고 의지했던 사촌누이로 만나야 했던 친누이의 야반도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친구와의 이별, '나'는 설 곳이 없어 떠나고야 말았다. 어린 마음은 오기와 복수심, 치기로 꽁꽁 얼고 만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제 노인이라고 불려도 될 만치 늙어서도 이러한 어린 아이는 한켠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치뜬다. 그러니 그와 어머니와의 이별은 화해와 용서, 사랑으로 감동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는 못한다. 젊은 시절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사내의 모습은 그러니 더욱 비감어리고 공감가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깨닫고 성숙하고 용서하고 감내하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그렇다면 그것은 위장이자 위선이자 거짓말이다.

 

 

 

 

홍어를 떠올리면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먹게 되었던 그 비릿하고 충격적인 맛이 코를 알싸하게 만든다. 정말이지 지독했다. 첫맛이 전부라 착각하며 안심했던 나를 한번에 가격했던 그 암모니아의 잔향. 그 후로 홍어는 나에게 쉽지 않다. 역시 같은 작가의 이야기라는 표징. 떠난 아버지. 어머니와 남은 '나'라는 사내아이. <잘 가요 엄마>와 비슷한 구도의 가족. 설국을 뚫고 하나씩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또 떠낢. 사실 이 소설을 서사의 다이나믹함으로 이해하려 하면 곤란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만큼 눈이 덮어버린 그 풍경 위로 사각 사각 밟고 걸어오고 걸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산문시처럼 눈부시다. 작가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지난한 산고 끝에 새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자로 보인다. 분명 그의 이야기에는 '생명'이 있다. 누가 이 이야기를 펼쳐든들 그의 호흡 앞에서 외면할 수 있을까.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 눈을 뚫고 그해 겨울 눈을 살고 사는 삼례, 집을 나간 아버지가 결국 돌아올 것인지, 어머니는 그 아버지를 맞아줄 것인지, 부엌에서 사라져 버린 홍어는 어떻게 된 것인지, 모든 것에 대한 답 대신 그 질문들을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들의 그 삶을 정직하게 맞아내는 열심에 그저 감탄하게 되어버리는 이야기. '홍어'는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나 쉽지 않고 역시나 끈질긴 잔향이 남는다. 그러니 홍어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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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2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주영 님의 소설을 저는 '신문 연재'로 처음 만났었는데 '81년과 '82년까지는 꼬박 꼬박 읽었던 듯해요.('83년 이후엔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그 분의 소설을 못 읽었죠.) 그 당시 저는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할 때였는데, 하숙생을 많이 치는 하숙집에서는 대개 주요 일간지 서넛 정도는 보는 편이었죠. 아침밥을 먹다가도 연재소설을 읽고, 그때 못 읽으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신문을 찾아서라도 읽곤 했었지요. 그땐 참 모든 전화도 하숙집 여주인을 통하지 않으면 받지도 걸지도 못할 때였죠.

김주영 님의 연재소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깊이와 가슴 깊숙한 곳을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쑤시는 듯한 맛이 있었지요. 이 분의 고향인 청송군 진보면이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마을과 이십 리 남짓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특히 고향 어르신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답니다. 이문열 작가의 고향(영양군 석보면) 또한 김주영 소설가의 고향인 진보와는 지척인데, 두 사람은 거의 동향 사람이라고 할 만한데 작품과 작풍이 다른 게 저로서는 몹시 흥미롭더군요. 아마도 이문열 작가는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일찍 상경하는 바람에 (제 생각으로는) 도시물을 많이 먹은 듯한 반면 김주영 작가는 어렵게 자랐고 안동에서 십여 년 동안 엽연초 생산조합의 주사로 일할 정도로 시골 생활을 오래 한 경험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어요.

blanca 2014-01-28 13:00   좋아요 0 | URL
oren님 댓글 읽으면서 너무 많은 정보를 얻네요. 김주영 작가가 실제로도 어렵게 컸군요. 군데군데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궁핍에 대한 묘사가 가슴을 아프게 해서 아, 이 작가의 성장 과정에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많았겠구나, 하고 짐작만 했어요. oren님의 댓글 속에서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연재 소설을 읽던 청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순오기 2014-01-30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샌드위치 레시피는 페이퍼에 있는 대로 하되, 재료는 그때 그때 냉장고에 있는 게 뭐냐에 따라 달라지죠.^^
감자 삶을 때 소금을 조금 넣으면 되는데, 저는 되도록 싱겁게 먹으려고 소금 안 넣어요.
그래도 식품마다 소금을 함유하고 있으니 요플레만 해도 괜찮았어요.
어제는 아들이 휴가와서 샌드위치 먹고 싶대서,
감자와 요플레는 기본이고 양배추와 사과에 견과류도 넣고 딸기를 듬뿍 얹어 만들었어요!^^

blanca 2014-02-01 09:5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이제 한창 마무리하시고 쉬고 계실까요? 저도 명절 잘 보내고 아기 때문에 짬을 못 내 이제서야 커피 한 잔 하네요. 친절한 레시피 잘 참고해서 맛있는 샌드위치 만들어 볼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