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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종말 - 건강과 질병에 대한 새로운 통찰
데이비드 B. 아구스 지음, 김영설 옮김 / 청림Life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몸이 거기 있음을 느끼게 될 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잠잠하던 그것이 통증을 호소할 때이다. 갑자기 그 '몸'의 호소에 단단히 결박당해 때로 생사를 다툴 때 '질병'은 '존재'를 압도한다. 우리가 행복하게 죽을 수 없고 '죽음' 그 자체에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도 죽음과 질병의 접점에 필연적으로 육체적 고통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한 퇴장은 남가일몽이다. 태어날 때에도 그렇게나 울었듯이 우리는 이 세상과 작별할 때에도 고통에 허덕여야 한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몸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은 불편하다. 부러 더 마음과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들과 그것들에 내재된 결핍으로 이야기 꾸러미를 뭉친다. '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근시안적이고 즉물적이고 경솔한 것 같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질병의 종말'이라는 제목은 경솔해 보인다. 오히려 진지한 내용의 미덕을 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실제로 'The end of illness'라고 붙인 제목의 직역이다. 제목처럼 실제 그가 인류의 모든 질병을 극복하고 기대수명을 한정없이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암전문의이자 연구자인 그가 지향하는 하나의 목표이자 시선이 가 닿는 곳일 뿐이다. 그의 앞에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개별화되고 역동적인 몸의 주인이 된다. 단 하나의 진단, 처치로 대상화되어 버리는 환자의 몸 대신 우리 몸은 주체성을 되찾고 세포 사이의 대화의 장으로 변환된다.
비타민 C 정제를 주문하려고 벼르고 있던 와중이었다. 나의 주문이 나의 몸에 대한 대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비타민은 몸의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바꿈으로써 고유한 항상성 조절을 간섭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기술로 측정할 수 없는 해로운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차라리 이에 기울일 노력을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데 들이라는 이상적인 충고는 우리가 몸과 대화하는 방식이 연극적인 대우로는 마무리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더 많은 정성과 더 많은 시간을 들이라는 얘기다. 간편하게 알약 하나를 삼킴으로써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발상은 아이에게 비타민과 각종 건강식품을 먹이는 것으로 건강 관리와 양육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원했던 내가 믿고 싶었던 허구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복잡하고 유기적이다. 하나의 자극이 하나의 반응을 낳는 것이 아니라 그 정교한 시스템 전체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위협적인 면까지 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처방과 조언이 있다. 그러나 그게 주는 아니다. 그것은 권말 부록 같은 것이다. 몸이 예측성과 규칙성을 사랑한다는 것, 근력 운동의 효과가 기대이상이라는 것, 만성적인 염증이 치명적인 질환의 토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A형 독감도 B형 독감도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의 신체가 사실은 그 독감들이 남긴 상흔으로 혈관의 노후화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절망적 가능성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것. (저자가 독감예방접종을 강력 권고하는데 아이에게 A형 독감 예방 접종을 했던 그 해에 B형이 유행했고, 또 그 반대였던 상황들의 악재에 보기좋게 걸려 들었던 경험으로는 이 대목은 크게 신뢰가 안 간다) 이 조언들은 간명하고 유용하다.
이 책은 서구의 의학자가 의학의 위업과 첨단 기술의 조합으로 인한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것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우리의 몸,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찰, 오늘과 내일을 영위하는 방식에 대한 반성적이고 진지한 성찰 들이 책 자체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진중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건강에 관련된 남발되는 조언 들에 질식 상태에 있는 우리들에게 암전문의가 삶은 마라톤일 수 있지만 우리는 마치 체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달려야 한다고, 체스는 한 번에 하나씩만 움직이며 앞으로 나갈수록 게임이 바뀐다고 조언하는 데에야 절로 고개가 숙어지지 않을 수 없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언제나 조금 불편하고 기대이상으로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