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현실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픽션을 더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 이가 누구인지 도저히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는 이미 현실 안에 가두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하고 또 그 핏줄에 왕위를 물려 주고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 영조와 우리는 고작 삼백 년도 떨어져 있지 않다. 작품 전체에서 비누 냄새의 환영을 불러 일으켰던 <젊은 느티나무>의 강신재 작가가 <혜경궁 홍씨>를 집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혈질이면서도 솔직하고 매력적인 사도세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내었다. 상당 부분 픽션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영정조 시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는 깜찍한 이재은이 혜경궁 홍씨의 아역을 연기해 내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모은 시대사극 <하늘아, 하늘아>가 한창이었다. 뒤이어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도 더듬더듬 읽게 되었다. 남편을 잃고 친정 식구들마저 아들의 손에 의해 간접적으로 몰살당하다시피 하게 된 구중궁궐 속 여인의 하소연이 눈물겨웠다. 게다가 아들마저 앞세우게 되는 그녀의 삶을 머리로보다는 감정적으로 동정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남편의 죽음에 있어 혜경궁 홍씨와 그녀의 친정 일가가 행사한 영향력이 거의 주도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약간 다른 각도에서 그녀를 다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당파싸움의 희생양이 되었든 정말 심한 정신병력 때문에 도저히 통치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든 사도세자의 최후는 아들 정조에게도 오늘날 남은 우리들에게도 심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세손이 대리청정한 지 약3개월 후인 영조 52년 3월 초, 영조의 병환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영조도 세월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세손이 영조 옆에 붙어서 감귤차와 계귤차를 올렸으나 효과가 없었다. 맥도가 가망이 없어졌으니 마지막으로 좁쌀 미음을 쓰자는 의관의 말에 세손이 미음을 떠서 올렸으나 영조는 이를 받아먹지 못했다. 종말이 다가오노 것이다.  
 도승지이자 약방 부제조인 서유린이 세손에게 청했다.
"궁성을 호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손은 울면서 답하지 않았다. 서유린은 어탑 앞에 나아가 영조에게 유교를 쓸 것을 청했다.
"전교한다. 대보(옥쇄)를 왕세손에게 전하라."
드디어 기나긴 장정이 끝이 났다. 비극으로 점철된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중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죽음을 무력하게 목도하며 울먹여야 했던 소년의 시대가 개막했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이 선포는 아버지를 죽게 했던 반대 당파 세력들을 축출하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하여 내뱉은 경고가 아니였다. 정조가 위대해지기 시작한 지점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노론을 껴안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에겐 정치가 목적이 아니라 백성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살게 하는 통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군주였다. 

 

 

 

 

 

 

 

중추의 권력을 소유한 자가 귀를 여는 것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일단 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나' 아닌 '너'는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것을 뛰어넘은 이들은 아주 드물고 그래서 역사에 기록된다. 정조가 적서 차별을 철폐하고 심지어 노비 해방의 꿈을 꾸고  당시의 글좀 읽었다는 고루한 선비들이 더없이 위험하다고 경기를 일으켰던 서학에까지 관용을 베풀고 귀를 열었던 것은 어쩌면 언어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참극 속에서 이룬 성장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그 비극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그의 삶은 통치자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참으로 경탄스러운 것이다. 고난에 함몰되는 것은 쉬운 일이고 뛰어넘는 것은 결단과 양보가 필요한 일이다.  

 

정조가 설계하려 했던 미래와 미완의 꿈을 훔쳐 보고 싶다면 이 책이 제격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제대로 추모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묘소를 옮기는 사업을 계획한 것이 화성 건설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화성은 정조가 자신의 정치적 배후 도시로 선진농법을 도입하고 각종 상업 활동을 장려하고 군사도시로서의 체계를 갖추며 제2의 수도로까지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정조는 상왕이 되어 화성에 내려와 자신이 노후를 보낼 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이 1997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그 성곽 안에 녹아있는 정조의 열망, 꿈, 희망, 백성들의 땀, 노고 들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신도시를 건설하기까지 숙고를 거듭하고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백성들에게 신속하고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배려한 점, 이름이 없었던 노동자들에게 이름 하나 하나를 다시 호명하여 기록하고 그들의 땀에 걸맞는 대우를 해 주려 노력했던 모습 등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조의 이루어지지 못한 꿈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우리 앞에 떨어진다. 이 시대를 보고 정조는 과연 어떤 얘기를 할까. 

   
  그러나 백성이 마음에 걸리고 조정이 염려되어 밤마다 침상을 맴도느라 날마다 늙고 지쳐가니 그 괴로움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정조어찰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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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1-06-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원, 정약용에 관련된 책들을 보다가, <정조>까지 갔답니다. 어쩌다 조선후기로 들어와버려서,^^ 도서목록에 있는 것들 좀 정리되면,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참, 저는 박시백의 만화로도 즐겨본다지요.

blanca 2011-06-08 21:28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안 그래도 박시백을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답니다. <순조실록>이 어떨까 싶어서요. 저는 채제공에 관련된 책을 찾고 있는데 없어서 좌절하는 중이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9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시백 씨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덕일 씨 해석을 비판했죠.

이덕일 씨의 사료해석의 오류 등은 여러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만 특히 정병설 씨가 본격적으로 조목조목 파고 들었죠.<사도세자의 고백>을 집중 비판하고 있습니다.역사비평 2011년 봄호에 논문으로 나와있는데 인터넷에도 대강은 볼 수 있으니 관심있으시면 '정병설'을 검색해보세요.

blanca 2011-06-09 18:1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이덕일을 비판하는 학계 의견이 많더라고요. 사도세자 관련 부분은 좀 과도하게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은 받았습니다. 저는 사도세자에게 통제 불가능한 정신병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부분도 그렇고요. <영원한 제국>의 이인화도 남인 계열 후손이라 그런 소설을 썼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더라구요. 이 부분은 제가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예, 읽어 보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9 23:16   좋아요 0 | URL
<영원한 제국> 부록으로 실린 이문열 글을 보면 남인 후손들의 시각을 알 수 있죠.또다른 부록인 도날드 베이커의 글도 재밌고요.

요즘은 강이천이나 이옥 등 정조의 탄압을 받은 인물에 대한 책도 나오고 하니까 기존의 정조찬양 흐름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