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를 미치게 할 때 -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아이 마음과 소통하는 법
에다 레샨 지음, 김인숙 옮김 / 푸른육아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사람을 미치게 할 때.  

웃긴 게 사람상대하는 일을 하면서도 저 진상이 참 싫구나, 정도의 감흥이었지, 그 사람이 나를 미치게 한다는 과대 망상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사실 사람이 그것도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게 현존에 발을 담근 제대로 된 인식일 리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 즉 내가 너무 괴로워서 내가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서 미치고 싶다는 표현과 다름아닌 것이 아닐까. 

그 런 데 두 돌 언저리의 나의 딸이 드디어 사람을 미치게 하기 시작했다. 정말이다. 악을 쓰며 아무 이유없이 삼십 분을 방바닥을 마구 굴러당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구나. 참을성 많고 감정 컨트롤 잘한다고 말도 안되는 자랑을 마음 속에 품었던 내 자신을 이제 다시 검토해 볼 때가 왔구나. 나는 다 혈 질이었던 것인가? 

그 때 내 맘을 그대로 표현한 이 책 제목이 왔다. 의역이 아니었다. 직역이었다. 제목이 다분히 선정적이고 상업적으로 보이지만 이 책 내가 읽어 본 육아서 중 가장 통찰력 있고 섬세하며 현실적이고 실효성이 있다. 일단 작가가 한없이 너그러운 엄마상을 강요하지 않고 감기 걸린 아들 둘을 일주일 동안 집에 가둬놓은 상태에서 너그러운 엄마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외치는 부분은 정말 엄마가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연관된 상황에서는 늘 통찰력을 갖고 섬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인내'다. 자신의 성장에 대해 나름의 시각이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아이가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다. (89쪽)  

 
   
싸이에 육아가 행복해 죽겠다고 올려대는 얄미운 친구들은 나에게 육아의 핵심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행복은 고통어린 인내의 저 끝 지점에 있었다. 육아의 핵심은 인내다. 정말 극렬하게 동감한다.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무관심한 것과는 다르다. 아이의 성장에 관여하지 말고 물러나 있으라는 뜻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기다림이란 성장에 꼭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철학적으로 인식하라는 의미다. 또 아이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단계에 머물러 있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 하지 않는 태도다.(90쪽) 

 
   
육아가 힘든 것은 이 상황이 지속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밤에 여섯 번씩 깨서 울어댈 것이라고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한 공포 영화가 있을까? 
   
 

어리고 약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하고, 나와 아이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격려가 필요한지 알았더라면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훨씬 편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 내 딸은 물론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어린 시절의 나까지도 고통에서 벗어나 안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197쪽) 

 
   
이 문구 만으로 나는 충분히 위로를 받았다. 감사.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어야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확신이 설 때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329쪽) 

 
   
 맞아.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을 테니까.
   
 

어린아이의 성에 대해 가르칠 때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까지 가르쳐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자위행위를 아주 명확하게 정의해 주었다. 정상적이고 즐거운 일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이다.(353쪽) 

 
   
   
 

어떤 관계에서든 중요한 것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강요나 선입견 없이 자연스럽게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374쪽) 

 
   
 이 책은 단순한 육아서가 아니다. 이런 대목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부모란 어머니날을 맞아 꽃과 근사한 카드를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사랑만을 외치는 달콤한 배경 음악 같은 것도 아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부모 노릇이다. 부모 자식의 관계야말로 신의,책임,헌신 같은 말들이 완벽하게 통하는 관계이며 그런 관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곧 진정한 기쁨이다.(413쪽)

 
   
육아는 정말 힘들지만 한 번 걸어가 볼 만한 가치 있는 길이라는 격려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 준 사람은 바로 이 책의 저자 에다 르샨이다. 엄마는 무조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으로 아이가 이뻐 죽겠다고 비명을 질러대며 살아야 자애롭고 모성애 어린 정말 엄마라는 작금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한 나 같은 엄마에게 괜한 죄책감을 조장하고 있다. 애가 항상 너무 이뻐서 감격어린 것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전두엽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해 자제와 절제를 모르는 그 어린 생명체를 하루 종일 끼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고 놀이까지 동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모랄까 참으로 지치고 단조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견디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는 경이로움이다. 내가 생명 하나를 탄생시켜 하나의 어른으로 키워내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각성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갑자기 사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내 앞의 작은 생명은 하나의 기적의 표본으로 보인다. 이 책이 여느 육아서와 다른 것은 아이 입장도 중요하지만 양육자로서의 엄마의 어린 시절의 결핍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아이를 돌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가는 과정. 아픔을 치료해 가는 과정. 그럼으로써 나는 과거를 다시 되살려내 불가능할 것만 보이는 바로잡는 과정을 시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육아의 기적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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