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하릴없이 인터넷을 쏘다니다, 사실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평론에 인용된 체호프의 단편집을 어느 출판사 것으로 구입하냐 열심히 고민하다, 생각보다 재미없다는 평을 읽다가 정말 재미있는 얘기와 마주쳤다. 

바로 유명한 책들에 등장한 또다른 책들과, 잘나가는 작가가 작품 속 인물을 동원해 추천한 책은 대체로 재미없다는. 

솔직히 여기에 아주 극렬하게 동의한다. 또 이 글에 달린 댓글들이 재미있는게 하루키의 책에 나온 '위대한 개츠비'가 참으로 지겨웠다는 데에 동의하는 글들. 나는 '위대한 개츠비'에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책을 읽지 않을 것같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시절 내부 인트라넷 게시판 죽순이였던, 그러나 글을 올리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리플만 달아대던 내가 영문학과 학생들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하여 올린 글을 읽고 리플에 '생각보다 지루하다던데요'라고 올린 글에 내 기준으로는 악플이 턱하니 붙어 있는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쳇, '위대한 개츠비'가 지루하면 세상 지루하지 않은 책이 없겠네." 이런 내용이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늬앙스로 나의 리플을 비난하는 글이었는데 솔직히 그 어느 리플보다 기분 나빠짐을 느껴, 다시는 그 게시판에 리플도 달지 않았다는 소심한 기억이다. 

아무리 훌륭한 책도 그것이 소설인 바에야 재미 없어 책장 넘기는게 고역이라면, 그 책은 나에게 별로인 것이다. 그게 나의 지적 소양이 부족해 흩어진 지적 단편들을 체계적을 모아 체화하는 기술이 부족해서라거나, 인내심이 부족해 진정한 문학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난한다 해도 나는 재미없는 책은 싫다. 그런 면에서 나는 페터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 너무 힘들게 읽은 책이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마농레스꼬' 같은 책은 겉표지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지금도 내가 왜 그 어린 시절 지루함의 결정체인 '마농레스꼬'를 그리도 고통스럽게 읽느라 방바닥을 굴러다녔을까 후회할 따름.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이 철저히 개인적 취향이라는게 또 재미있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읽고 세상에 이런 훌륭한 작품이 책장 넘어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재미있다는 데에 전율해서 주위에 강추하고 다녔다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으니, 나에게 재미있는 책과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책은 영원히 몇 개를 제외하고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소위 잘나가는 엣지 있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는 데에서 오는 지적 교만에만 기대어 재미없는 책 추천하는 자들 나는 그들을 멀리하련다. 왜냐, 나는 단순하고 흥미를 추구하는 말초신경이 발달한 인간형이라 짧은 인생 재미있는 책들만 읽기에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까.

요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들. 읽지도 않고 검색만 줄창 해대다 언젠가 읽어야 할 숙제처럼 느껴지나 재미없다는 평에 거북 목처럼 갑자기 목을 쑥 넣어버리고 마는. 체호프와 폴오스터와 레이먼드 카버. 잘난척하려고 읽어야 하는지 심히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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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9-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는 정말 재미있구요. 재미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한번 시도해 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 민음사 정도가 무난하지 싶어요.

폴 오스터는 번역이 어려워요. 신경 집중해서 읽어야 하죠. 영어만 된다면, 원서는 정말 쉬이 읽히거든요. 재밌어요.

레이먼드 카버는 개인적으로 별로에요. 원서를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각각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인 행위이죠. 어릴적 읽었던 책과 지금 읽는 책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blanca 2009-09-20 21:36   좋아요 0 | URL
아이구^^ 하이드님 댓글이라니 넘 영광입니다.^^ 체호프 이미 질렀답니다.잘한 거 맞죠? 아,레이먼드 카버는 별로군요. 근데 폴 오스터는 꼭 읽어보려고 생각중이었답니다. '달의 궁전'부터냐, '빵굽는 타자기'부터냐가 좀 고민인데.번역 문제가 외서 읽을 때 제일 걸리는 문제인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경우 훌륭한 번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던 터라 더. 그래도 참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하고 상대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같은 경우 괜히 좋기는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