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9시경 매케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과 함께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함께 왔다. 

불안감에 베란다 문을 열어 보니 세상에. 

시커먼 연기가 정확히 집 베란다 정면 건너편에서 미친듯이 회오리쳐 들어오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집은 남고 건물과 500미터 정도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다. 남고에서 일요일밤 9시 불이 난 것이다.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학교로 투입되고 있었다. 무 서 웠 다. 몇 달 전에는 아랫층에서 큰 불이 나서 전소되어 마치 아파트 속에 흉가가 숨어 들어온 모냥새로 몇 달이 지나더니 이제는 바로 마주보고 있는 남고에서 불이 났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갔다. 저 불이 건너 우리 집 베란다까지 붙으면 나는 어째야 하나. 아. 저 속에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이웃들과 좀 친해둘걸. 외롭고 무섭다! 

역시나 좀 떨어져 있는 단지내 아파트 주민들은 신나게 심지어 놀이터까지 와서 불구경 중이었다. -..- 왜 우리집은 남고와 이렇게 가까이 있나. 마구 원망까지 해대며 시커먼 연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 때 지나가는 생각들. 우리는 왜 평범하게 숨쉬고 걸어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행복해 하지 않나. 정말이다. 예전 일본 작가의 글이 하도 좋아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힘들 때마다 읽곤 했는데 그런 내용이었던 듯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숨쉴 수 있고 두 다리로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고 그것으로 행복하라고.  

인간들은 극히 이기적이라 자신들은 절대 불 타 죽지 않을 것 같고, 신종플루는 남 일이고, 온갖 재난재해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현재 사는 아파트 평수가 불만이고, 시집 잘간 고등학교 동창을 때려주고 싶어하고, 중간등수의 아들 머리를 쥐어 박고 싶어지는 모순을 그러안고 산다.  

순간 철학적인 생각들이 마구 지나가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저 속에 내가 있지 말란 법이 없으며, 또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으리라는 필연성이 있을 린 만무하다. 그럼에 나는 행복한 것이다. 충분히..... 

오늘 아침 고등학교를 왁자하게 채운 녀석들이 와글와글거리는 웃음들이 얼마나 다행이고 예쁜지. 놈들이 좀 시끄럽기는 했지만 참아주기로 했다. 지난 겨울 눈온다고 그 찢어지는 목소리들을 마구 질러대며 눈싸움하며 뒹굴대던 모습도 참 귀여웠지. 나 이러다 변태 아짐 되는 거 아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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