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의심이 많고 '음모'를 좋아한다는 평을 들어왔던 내가 따악 이런 책을 읽고 있으면 다들 어울린다고...... 사실 제목은 선정적이지만 내용은 지극히 역사적인 것들이라 어줍잖게 사화니 붕당 관련 책이라고 괜히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고 있는 구차함이란... 누구나 자기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싶은지도...
이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이덕일 역사서는 그만 읽어야 겠다. 한 사람의 역사관에 함몰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저자에게 너무 빠져서 그의 저작을 모조리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세종대왕에 대한 조금 삐딱한 자세는 괜히 부담스럽다. 물론 다 칭찬하는 와중에 비판적인 1인이 가지는 의미는 크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의견이고 감정의 중심에 있는 독자가 임의적으로 판단할 재량권은 있기에...
이 책 전체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세종대왕의 아들 문종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한 대목을 꼭 기록해 두고 싶었기에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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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의 시와 글씨에 관한 일화가 있다. 문종이 세자시절에 희우정에 나가서 귤 한 쟁반을 집현전에 하사했다. 집현전 학사들이 귤을 하나씩 집어 쟁반이 비었다. 그런데 쟁반 한가운데에 글씨가 쓰여 있었다.(중략) 문종이 해서와 초서의 중간쯤 되는 반초행서로 써 보낸 시였다.
"향나무는 코에만 향기롭고 고기는 입에만 맞으나, 동정귤은 코에도 향기롭고 입에도 다니 내가 가장 사랑하노라."
학문을 좋아하는 집현전 학사들이 이 시를 본떠 베끼려는데 동궁에서 쟁반을 돌려달라고 재촉하여 거둬들이자 쟁반을 부여잡고 손을 떼지 못했다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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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 상상만으로도 귤과육의 상큼한 아련함이 절로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친구에게 추천했는데 베시시 웃으며 "재밌더라..근데 문종 넘 멋있지 않냐?" 해서 그 가슴떨림을 공유했던 경험이 있는데 역시나 여기에서 또 병약하지만 문사에 능하고 신하들을 사랑하는 그의 성군으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어 반갑고 유쾌하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상당 공과가 사실은 세자 섭정에 의한 문종과 대신들의 것이었다는 것도 놀랍다. 단 그는 몸이 심히 병약하여 재위 2년 만에 병사한다.
멋지면서 약간은 유약해 뵈는 왕... 겁나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