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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혜윤의 '그들의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추천된 책이 이 작품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서점에서 몇 번의 조우 끝에 함 읽어봐야 겠다는 막연한 기약의 유효기간도 다 되어 가기에...
이 작가는 분명 올리버 색스의 책들에서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영감과 수학천재들의 소수 사랑을 어느 정도 차용해 온 듯하다. 수학 박사의 기억의 한계는 1시간 20분까지...그리고 나머지의 것들은 메모로 양복에 남게 된다. 가사도우미로 취업한 10살 아들을 둔 미혼모인 '나', 그리고 박사에게서 '루트'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나의 아들, 예순네 살의 전 대학교수인 박사.. 이 셋은 '수'를 매개로 완전한 진실을 향해 동행하게 된다.
이 책에는 빈번하게 수학 개념이 등장한다. 물론 고등학교 정도의 수준인데 절망하고 만다. 기억도 안나고 이해도 안되는 대목들과 조우할 때는 수시로 기억이 단절되는 박사의 뇌질환보다는 나의 치매가 더 걱정된다고나 할까?
여하튼 수와 수학에는 관심없었던 '나'와 아들은 박사와의 교류로 수에 대한 재미있는 관심과 애정과 더불어 독특한 박사와의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 특히 야구는 셋의 공통분모가 된다. 역시 야구 관련 베이스 지식이 없는 나는 헤매게 된다.
그러나 박사가 병세의 악화로 요양원으로 가고도 계속되는 '나'와 아들 '루트'와의 비감어린 교류들...그리고 박사의 죽음...'루트'는 수학교사가 된다..'후두득' 눈물이 떨어진다. 작가는 그 어떤 과장도 청승도 신파도 지양하고 있건만...아니 어쩌면 철저히 무미건조해 지려고 하건만 독자의 무릎을 속절없이 풀리게 하는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 눈물은 어떤 예고도 이유도 없이 그냥 막 떨어지게 된다. 정말 정말 훌륭한 책이다. 줄거리 자체만으로는 단순함에도 문체 자체만으로는 단순하고 건조한 면이 있는데도 결론은 독자의 가슴 속으로 아름다운 흔들림을 쓰윽 밀어넣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