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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숲에서 만난 한국문학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지음, 이태연 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평점 :
프랑스 한국학 연구자가 쓴 한국 소설,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장클로드 드크레센조는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엘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창설한 사람이다. 이런 배경을 듣게 되면 흔히 설정하게 되는 기대치가 있다. 즉 대단히 심오하거나 한국적 정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따르지는 않을 거라는.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그 어느 한국인 평론가 못지않게 한국 소설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넓고 본질에 가닿은 해석이 놀랍다. 한유주, 장강명, 은희경, 김애란, 저자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이승우에 이르기까지. 미처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충분히 그 내용이나 작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스포일러가 되는 것은 지양하면서, 소설과 작가, 그것이 태어난 한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까지 심도 있게 고찰한다.
특히나 이제는 사라져 가는 한국의 포장마차에 대한 아련한 정경에 대한 글은 한 편의 아름다운 단편 같다. 파란 눈의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프랑스인이 포장마차에서 한국어로 이제는 사라질 옛사람들과 밤새 나누는 일회성의 정담의 풍경은 박완서, 김승옥이 그렸던 포장마차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우리보다 더 그리워하고 있다.
한국의 MZ 세대가 느끼는 구조적 불안에 대한 해석 또한 냉철하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한다. 새로운 사회 규칙은 과잉 상태이다.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기준의 부족이 아니라, 기준의 과잉이다. 새 시대는 긍정의 과잉으로 특징 짓는다.
-pp.42
우리가 기준의 과잉으로 억압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의 자리가 없는 사회에서 살기를 강요했다는 고백을 그 사회 속의 기득권인 기성 세대가 과연 과감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빛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애정을 가지고 이국의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그곳에서 거주하고 그곳의 언어로 그곳의 글을 읽고, 그곳의 사람들과 교유하며 진단하는 여러 문제적 지점들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오리엔탈리즘과 대척점에 있을지도 모를 저자의 신중한 제언의 울림이 크다. 그리고 그 진동의 폭은 결국 저자가 한국의 작가와 문학에 가진 진심어린 애정 덕택일 것이다.
저자가 예견적 시각이라 상찬한 우리 작가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누군가 하는 우리의 이야기 덕택에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