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예기치 않게 다른 책을 매개로 해서 온다.
최은영 작가의 솔직한 고객들에 감동 받았다. 인터뷰에서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그녀는 그것을 넘어서 자신의 상처, 한계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내보이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최은영의 인물들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그런 작가의 내려놓기가 했던 역할이 클 것이다. 나의 시선은 반드시 나를 먼저 관통해서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실린, 아버지를 아직 아빠라 부르는 젊은 시인 김연덕의 <일요일 오후의 책 말리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라는 앤 카슨의 <짧은 이야기들>에 대한 서평의 잔상이 길다. 나는 김연덕 시인 덕택에 앤 카슨을 읽게 되었다. 주말, 원로목사가 소장했던 일본의 옛 신학자의 고서적을 마루에 앉아 말리는 아버지의 아들이 쓴 서평이다. 김연덕 시인은 그런 아빠가 비석처럼 도미노처럼 늘어놓은 서적들을 바라보며 앤 카슨의 "아주 작고 명징한 비석들" 같은 짧은 시를 떠올린다.
시 같기도 하고 단상 같기도 한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책의 왼편에는 제목이, 오른편에는 시가 실려 있는데 제목 자체가 시의 주제의 함축이라 시를 다 읽고 나면 한번 더 들여다보며 나의 의미 해석이 맞았나 확인하게 되는 구조다. 고흐도 카미유 클로델도 브리지트 바르도도 나온다. 역사적 사실들과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활용하여 의미를 추출하는 시인의 재능이 경이롭다. 이 중에서 특히 시인이 시로 적은 후기가 가장 좋았다.
후기에 대한 짧은 이야기
후기는 재빨리 피부를 떠나야 한다. 소독용 알코올처럼. 여기 그 예가 하나 있는데, 에밀리 테니슨의 할머니가 자기 결혼식 날인 1765년 5월 20일에 남긴 일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안티고네」를 다 읽었고, 주교와 결혼했다.
자신의 결혼식 날 남긴 짧은 이야기. 생의 후기도 이와 마찬가지여야 할 것 같다. 구구절절 나를 해명하거나 변명할 필요가 뭐 있을까. 태어나 살다 죽었다, 고 이야기하는 말만으로 충분하다. 생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충분히 무거우니까.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들로 우리를 오염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앤 카슨은 '짧은 이야기들'로 충분히 많은 것들을 깊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시인 같다. 말과 글들에는 이미 숨결이 있어서 내뱉는 그 순간부터 날개를 달고 상대에게 가닿는다. 나의 의도는 그 순간 이미 떠나게 된다. 그 언어가 어떻게 해석되고 소화되고 남을지는 이후부터 나의 소관이 아니다. 자식을 낳는 일과도 닮았다.
그 마음을 짐작하는 일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