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제는 하늘나라에 간 서재이웃님 서재에서 이 시를 읽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심상하게 넘어가지 않아 가슴이 저릿했다. 너무 와닿는 시라 시집을 구입했는데 시어 하나하나가 내가 경험했지만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가리키듯 명료한 촌철살인이라 놀라웠다. 시인이 쓰는 시라는 건 이런 거구나, 시를 읽는 일은 이런 거였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시집이었다.


<언젠가는>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중략>

               조은

















해외 작가가 쓴 좋은 단편들도 많지만 번역의 체를 거치지 않은 우리 말로 쓴 우리 이야기를 간절히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정영수 작가는 문예지에서 <내일의 연인들>을 읽었고 잘 읽히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분위기 자체가 그의 개성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고 그것 또한 대단한 강점이라는 것도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알았다. 잘 읽히고 편안한데 얕지 않고 어떤 가식이나 위장이나 과장도 없다. 지극히 안온한데 그건 또 그런 대로 참 좋았다. 모두가 자극적이고 현란하고 기발한 것을 찾아 헤매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살아남다는 건 여전히 안심이 된다. 오랜만에 읽은 신형철의 평론이 다시 빛난다는 느낌을 받아 참 반가웠다. 그는 이야기보다 더 나아가는 평론을 쓸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김연수와 신형철의 청춘의 조합이 나에게는 최고였다.

















김신회의 <심심과 열심>도 담백한 에세이집이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sns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하는 시대에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자기 고백의 전시가 아니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담담하고 편안한데 읽으며 느끼는 어떤 위로와 따뜻함이 강점인 작가인 것 같다. 전업작가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와닿았고 그럼에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작가의 진심과 성실성이 결국 이 작가의 글이 가지는 무게와 깊이를 만들고 있구나 싶었다.
















여지없이 돌아오는 봄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아직 오지 않은 가을이 벌써 걱정되는 건 나도 이제는 내가 영원히 이 봄을 맞이할 수 없고 가을을 보낼 수 없음을 자각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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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3-21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그분을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한번의 댓글로 마치지 못하시던, 마음 여리고 따뜻하셨던 분.
blanca님, 경이로운 봄이라는 말씀에도 울컥합니다.

blanca 2021-03-22 09:53   좋아요 0 | URL
....... 그분이 영원히 그렇게 내 글에 댓글을 달 거라 생각했어요. 이 시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