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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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적인 기록조차 모두의 보편성에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롤랑 바르트에게 어머니의 상실은 한 세계의 절멸처럼 보인다. 끝나지 않는 애도의 곡진함이 인간 존재의 실존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머니를 잃는 일은 애도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근원 자체가 부서지고 그것을 껴안고 나의 필멸로 기어가는 일이다. 예습 같아 괴롭다.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되는, 다가오고 있는 모험이 되는 때가있다. 그런 때 죽음은 운동을 일으키고, 흥미를 자극하고, 긴장감을 깨우고, 행동을 하게 하고, 마비를 일으킨다. 하지만 죽음이 더는 사건이 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죽음은 그저 일정한시간의 연장, 딱딱하고, 뻔하고, 특별한 것도 없고, 지루하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슬픔은 그 어떤 내러티브의 변증법보다도 강력하다. - P60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 그런데 그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 P62

애도: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P90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않는다는 것이다. - P165

그렇게 과거 속으로 내던져져 있는 일은 참으로 잔인하지만, 그일에 서서히 습관이 되면, 당신은 차츰 감지하게 될 겁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아주 부드럽게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 당신에게로 되돌아와서, 그분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 당신의 곁에, 그 어떤 빈곳도 남기지 않고 다시 존재하게 될 거라는 걸 말이죠. 물론 지금은그런 일이 아직 불가능합니다. 침착하세요, 그리고 기다리세요,
당신을 산산조각 내어버리는, 그러면서 당신을 어느 정도 바로설 수 있도록 만드는, 저 수수께끼 같은 힘이 찾아올 때까지. 제가여기서 ‘어느 정도‘라고 말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잃어버린) 좌절감은 전부 사라지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남아 있게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당신도 이제 알게 될 겁니다, 결코 위안 같은 건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날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하지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 다름 아닌 위안이라는 걸."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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