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은 그 책으로 가는 다리가 된다. 그렇다고 그 '어떤 책'이 사소한 것은 아니다. '그 책'은 이제 그 '어떤 책' 없이 떠올릴 수 없게 된다. 

















남의 소설을 읽지 않는  소설가들이 있다. 남의 글을 읽지 않는 작가들처럼 나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쓸 수는 없을지언정 읽지 않는 사람이 자기 아집이나 편견에 갇히지 않기란 쉽지 않다. 어슐러 르 귄의 서평은 그러한 면에서 대단히 놀랍다. 그는 대단한 작가이기에 앞서 성실하고 열정적인 독자다. 그의 서평들은 놀랍다. 전문적인 비평과 독서를 즐기는 평범한 독자 사이의 균형감이 빛난다. 모두가 열광하는 작가나 이야기에 대한 결정적인 취약점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그런 그가 끝까지 사랑하고 경의를 표하는 작가가 있다. 


그는 나와 같은 세대의 소설가 중에서 내가 몰랐던 것, 아니 어쩌면 내가 아는줄 몰랐던 것들을 말해 주는 유일한 소설가다. 내가 아직도 배우게 되는 유일한 소설가다.

-어슐러 K. 르 귄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그 작가는 주제 사라마구다. 르 귄은 그를 극찬한다. 아니, 이 작가를 사랑한다. 그 사랑과 열광이 너무 절절하게 전해져 와서 이 대목을 읽고 사라마구의 그 뭐라도 다시 찾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노벨 문학상을 탄 팔십이 훌쩍 넘은 노작가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그럴 듯하게 윤색하는 대다수의 다른 이들이 걷게 되는 그 길과 거꾸로 걸어간다. <작은 기억들>은 포르투칼 소년의 이야기다. 사고를 치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이웃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짐짓 시치미를 떼는 사춘기 소년의 고백들은 절로 킥킥 웃게 하고 때로 아슬아슬해서 식은땀을 흘리게 하고 애잔해서 자주 눈물 짓게 한다. 그러나 전 생애를 회고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 소년기의 이야기가 위대한 노작가를 더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사라마구가 팔순이 될 때까지의 자신의 전 생애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곱절은 더. 이 익살맞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악동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치밀하게 직조한 작품을 써 낼 작가의 탄생을 예감하게 된다. 


"너였던 소년이 이끄는 대로 내버려두거라."

-[훈계의 책]에서


그가 자랐던 아지냐가 마을의 눈부신 풍광에 대한 찬란한 묘사와 조부모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절창이다. 


아흔 살 인생의 평정심과 한 번도 잃은 적 없는 소녀 시절의 불꽃으로.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단다. 그래서 죽는 것이 너무도 슬프단다.

-주제 사라마구, 작은 기억들


발랑 까진 소년기의 에피소드를 고백하며 "그랬다. 그때는 참으로 순수한 시절이었다."라고 짐짓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르 귄이 왜 유독 이 작가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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