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토니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195
윌라 캐더 지음, 전경자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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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나날들이......가장 먼저 사라진다.-베르길리우스"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의 노래>에서 인용한 제사는 <나의 안토니아>의 정서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응축해 보여주는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중년의 화자가 밀과 옥수수의 거대한 평원으로 둘러싸인 네브래스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전형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자신이 유년 시절 간직한 자연과 생명의 불꽃의 현현 같았던 소녀 안토니아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대지와 자연, 삶의 실재,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형상화했다. 소년의 성장기는 사실 그의 주위에 있었던 유럽의 이민자 처녀들의 그 약동했던 혈기와 적극성, 생의 약동하는 의지를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사실을 다 읽고 나면 알아차리게 된다. 작가 윌라 캐더가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중년 남자 짐 버든의 시선을 통과한 그 인습과 전형성에 위배되는 처녀들의 모습이었다는 깨달음은 극적인 반전 이상이다.


부모를 잃고 조부모가 사는 네브래스카로 향하는 소년의 여정은 보헤미아 이민자 쉬메르다 가족의 그것과 겹친다. 가난하고 영어를 제대로 못 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찌든 그 가족은 소년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일꾼들의 도움을 받으며 마침내 정착하게 되고 소년은 그 집의 딸 안토니아와 대지와 자연에 대한 공통의 정서로 교감하며 서로의 삶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무엇보다 윌라 캐더의 자연의 묘사가 절창이다.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의 향연이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포섭한다. 


그 시절 늦가을의 오후란 모두 같은 것이었건만 나에게 똑같은 오후는 하나도 없었다. 붉은 구릿빛 풀이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햇빛에 젖은 채 우리 시야가 닿는 곳까지 수 킬로미터나 뻗어 있었다. 노란 옥수수밭은 석양 아래에서 붉은 황금빛을 띠었고 높이 쌓아 놓은 건초 더미들은 장밋빛을 발하면서 기다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넓고 넓은 초원 전체가 꺼지지 않으면서 계속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다. 

-p.48~49


안토니아의 아버지 쉬메르다의 죽음은 소년의 성장에 결정적인 전기가 된다. 짐은 안토니아의 아버지가 안토니아와 그를 한데 묶어 놓는 하나의 구심점이 될 것을 예견한 듯 그의 죽음이 그의 존재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대지를 떠나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의 귀향의 길에 짐의 집이 있었다. 


짐은 성장하여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젊은 클레릭 교수를 만나 새로운 사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어느 저녁 대학생이 된 짐이 자신의 하숙집에서 <아이네이스>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간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의 "시신"을 작은 시골 농가인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기를 바란 마음을 표현한 <전원의 노래>를 읽는 대목은 절묘하게 다시 이 책의 제사로 돌아간다. 죽음 앞에서 결국 자신의 미완성의 역작을 바라보며 위대한 로마의 시인이 시의 여신을 거창하고 화려한 곳이 아닌 아버지의 작은 밭으로 데리고 돌아가기를 바랐던 마음은 소설의 화자 짐이 나이가 들어 늙고 살이 찐 안토니아와 그녀의 아이들을 만나는 마지막 대목과 겹친다.


그녀 앞에서 "난 돌아올 거야"라고 했던 약속을 짐은 충실히 지킨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과거를 함께 소유한 어린 시절의 친구와 그 친구가 낳은 아이들에게 귀환한 짐 버든의 궤적은 결국 회귀하는 작은 원이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가장 나중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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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18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처에 나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했어도 역시 짐 버든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고향에서
보낸 추억의 순간들이었나 보네요.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리뷰도
기대해 봅니다.

blanca 2021-01-21 09:44   좋아요 0 | URL
아, 레삭매냐님 이 작가 참 좋아서 <로스트 레이디> 대기 중입니다.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도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