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는 비단 지금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만연하는 시대는 결과적으로 더 참혹했다. 19세기 런던에 실재했던 '그럽 스트리트'는 생계를 위해 통속적인 글을 마구 써냈던 작가들이 모여 살았던 거리였다. 이는 점차 '저급 문학의 대명사'처럼 회자되었다. 조지 기싱의 <뉴 스럽 스트리트>는 이 거리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비참한 청춘들의 사실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직업적 문필가들 재스퍼, 리아든, 비펜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중 리아든은 유일한 기혼자로서 율 가의 에이미라는 자신보다 상류층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지만 점차 직업적인 쇠락의 길을 걸으며 아내와 불화하다 별거하는 지경에 이른다. 어쩌면 문학적 성취의 측면에서 보면 시류에 편승한 평론, 비평글로 약삭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재스퍼와 대중의 호응이 없는 소설에 매달리는 비펜보다는 꽤 호평을 받은 리아든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아든은 점차 직업적 매너리즘과 창작열의 고갈로 인한 빈곤한 현실로 지쳐간다. 그는 가난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지를 처절하게 실감하며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이상주의와 현실의 간극에서 리아든과 비펜이 결국 패배하는 모습은 가슴이 저릿하다.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이거예요." 그가 계속했다. 

"한 명은 '내 삶을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먹고살까?를 고민하죠."


극한의 빈곤은 인간의 내면에서 때로 '괴물'적인 면을 끄집어 낸다. 당장 내일의 밥값과 집세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너그럽기란 어렵다. 이 사실을 알고도 문학적인 이상주의를 포기할 수 없었던 리아든의 이른 죽음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연인을 배신하는 재스퍼의 안온한 결말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작가 조지 기싱의 문단과 문학에 대한 시선이 투영되어 있는 부분이다. 실제 그는 글을 쓰며 사는 삶의 극단적인 경제적 부침을 경험한 작가다. 밥을 굶었고 자신과 적절한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 안정된 가정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은 그를 내도록 괴롭혔고 이러한 자괴감은 여러번 리아든과 재스퍼, 비펜의 발언으로 표현된다. 마치 어처구니 없는 농담처럼 그려진 이 젊은이들의 아픈 결말에는 작가 자신의 이러한 세계에 대한 조소가 반영된 것 같다.  몇 번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시구 "우리는 꿈을 이루는 성분, 우리의 짧디짧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으니..."에서의 '꿈'은 중의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헛된 망상일 수도 있고 절대 현실화될 수 없는 이상주의적인 미래로서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뉴 그럽 스트리트'는 여전히 현존한다. 비단 글을 쓰는 일만이 아니라 현실과 떨어져 꿈을 꾸는 일은 여전히 여러 생존과 관련된 문제와 상충한다. 우리는 여전히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가지는 직업을 선호하고 추구하고 돈이 안 되고 성공 가능성이 없고 시장에 팔리지 않는 일들을 폄하하고 그러한 일들을 추구할까 봐 아이들을 단속한다. 시간의 흐름은 이러한 간극의 골짜기의 외피만을 바꿀 뿐이다. 조지 기싱의 결말의 여운이 유달리 무겁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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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17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나왔군요. 올해 2월에 나왔는데 그놈의 코로나 땜에 묻힌 것 같습니다.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작가가 나오는 건 좀 거시기한데
아예 이렇게 작가가 작가를 다뤄준 소설은 관심이 갑니다.
며칠 전 부촌에 사는 사람들의 부동산 탈법을 다루는 뉴스에 그들의 직업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소설가도 있었다는 게 새삼 놀랍더군요.
소설가는 뭐 부자되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모르긴 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막강 필력을 가진 사람이겠죠?
드라마에서야 작가를 부자로 그려놓기도 하던데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 꽤 멋있고 낭만적이란 느낌도 듭니다.
이 책 읽으면 좀 마음이 무거울 것도 같은데 그래도 언제고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blanca 2020-10-18 09:18   좋아요 1 | URL
이 책 읽는 내내 우울했어요. 등장인물들한테 너무 이입되어 좀 힘들 정도로요. 결말도 너무 우울하고. 무언가 비웃는 것 같고.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는 게 무언가 너무 허무맹랑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그리고 그것이 허구만은 아니라는 게 더 우울해지고요. 조지 기싱의 다른 책도 좀 읽어봐야겠어요.

Jeanne_Hebuterne 2021-01-06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귀자 작가가 2000년도 되기 전, 진짜 돈 없는 사람은 돈없다는 말을 못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 책은 블랑카님 서재에서 처음 보고 바로 주문했어요. 소설이 읽고싶었고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떠올리게 해주는-우리는 시궁창에 있지만 그래도 우리 중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지-그런 이야기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검색을 했거든요. 고마워요.

blanca 2021-01-07 09:09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참 좋아요. 결말이 아이러니인 것 같아서 뭐라 그럴까 더 와닿는 것 같아요. 별을 보는 사람들을 다 지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어떤 조소가 읽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