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작가를 좋아한다. 드물게 문장도 서사의 힘도 두루 갖춘 작가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환기하며 현실에 발붙이는 균형감도 잃지 않는 모습이 좋다. 서정적인데 또 현실에 대한 직시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아주 달변가라는 점. 글을 쓰듯 말도 하는 작가는 처음 본 듯하다. 자신의 소설을 직접 낭독한 오디오북 <복자에게>도 아주 좋다. 



















대상작이 김금희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다. 제목에서 왠지 스피아민트 껌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 제목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아 편집자가 제목을 붙여주는 작가가 있는 반면 김금희 작가는 제목을 먼저 정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제목에 큰 의미를 둔다고. 엄마의 죽음 뒤에 거주지를 옮기려고 결심한 중년의 화자가 우연히 받은 전화로 회상하게 되는 학부 시절의 종가의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함께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층적이다. 화자는 그 종가의 손녀딸과 '기오성'과 묘한 기류가 흐르는 일종의 삼각 관계에 빠지게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이야기다. 노교수의 권위, 보수적인 계층 의식, 또 그것에 대한 소극적인 반발, "시간이 지나 어떤 마음들은 닳아버렸는지도 몰랐다."고 회고하는 마음과 "와 우리 정말 미쳤다!"고 외칠 수 있었던 그 여름의 "페퍼로니에서 왔어."로 묶여 있던 마음에 대한 복기이기도 하다.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었더라도 그 어떤 공통의 청춘의 무모한 미숙한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간이 지나가며 남기는 삶의 궤적에 대한 어떤 담담한 수긍 같은 것이 김금희식으로 아련하게 그려져 있다. 변하고 닳고 사라지지만 그러한 것들이 그려나가는 생의 행로를 돌아볼 때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회한, 그리움이 겹친다. '나 좋은 사람 아닌데요'로 선언하는 작가노트와 불문학자 김화영의 리뷰가 한 세트처럼 되어 있어 완결되는 느낌. 


은희경의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인스타로 비춰진 화려한 뉴요커 친구의 삶에 실제 방문함으로써 느끼는 서로의 간극과 충돌이 어떻게 화해의 지점을 만드는지에 대한 교차 시점의 이야기다. 저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실제로 사는 삶의 불일치를 불편하게 접촉해나감으로써 결국 어린 시절의 소통의 지점을 다시 회복하는 이야기는 사람간의 관계의 그 미묘하게 어긋나고 침범하고 불편을 느끼는 경계를 기민하게 포착해서 드러냄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소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갖게 한다. 


어머니의 이혼으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모녀의 화해의 여행기를 그린 <실버들 천만사>는 진부한 소재 같지만 권여선 특유의 예민한 촉수가 만들어 낸 이야기의 울림이 역시 크다. 언뜻 작가 자신이 고백한 바와 같이 "민틋한" 이야기는 오히려 그래서 더 공감의 지대가 넓다. 언제나 짓밟히고 억압 당하며 가족 사이의 질척한 관계에서 뒤안길로 밀려나는 여성들의 서사를 복원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빛났다. 제목이 아름다워 찾아보니 김소월 시인의 <실버들>이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정한아의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은 다소 서걱거리는 이야기다. 이혼하고 십대 딸을 데리고 친정 아버지의 건물 관리인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 '나'는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노파와 월세가 밀린 아이 엄마를 퇴거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게다가 딸은 아버지가 있는 호주로 가겠다고 조른다. 저마다의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결국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지의 반전 같은 결론은 다소 섬뜩하기도 하고 씁쓸하고 안타깝다. 


여성 작가가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남성들은 대체로 흐릿하거나 모호하거나 폭력적이다. 그것에는 분명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제대로 정의롭게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진실의 중핵이 내재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상작에 남성의 시각이 없다는 것 또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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