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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는 대단히 논쟁적인 작가다. 생전에 천황의 복권과 자위대의 독립국 군대에 걸맞은 지위를 부여하는 헌법 개정을 요구했으며 이 명분을 외치며 공개적으로 할복 자살했다. 노벨 문학상에도 회자되었던 천재적인 작가의 입지와는 별개로 이 부분은 일본 국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촉발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이 작가에게 가지는 불편한 감정과 불온한 인상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평에는 언제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의견이 따라온다. 전쟁을 미화하고 그 전장에서 전사하는 젊은이들의 충절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피해자의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것이라 불편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가지는 그 정묘한 세계의 깊이와 넓이는 경이롭다. 절로 감탄하게 되는 치열한 묘사들의 문장, 그 문장에 설복하지 않는 서사의 강력한 힘,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야기의 힘과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저력이 놀랍다.
아름다우면서 깊이가 있으면서 편협하지 않으며 더불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의지와 숙명의 대결, 정념과 이성의 대립, 역사와 개인의 긴장, 로맨스와 철학, 죽음과 삶의 의미, 이 모든 것이 태피스트리처럼 직조되어 있는 이야기다. 메이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이쇼 시대가 시작된 1912년대를 배경으로 마쓰가에 후작가의 후계자 기요아키가 황실의 정혼자 사토코와 사랑에 빠지며 격랑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당시의 최상류층의 습속을 엿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미시마 유키오는 기요아키의 청춘이 지나는 자기 본위의 시선과 그것의 배경을 균형감 있게 비중을 조절하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감각적인 묘사의 문장들은 더없이 농염하고 농밀하다. 기요아키의 절친한 친구 혼다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친구와는 달리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친구가 뛰어드는 정사의 관찰자이자 조력자가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혼다는 주인공의 주변인이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할 정도로 시종일관 <봄눈>의 사고의 주류적 흐름을 담당한다. 특히 불교적 세계관에 대한 천착은 깊은 복선이 된다. 실제 미시마 유키오가 죽기 전 탈고하여 완결한 '풍요의 바다' 연작 중 <봄눈>은 1권에 해당한다. 죽음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가 따르게 된다고 해서 기대가 크다.
그는 바다의 조수와 기나긴 시간의 이행, 그리고 자신도 머지않아 늙으리라는 생각에 돌연 숨이 막혔다. 노년의 지혜 따위는 이제껏 한 번도 바란 적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직 젊을 때 죽을 수 있을까, 그것도 되도록 괴롭지 않게, 탁자 위해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 둔 화려한 비단 기모노가 어느 틈에 어두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지는 것 같은, 그처럼 우아한 죽음.
-미시마 유키오 <봄눈>
마치 미시마 유키오 본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투영된 듯한 문장이다. 그는 사십대에 자살했다. '우아한 죽음'이라는 대목에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지극한 탐미주의가 스며든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사랑이 해피엔딩일 리가 없다. 그 처연한 결말의 증인으로서 혼다는 홀로 남는다. 혼다는 그 자신은 상처받지 않으며 친구 기요아키를 통해 청춘의 그 무모한 찰나적 열정의 간접 체험자가 된다. 살아남아 시대에 참여하는 그의 이후가 궁금하다. 유한한 인간이 찰나 같은 삶을 통해 억겁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마력에 절로 빨려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