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든이 훌쩍 넘으셨고 몇 년의 폐암 투병 후라 갑작스런 죽음은 아니었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먼저 본가에 내려간 부모님 연락으로 할머니의 시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할머니였다. 나에겐 죽은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고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할머니와 유대가 긴밀했지만  슬픔으로 오열하지도 않았다. 그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다가왔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시간이 지나서야 오히려 점점 더 실감이 왔고 상실감은 천천히 스며들어 오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 물러날 기미를 안 보였다.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 병원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명되는 죽음 대신 딸의 집에서 죽음을 맞고 자식들과 손주들의 마지막 촉감을 간직한 채 떠난 할머니의 죽음이 전적으로 좋았다고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솔직히 그 대목에도 확신은 없다. 죽음은 언제나 두렵고 슬프다. 죽음을 앞두고도 죽음을 이야기하는 건 왠지 불경스럽고 부담스럽다. 이제 우리는 죽음의 과정에서 소외된다.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상조 업체가 있고 병원 장례식장과 연계된 서비스가 매뉴얼화되어 더이상 유족들이 시신을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하거나 그 번거로운 절차에 직접 참여할 필요가 없다. 이제 손주가 할머니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다.

















솔직히 이십 대 여자 장의사가 죽음을 가볍게 흥미롭게 다룬 책이라 여겼다. 이십 대가 바라보는 죽음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지평선은 머나멀고 생의 부박함은 와닿을 리 없는 연령대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쓴 죽음에 관련한 책들 못지않게 이 젊은 여성이 실제 시신들의 화장 과정에 참여하는 이야기는 깊은 통찰력과 예리한 식견을 보여준다. 그녀가 경험하는 죽음은 대단히 실제적이다. 그녀는 시신을 나르고 실제 화장장에서 태워 그 유골을 수습한다. 


사업으로서 장의업은 일정 유형의 '존엄성'을 팔아서 발전했다. 가족들에게 존엄성이란 잘 조율된 마지막 순간, 잘 매만져진 시신으로 완성된 순간을 누리는 것이다. 장례를 주도하는 사람은 무대 감독처럼 그날 저녁에 있을 전시 행사를 책임진다. 이 쇼의 스타는 시신이며, 감독은 제4의 벽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관객이 시신과 소통하다가 환상이 깨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 이 중세역사를 전공한 유쾌한 아가씨는 성인들을 태운 잔열로 아기들을 "해치운다" 때로는 골든게이트에서 투신한 과학자와 노숙자를 화장하며 "당신의 재와 나의 재는 같고, 남는 것은 1.8~3.2킬로그램의 회색 재와 뼈뿐 임을 절실히 실감한다.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함을 그녀 만큼 체감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물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개별화하고픈 열망은 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평등하지만 각자의 의미와 개별화를 가진 저마다의 죽음을 가질 자격이 있음을 그녀는 꿰뚫는다. 모든 죽음을 간접적인 것으로 나쁜 것으로 은폐하는 현대 사회에서 죽음을 공론화하고 드러내지 않는한 물론 이러한 개별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자신의 죽음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대도 그건 결코 이른 일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는 아프다. 나는 아무리 죽음에 관하여 읽고 의식해도 여전히 그 순간에 숨이 막힌다. 그래도 이러한 죽음이라면 견딜 만한 것이 될 것 같다.


그렇다. 노인은 숨을 거두었다. 사지 하나 꿈쩍하지 않은 채 마지막 숨을 똑바로 내쉬었다. 그로써 넓디넓은 시골에 또 하나 더해진 입김, 마치 숨어서 동정만 살피가 점잖게 사라지는 짐승처럼 이웃을 귀찮게 하지도 않고 혼자 조용히 마무리했다. 

-에밀 졸라 <농부> 중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anne_Hebuterne 2020-05-23 0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 책 표지에서부터 저도 좀 가볍게 쓰인 손쉬운 책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블랑카님 리뷰를 보니 제가 오해했군요! 저는 요즘 통증과 죽음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게 좀 껄쩍지근하고 무섭기도 했고요. 정확히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천차만별인것 같아요. 저자는 죽음의 결과물을 다루었구나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고 추측해 봅니다.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겠구나 싶어요^^

blanca 2020-05-23 19:34   좋아요 0 | URL
아, 쟌느님. 오랜만이에요. 저 사실 이것 그냥 그런 책인줄 알고 구태여 안 읽으려다 읽게 되었는데 아,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대단히 솔직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재미도 있고 후속작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