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신할 수 있을까? 수많은 갑론을박이 있어왔다.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마존만 봐도 거의 실물의 책에 가깝게 구현했다는 평을 듣고 심지어 절판된 종이책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킨들조차 종이책 시장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실시간으로 클릭 한번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고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심지어 물속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이북이 있음에도 무겁고 번거로운 종이책이 여전히 매대에 놓여있는 이유가 뭘까.


킨들과 카르타가 있다. 원서야 배송료나 배송 기간을 생각하면 킨들이 비교우위다. 킨들은 새로운 세대를 계속 시도하며 종이책의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분석해 종이책과 전자책의 접점의 지대에서 완벽체에 가깝게 구현해 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다. 터치감도 시각의 피로도 개선도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설명하기 힘든 이물감, 실재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 느낌은 여전하다. 마음대로 줄치고 긋고 메모할 수 없다. 물론 하이라이트, 메모 기능이 있지만 한 박자씩 미끄러진다. 내가 읽은 책은 전자책장에 있지만 정말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이 없다. 책의 실물이 없이 활자는 내려앉지 않는다. 


거의 몇 개월만이었을까. 한참만에 꺼낸 카르타는 'NO POWER'라며 울어댄다. 아무리 충전해도 요지부동이다. 인터넷에서 온갖 노하우를 섭렵하여 실험해본다. 재부팅을 해보려 끝이 뾰족한 드라이버로 미친듯이 리셋 버튼을 뚫어버릴 태세로 찔러도 보고 아예 그 상태에서 충전을 해서 효과를 봤다는 사례에 드라이버를 고정시키고 충전도 해보다 무응답에 던져버렸다.


며칠의 시간이 흐른 뒤 책장에 앉은 먼지를 보니 나는 여전히 책의 실물을 줄여야겠기에 다시 도전한다. 드라이버로 이미 만신창이가 됐을 리셋 버튼을 강박적으로 찔러댄다. 여전히 부팅조차 안 된다. 마음을 비우고 서비스 센터에 보내야 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상한 오기가 발동해 아예 셀프로 보드를 갈아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려는 찰나 다시 검색을 해보니 충전 케이블을 교체해 보라는 조언에 솔깃한다. 다시 찔러대기 시작하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읽었던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의 표지가 반갑게 나타난다. 오기로 고,쳤,다.


와, 어쩔 수 없이 오늘 주문하려 했던 책들은 조금 참고 전자책을 주문해야 하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실물의 책들을 영접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고장나면 꺼지면 읽을 수 없는 전자책들에 대한 비호감은 여전하지만 책을 이고 지고 살지 않으려면 전자책과 친해져야 한다. 이게 사실은 다 상호대차까지 신청해서 한참 걸어 빌려온 에밀 졸라의 <인간짐승>의 너무나 낡은 책 상태, 불친절한 소설 도입부 때문이다. 에밀 졸라로 실패해 본 경험은 없는데 도저히 다 못 읽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에밀 졸라가 여성을 묘사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끌어들이는 방식이 거슬린다. 그 시대상을 핍진성 있게 드러낸 것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작가가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시선이 때로 필요 이상으로 거칠고 폭력적이다. 물론 편견이나 의도적 무시, 성적 상품화가 에밀 졸라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에밀 졸라는 비겁하지 않은 작가이지만 섬뜩한 면이 있다. 여성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가 노출될 때가 있다. 너무 잘 알아서일까, 그는 절망을 서슴지 않고 나는 그 어두움이 때로 참 싫다.


















그래서 빌려온 책을 읽지 않게 됨으로써 새로운 책을 준비해야 하고. 읽고 싶은 책들은 대기 상태이고. 다 살 수는 없고. 그런 상태다. 이북 리더기를 자가 수리했으니 전자책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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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1-19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타ㅠㅠ 읽지도 않으면서 생각날 때마다 충전만 해놓는 상태-_- 왜 샀나 모르겠어요 이 욕심ㅠㅠ 아무리 애써봐도 전자책과 친해질수는 없겠는데 이미 한참 과포화상태인 책장을 보면 한숨만=_=;;;

blanca 2020-01-19 16:29   좋아요 0 | URL
달밤님, 그래도 잘 관리하시네요. 저는 아예 방치하다 아예 못 쓰는 줄 알았답니다. 전자책보다 실물책이 훠얼씬 좋은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무리 목록이 있다손 치더라도 딱 어떤 페이지을 찾아 읽는 그 느낌도 없고, 되팔 수도 없고. 저는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으려 하는데 전자책으로 읽어버린 책이 너무 좋은 경우 초난감입니다. 여하튼 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좀 덜해지면 좋은데 그게 어려우니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