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둡다. 밤의 첫 커브가 아닌 마지막 커브, 나의 시간이다. 곧 이 필연적인 어둠에서 빛이 솟을 것이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정말일까? 그렇다면 위로가 되는 말이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는 서문을 쓴 메리 올리버의 우려는 시의적절했다. 이 엄정한 산문은 그 개다움을 잃지 않으며 적절하게 깨끗해지는 그 지점을 적절히 포착하고 있으니까. 메리 올리버만이 쓸 수 있는, 메리 올리버다운 글은 남용하지도 지나치게 저어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세상과 자연과 작가에 대한 순정한 표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전범이다. "예술은 비범함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메리 올리버를 세상에 순응시키기 위한, 평범한 세계 안에 안착하기 위한 그 세속적 교육의 가치 또한 속단하지 않는다. 그게 실패했다 할지라도 그 실패 그 자체와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생래적 반항아의 영원에 대한 갈구 또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아 목소리를 낸다. 시인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예민한 촉수와 그것이 안으로 향했을 때 가다듬을 스스로의 정화된 언어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노력과 평범한 생활의 희생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저 노력한다고 해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_메리 올리버 <긴 호흡>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자주 마음이 찢어진다. 물론 그 경도와 그 강도와 그 지속 시간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이십 대의 찢어짐은 전율이었다. 일상이 불가능했다. 삼십 대에는 여전히 흔들렸다. 마흔 이후에는 그 찢어짐이 잦아들 것임을 알아 덜 아프다.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조언은 생경하다. 하지만 나의 것으로 가지고 간다.


돈은 우리 문화에서 힘과 같다. 결국 힘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돈도 별 의미가 없다.

_메리 올리버 < 긴 호흡>


메리 올리버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초월하는 초탈하는 법을 알고 넌지시 일러준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환기는 놀랍다. 


습지의 시인은 자연이 가지는 그 광대한 힘에 기꺼이 굴복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현대 문명의 믿음은 공허하다. 주어진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가지만 생에 집착하여 죽음에 맞서지 않는 중용의 지혜를 안다. 


그리고 내가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_메리 올리버 <긴 호흡>


이거다. 사실 여러번 내 삶 앞에서 도망가버리는 꿈을 꿨다.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에는 내 삶을 나의 것이라 외치고 정작 책임져야 할 때는 회피하고 싶었던 모순의 지점을 들킨다. 내가 원하는 걸 하려면 내 삶에 대한 책임도 한데 그러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기꺼이 그러한 삶의 종결을 받아들여야 한다. 


"학생들의 시간 든 서류철을 들고 <중략> 빛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메리 올리버를 상상해 본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의 그러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내 삶에 대한 책임과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을 그녀의 언어로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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