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책, 더 사랑할 작가가 또 나타나니 살아볼 만한 일이다. 지금 읽는 책보다 더 근사한 책을 나이 들어서도 만날 수 있다는 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출간 순서는 이와 반대지만 사실 서사적 흐름은 <이 소년의 삶> 이후에 <올드 스쿨>로 봐야 한다. 작가 토바이어스 울프가 서부의 우라늄 채굴 광풍을 좇아 어머니와 플로리다에서 유타주로 이주하며 시작하는 이 소년의 삶은 계부들과의 불안정한 동거, 잦은 이동 등으로 끊임없이 유동한다. 의붓아버지 드와이트의 가족과 결합하게 되면서는 집에서 육십키로도 더 떨어진 '콘크리트 고등학교'에 다니며 본격적인 비행 청소년의 길을 걷는다. 가슴에는 보이스카우트 배지를 달고 뒤로는 물건을 훔치고 기물을 파손하는 '소년의 삶'은 동명의 보이스카우트 교본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토바이어스 울프의 자전적 이야기는 그가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소년의 정체성을 스스로 발명하고 심지어 그것을 위장하는 도발 속에 숨어 있는 여리고 상처받은 사랑을 갈구하는 진짜 소년의 처절하리만치 아픈 모습을 엿보는 일이다. 소년은 대단히 위험해보인다.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건 소년의 진심을 믿어주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소수의 어른들 덕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녀님, 드러그스토어의 여주인, 친구의 아버지는 마냥 미워하고 불신하고 비난할 수 있는 이 소년을 포기하지 않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싱글맘이었던 소년의 어머니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소년을 최악의 모습으로 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았다. 소년은 불온한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상류 사회를 향한, 사립학교 소년들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었다. 마침내 그러한 삶을 위한 자신의 페르소나 또한 위장해내는 모습은 기함할 노릇이지만 결국 우리가 오늘날의 위대한 토바이어스 울프를 만나게 되는 직접적 계기이기도 하다. 


애송이일 때, 아직 반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꿈이 옳으며, 세상은 우리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그리고 추락하고 죽는 건 겁쟁이들 몫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여태껏 태어난 모든 사람 중에서 오직 우리 자신만이, 영원히 애송이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특별히 받았다는 천진하고도 기괴한 확신신을 품고 산다.

-토바이어스 울프 <이 소년의 삶>


<올드 스쿨>에서는 이 소년이 드디어 바라마지 않던 동부의 사립학교에서의 소년의 삶이 펼쳐진다. 진창에서의 소년의 삶은 급격한 반전을 겪어 드디어 손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만의 리그로 도약한다. 토바이어스 울프의 삶의 변전은 놀라울 정도의 진폭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허무맹랑한 소년의 개과천선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행하는 연극적 자아에 기반해 있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연극의 전개의 향방은 마침내 이 두 작품을 내어놓는 스케일로까지 확장되니 경이로울 정도다. 


소년의 꿈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았다. 그 한계에 속박되지 않았다. 그의 비행의 결말은 비참한 자들의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박탈하는 지경으로까지 치달았기에 오히려 방향을 틀 수 있었다. 소년은 자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어른의 잔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그들의 눈빛으로 절감한다. 그 정도로까지 추락할 수는 없었다. 그 다음 그가 나아갈 곳은 그가 걸어온 길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었다. 작가의 고백은 뼈아픈 성찰에 기반한 것이기에 더 울림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짓궂은 소년을 끝내 미워할 수 없게 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묻어버리고 싶은 우리의 그 치기어린 청춘의 모습 또한 있어 더욱 그렇다. 맹목적인 믿음, 여기와 저기의 끝없는 간극,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회한. 잊어버렸던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이 소년의 시선을 통해 가차없이 돌아와 우리 눈앞에 당도해 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거기에 그렇게 천덕꾸러기 애송이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때로 그 애송이는 튀어나온다. 성장은 때로 착시인 것 같다. 우리는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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