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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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차가운 별이다. 그 심장은 얼음 가시이다."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배경은 1933년 2월, 독일의 슈프레 강가 국회 의장 궁전이다. 스물네 명의 그들. 


그들의 이름은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켄이다. 우리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을 알고 있다. 심지어 매우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 사이에, 우리 속에 그렇게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자동차, 세탁기, 세제, 라디오 시계, 화재 보험, 그리고 건전지의 이름이다. 그들은 사물의 형태로 도처에 존재한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p.26


심지어 구천 킬로도 더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까지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들은 나치에 부역했다. 이 날 대기업 총수들의 비밀 회동에 히틀러와 괴링이 참석하고 현장에서 나치를 위한 모금 협작이 이루어진다. 이 풍경이 그저 요약된 역사석 사실로 기술될 때 그것은 죽은 과거가 된다. 뉘른베르크의 법정이 명쾌한 청산의 마침표는 아니다. 저자 에리크 뷔야르의 역사 다시 쓰기는 이 어처구니없는 대참사의 촉발과 그 허구를 현실의 우리 눈앞에 재연함으로써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생각보다 더 취약하고 허무맹랑하고 빈약한 폭력이다. 문제는 그것에 철저히 수많은 사람들이 기만당했고 놀아나서 서로를 파멸시켰다는 것이다. 연대별 나치의 만행을 줄줄 외는 것으로는 결코 그들의 편에 가담한 수많은 침묵한 자들이 결과적으로 빚어낸 참사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승승장구하는 심지어 마치 사회 공헌 역할을 수행하는 듯 기업 윤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의 역사를 일거에 묻어버리는 작태에서 우리는 다시 비윤리적 폭력의 씨앗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리크 뷔야르의 서사는 그 지점을 예리하게 조준한다. 


나치가 오스트리아에 입성하며 남긴 탱크 전격전의 묘사도 놀랍다. 나치스가 자랑했던 판처 탱크는 사실 허술한 깡통이었다. 절대 다수가 고장나 국경을 넘지 못하고 멈춘 것을 억지로 끌어다 진군시키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위용도 당당한 소위 전격전과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환영 인사 필름이다. 자신들의 나라가 병합되는 현장에서 소녀들은 꽃을 흔들며 히틀러에게 열광한다. 심지어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히틀러의 도착이 늦어지자 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소름끼치게 괴이한 굴복의 풍경이다. 그들 사이에서 어두운 기운을 감지하고 많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자살한 기록은 주류의 진실이 아니므로 회자되지 않는다. 역사는 이렇게 왜곡되어 남는다. 


베를린과 빈 사이에 벌어진 영국 정보국에 도청된 화기애애한 대화만 해도 그렇다. 괴링은 그것이 도청되어 역사적 기록이 될 것임을 의식했다. 오스트리아의 침략은 아름다운 날씨에 이루어진 총통의 귀향으로 가공된다.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그 녹음을 들은 괴링은 미친듯이 웃는다. 과장된 자신의 연기의 완전무결함에 대하여 조소하며. 그것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을 조롱하며. 괴링은 재판관들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날의 비밀>은 이렇게 얄팍한 사기와 허풍과 기만의 공모였다. 그러한 것들로 세계사가 흔들렸다는 이 가혹한 진실 앞에서 아연 말을 잃게 된다. 선동과 협박의 정치에서 정작 희생되는 것은 대다수의 무고한 국민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폭력을 용인하고 심지어 조장하기까지 한 기업가들이 여전히 승승장구하며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며 만들어 내는 일상의 소비재들의 브랜드를 여전히 친근하게 인식하고 사용한다. 이 이야기는 일본과의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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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12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들의 취합
이라...

blanca 2019-08-13 10:42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말씀 듣고 보니 그런 면이 있네요. 공쿠르상은 저는 픽션만 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역사적 사실들을 재구성해도 받을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