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는 뇌 - 디지털 시대, 정보와 선택 과부하로 뒤엉킨 머릿속과 일상을 정리하는 기술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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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멀티태스킹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생겼다. 이를테면 컴퓨터로 글을 읽으며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흘려 보거나 심지어 옆에 책까지 펼쳐 놓고 드문드문 읽는다. 집에서 밥을 혼자 먹을 일이 생겨도 그렇다. 티비를 틀어놓고 폰으로 자주 들어가는 까페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먹는다. 온전히 밥만 먹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만 듣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면 일의 효율이 올라가느냐 하면 반대다. 주의 집중 기간은 짧아져서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고 끊임없이 폰에 손이 가고 읽던 책을 덮었다 펼쳤다 하며 정작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은 깜빡하곤 한다. 이론적으로라면 멀티태스킹은 대단히 효율적이어야 한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점점 산만해지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마음이 산란해졌다. 무언가 하나에 진득하게 집중하거나 빠져드는 일이 어려워졌다. 이는 마치 교실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ADHD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이 책은 적시에 왔다. 그리고 저자는 나의 이런 강박을 관찰이라도 한듯 즉시 진단을 내린다. 나는 뇌를 정리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정보의 과부하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선택을 하며 주변을 정리해가며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단히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들이다. 당신도 나와 비슷하다면 지금 당장 여기에서 이 책을 읽는 게 좋겠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사방에 얽혀 나를 결박하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보다 '1만 시간의 법칙'의 아버지 대니얼 레비틴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이 책의 분량에 (552페이지) 이 책의 저자의 능력에 (그는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이다.) 압도될 필요는 없다. 제목 만큼 간명하고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책이다. 중언부언하거나 이미 다 알려진 발견들을 재탕삼탕하지도 않는다. 



▶멀티태스킹의 환상


<정리하는 뇌>의 핵심은 뇌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 용량을 넘어서는 일을 구조화해서 외부화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멀티태스킹은 우리의 뇌의 신경생물학적 전화에 따른 필요 이상의 비용을 치루어야 하는 헛짓이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씩의 일에 집중할 때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는 '백일몽 모드'를 허용하며 긴장을 풀 때 최대의 효율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뇌의 '주의 시스템'을 이해하면 현대의 정보 과부화 시대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우리의 뇌의 능력을 과신하고 혹사하며 오히려 일의 능률과 삶의 질을 헤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주어진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태도다. 



외집단에 대한 편견


'내집단.외집단 편향'에 관한 이론도 흥미롭다. 자기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을 하나하나의 개인으로 파악하는 반면 외집단은  뭉뚱그려 하나의 덩어리로 폄하하여 매도해버리는 편향성은 우리의 뇌에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기대와는 달리 종종 오류를 일으키고 결함을 노출하는 우리의 이 추론기계는 세계의 운명을 비극적인 전장으로 종종 변질시키고 있다. 타민족, 타국가에 위해를 가하고 침략하는 행위는 이와 같이 근본적인 우리의 신경학적 편향에서 비롯된 바도 크다. 이러한 것을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라 저자는 보고 있다. '너'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인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 아픈 결정


후반부에 이르러 어려운 의사 결정을 어떻게 현명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은 기억해 둘만하다. 자기가 실제 속한 집단을 기준으로 한 정확한 확률과 통계치를 신뢰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종의 경우의 수를 조직화한 사분표를 작성해서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경험하는 예시는 현실에 바로 적용해볼 만하다. 특히나 가장 취약한 순간에 전문가 집단을 상대로 의사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위임하는 경우가 생기는 의료나 법률에 관련한 상황에 적극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효율적인 구성


수평적 조직 구성과 수직적인 조직 구성의 장단점을 어떻게 조직의 특유한 성격과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권한의 위임과 이를 둘러싼  리더의 의사 결정력에 대한 이야기는 비즈니스 세계나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다.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하는 일의 경계의 균형점은 하급자들에게 '분별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도록 독려하는 위기 조성과 맞물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 조직은 정체나 퇴보가 아닌 지속 가능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기는 조언...



가끔은 우주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런 일을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친구, 사랑하는 애완동물, 사업상의 거래를 잃기도 하고, 세계 경제가 붕괴되기도 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뇌를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상황에 기분좋게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내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보통은 그보다 더 좋은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다. 낡은 것을 없애면 무언가 훨씬 멋진 것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는 신념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관건이다.

-p.552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과학자가 해주는 인문학적 조언은 언제나 색다른 울림을 준다. 변화는 갈망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픈 상실을 겪을 때 그것의 빈 자리에 오는 것들의 와중에서 우리는 변한다. 아프고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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